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물가 오른 학점시장 안정화될 수 있을까 (한성대신문, 568호)

    • 입력 2021-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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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06-06 21:56

최근 대학가에서 A학점을 취득한 학생이 전체의 50%를 상회하면서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란 말 그대로 높은 학점을 받는 학생이 늘어나 학점의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해당 현상은 단편적으로 봤을 때 학생들의 취업 및 진학에 유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학점의 변별력과 신뢰도가 하락해 취업 및 진학에서 학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져 다른 스펙이 요구될 수 있다. 학생들이 높은 학점을 받을 수 있음에도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뿌리 깊은 학점 인플레이션

학점 인플레이션은 과거부터 꾸준히 지적돼 온 문제다.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2011년 3월 발표한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09년 A학점을 취득한 재학생 비율은 전체의 38.3%로 꾸준히 상승했다. 대학은 높은 취업률을 위해 학점을 후하게 주고, 학생은 재수강과 학점포기제를 이용해 일명 ‘학점 세탁’을 한 결과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는 대학이 성적증명서를 열람용과 제출용(취업용)으로 구분해 발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학은 제출용 성적증명서에 F학점·학점포기·재수강 및 이전과목 성적을 표기하지 않아, 학생의 취업을 위해 불공정행위를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후 교육부가 각 대학에 학점포기제와 재수강에 대한 개선방안 마련을 요구함에 따라, 대학들은 학점포기제를 축소·폐지하고 재수강 시 취득할 수 있는 최대 학점과 횟수를 제한했다. 그 결과 환산점수* 80점 이상을 취득한 2013년도 졸업생은 91.1%였지만 2019년에는 89.9%로 하락했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확산 이후 학점 인플레이션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2021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국 195개 4년제 대학에서 2020년 A학점을 취득한 재학생 비율은 54.7%로 2019년 33.7%보다 21%p 상승했다.

학점 인플레이션이 재발한 원인으로 완화된 평가 방식이 지목됐다. 지난해 3월 2일, 교육부가 코로나19 학사대책으로 마련한 「2020학년도 1학기 대학 학사운영 권고안」을 보면 담당 교원이 학생의 의견을 들어 평가의 구체적인 방법을 정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학생들은 감염 우려로 대면 시험을 응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비대면 시험은 부정행위를 관리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평가방식 변경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대학은 절대평가 방식이나 기존 상대평가에서 A·B학점 비율을 증가시켜 완화된 상대평가 방식을 적용했다. 일부 대학은 축소·폐지됐던 학점포기제를 부활시키거나 선택적 패스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김한나(총신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의 어려움과 비대면 수업의 상황을 고려해 완화된 기준으로 평가하다 보니 전체적으로 학점이 상향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A학점에도 웃지 못하는 학생

성적평가 방식이 완화됨에 따라 시험 난도는 낮아지고 시험이 과제물로 대체되면서 학생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이 속출하고 있다. 김안나(이화여자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교수가 학생의 성취도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적절한 피드백을 주지 못하면, 학생이 다음 단계를 학습하는 데 지장이 생긴다”고 말했다.

성적우수장학금 관련 문제도 발생했다. 평균 성적이 상승하면서 기존 장학금 수혜 대상 범위에 해당하는 인원이 많아졌다. 일부 대학은 성적우수장학금을 축소하거나 폐지했다. 실제로 중앙대학교는 성적변별력 하락과 코로나19특별장학금 재정 마련을 이유로 1학기 성적우수장학금 지급 비율을 상위 10% 이내에서 상위 3% 이내로 조정했다. 중앙대학교 경영학부에 재학 중인 이세은 학생은 “현재로서는 성적변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장학금을 지원하는 것도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만,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적우수장학금의 축소로 학생이 학업에 대한 동기부여를 잃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학 간 학점 인플레이션의 차이도 또 다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대학알리미에서 공개한 2019년과 2020년의 ‘전공과목 성적 분포’에 따르면, 서울 소재 4년제 43개 대학 중 덕성여자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의 경우 2020년 1·2학기 A학점 취득 학생 비율의 평균은 전년 대비 각각 42.5%p, 44.9%p가 증가했다. 반면 성균관대학교와 한양대학교는 각각 2.8%p, 4.1%p만 증가했다. 성균관대학교 공학계열에 재학 중인 한서현 학생은 “우리 학교는 평균학점이 상향된 다른 학교에 비해 A학점 취득자가 적다”며, “취업할 때 불이익을 받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발생하는 동안 대학을 다니지 않는 졸업자와 휴학생 같은 경우, 취업 및 전문대학원 진학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는데, 기존의 상대평가에 비해 완화된 평가 방식으로 학점을 쉽게 얻은 학생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는 한 대학생은 “평가 방식이 완화되면서 코로나19 이전보다 학점을 따기 쉬운 것은 사실”이라며, “코로나19 이전에 취득한 학점이 법학전문대학원 입시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학점이 제 기능을 찾으려면

학점 인플레이션이 지속된다면, 학점이 취업 및 진학에서 평가의 지표로 사용되지 못해 스펙경쟁이 더욱 과열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전문가들은 평가의 신뢰도와 객관성을 확보해 학점의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안나 교수는 “학기 초에 교수는 학생이 이해하고 동의할 수 있는 명확한 교과 목표와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비대면 수업의 질을 높이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대학 역시 높아진 학점을 관리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난해 1학기 서울 소재 4년제 43개 대학의 전공과목에서 A학점을 취득한 학생 비율의 평균은 63.5%에서 2학기에는 57.7%로 감소했다. 김안나 교수는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서 경험이 축적됐다”며, “학점 인플레이션 대응이 보다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한나 교수는 “전면 비대면 수업으로 대학 수업이 이루어진 경우가 없었기에 보수적인 접근으로 대학 수업을 유지하기 급급했다”며, “현재는 비대면 수업에 적합한 평가방식을 모색하는 논의가 심도 있게 이뤄지고 있다.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를 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 환산점수 : 졸업 평점평균을 백분율점수 평균으로 환산한 점수

* 선택적 패스제 : 최종성적이 공지된 이후 학생이 일부 과목의 성적을 그대로 가져갈지 혹은 등급 표기 없이 패스(Pass)로 이수 여부만 표시할지 선택하는 제도

김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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