<사회> 캠퍼스 내 노동자 처우, ‘대학의 의지’가 최우선 (한성대신문, 550호)

    • 입력 2019-11-1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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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19-11-11 13:43

▲지난 8월 28일, 전국 국립대병원 파견용역 노동자들이 서울대병원 시계탑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었다. 대회에 참여한 공공운수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서울대병원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 제공 :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지난 8월, 서울대학교 제2공학관 지하 1층 휴게실에서 60대 청소 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그가 평소 앓던 지병에 의해 사망했다고 발표했지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은 ‘열악한 처우’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청소·경비·시설 등 육체노동자와 비정규직 조교를 비롯한 ‘대학 내 노동자’의 처우에 관심이 모아졌다. 이에 대한 반사효과로 올 9월 국공립대 조교 노동조합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캠퍼스 안 노동자의 현실

대학 내 노동자 처우가 지적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8월,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가 서울 소재 14개 대학의 육체노동자 휴게실을 조사한 결과, 53%가량이 지하에 위치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지하 휴게실은 기계실에서 발생한 소음과 먼 지로 인해 휴게공간으로 적합하지 않은 공간이었으며, 냉난방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았거나 아예 휴게실이 없는 건물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손승환(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 합 서울지역본부) 지부장은 “한국에는 ‘건물을 신축할 때 육체노동자들을 위한 휴게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법조항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며 “이로 인해 대학들은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계단 밑, 지하, 창고에 휴게실을 마련해 놓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처우에 관한 문제는 ‘급여’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대학은 한 명의 육체노동자에게 매달 약 230만 원의 비용을 투입하는데, 이는 기본급 174만원과 4대보험 등 각종 인건비를 포함한 금액이다. 손 지부장은 “만약 노동자 30명을 기준으로 하면 (대학 입장에서는) 1년에 12~13억 선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청소 도구와 재료비를 더하면 금액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같은 실정 때문에 대다수의 대학에서는 외부 용역업체를 선정해 용역을 맡기는 ‘간접 고용’을 채택하고 있다. 외부 용역업체는 학교와 2년마다 계약을 체결하는데, 그 기간 내에 투입되는 비용을 최대한 낮추다 보니 근무환경은 끊임없이 악화되고 있다. 또한 산업 재해가 일어났을 때의 책임 주체 역시 모호한 상황이다.

대학 내 노동자 처우 문제가 비단 육체노동자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원생 조교를 포함한 비정규직 조교 역시 처우 문제를 앓고 있다. 노동의 댓가가 ‘임금’이 아닌 ‘장학금’ 형태로 지급되는 특성상 노동법의 보호를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들은 연구를 병행한다는 이유로 노동의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해 일명 ‘열정 페이’이라는 명목의 수당을 받기도 하고, 연구 외적인 업무를 도맡는 등 교수로부터 노동 착취를 당하기도 한다. 또한 이들은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기존대로라면 2년 단위로 계약한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거나 23개월만 근무하게 함으로써 정규직 전환을 막고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의 정당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슬아(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지부장은 “수업조교나 연구조교에게 터무니없이 적은 돈을 지급하면서 과중한 업무를 지시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교직원을 채용하게 되면 퇴직금 등 근로자에 대해 보장해야 할 것이 늘어나 대학들이 직접 고용을 꺼려한다”고 채용 배경을 분석했다.

이전에 ‘대학의 의지’가 선행돼야

올해 초 부당한 대우를 받은 대학원들이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산하의 ‘대학원생 119’를 조직했다. 뒤이어 지난 8월에는 일부 국립대병원에서 근무하는 육체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최근 비정규직 처우 현황을 대학역량진단 평가에 반영하는 등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왕복근(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서울지역본부) 조직국장은 “교육부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를 향후 대학평가 지표에 포함하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했다. 또한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예산지원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손 지부장은 “교육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일반 예산의 다양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대학들이 향후 대학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노동자들의 처우에 힘을 쏟을 것”이라며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이같은 대책을 마련하기 이전에,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대학의 의지’를 강조했다. 정작 대학이 움직이지 않으면 이를 위한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이 처우 문제를 외부 용역업체에 전적으로 맡기는 행태에서 벗어나, 이를 직접 책임질 것이 요구된다. 손 지 부장은 “원청인 학교가 처우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선행돼야 하청인 용역업체가 개선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끔 도구나 장비를 마련하는 것 역시 학교가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조교 처우에 대해서는 정당한 ‘노동’을 인정받는 것이 급선무다. 이에 지난해 3월 『이공계대 학원생들을 위한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공계지원 특별법(이하 이공계지원법)』이 발의됐다. 이공계지원법이란 정부에서 발주하는 국가연구과제를 수행하는 대학원생에 대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정부가 4대보험을 지원하는 법안이다. 같은 맥락으로 올 9월 국 공립대 조교 노동조합이 출범해 조교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 개선을 촉진할 전망이다. 이공계지원법에 대해 구 지부장은 “아직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고, 법안의 내용을 보면 강제 사항이 아닌 권고 수준이기 때문에 대학이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가지고 시행에 옮기느냐가 중요하다”며 학교의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했다. 과연 대학 내 노동 자의 처우 개선이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심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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