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표절로 얼룩진 논문 (한성대신문, 572호)

    • 입력 2021-1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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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8-28 19:15

표절 판단할 객관적 지표 부재

엄격한 심사 기준 적용이 필요

논문 표절에 따른 처벌도 약해

『학술진흥법』 제2조제1호에 따르면, 학술이란 ‘학문의 이론과 방법을 탐구해 지식을 생산·발전시키고, 그 생산·발전된 지식을 발표하며 전달하는 학문의 모든 분야 및 과정’을 말한다. 하지만 대학사회의 오랜 문제 중 하나인 ‘논문 표절’은 지식을 복제 수준에 머물게 한다. 최근 윤석열(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아내 김건희가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이면서 논문 표절, 나아가 연구부정행위(이하 부정행위)에 대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잊을만하면 떠오르는 대학가 부정행위,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하 연구윤리지침) 제12조에 따르면 표절은 부당한 저자 표시 등과 함께 부정행위에 해당하며, ‘일반적 지식이 아닌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 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정진근(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반적 지식’과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라는 표절의 설명이 모호할 수밖에 없다. 각 학계는 연구윤리지침을 바탕으로 연구에 알맞은 기준을 설정해 표절을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학계마다 표절을 인정하는 기준이 달라 ‘표절을 판단할 객관적 지표 마련’의 필요성이 꾸준히 대두되고 있다.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20년 대학 교원의 연구윤리 인식수준 조사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연구윤리 확립을 위해 추진할 정책으로 ‘학문 분야별 연구부정행위 정의(표절, 위변조 등)에 따른 가이드라인 제정’에 대해 32.8%가 ‘매우 중요함’, 46.3%가 ‘중요한 편임’이라고 답했다.

표절이 인정되더라도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로부터 일정 기간이 지나면 처벌할 수 없는 ‘징계시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립학교법』 제66조의4제1항에는 ‘사립학교 교원의 임용권자는 징계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징계의결을 요구할 수 없다’고 명시돼있다. 2019년 교육부가 발표한 「최근 5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연구윤리위원회 개최현황」(이하 대학 연구윤리위원회 개최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 동안 논문 표절이 적발된 102명 중 17명이 징계시효가 지나 주의 혹은 경고 등의 가벼운 처분을 받았다. 심지어 8명에게는 ‘조치없음’ 처분이 내려졌다.

지난해 12월 『교육공무원법』 제52조제5호가 신설되면서 ‘연구부정행위 및 국가연구개발사업 관련 부정행위를 저지른 교육공무원’의 경우 징계시효가 10년으로 연장됐지만, 여전히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강명수(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의 표절 여부는 시간이 지난 후 드러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징계시효는 궁극적으로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시효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애초에 시효가 필요하지 않도록 처음부터 명확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박성호(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표절에 대한 제보가 이뤄졌을 때, 실증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학계는 표절 등의 부정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학 연구윤리위원회 개최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4년부터 5년간 99개 대학에서 열린 382개 연구윤리위원회에서는 총 128건의 논문 표절 의혹이 접수됐다. 이중 102건이 표절로 인정됐으며, ▲파면 1건 ▲해임 13건 ▲강등 3건 ▲학위취소 18건 ▲논문철회 7건 ▲비용회수 12건 ▲정직 8건 ▲감봉 5건 ▲보수·평가 반영 12건 ▲견책 10건 등을 포함해 총 115건의 처분이 이뤄졌다. 한 건당 다수의 조치가 내려진 경우도 있었다. 정태석(전북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부정행위자의 지위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등 처벌을 강화한다면 논문 표절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황은성(서울시립대학교 생명과학과) 교수는 “철저한 조사를 통해 악의인 논문 표절 사례에는 강한 처벌이 주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학위 취득을 위해 제출하는 논문의 경우, 표절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교육부는 논문 표절을 사전에 예방하고자 ‘카피킬러’와 ‘턴잇인’ 등의 논문 유사도 검증 프로그램을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20년 대학 연구윤리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년제 대학 176개 중 ‘논문 유사도 검증 결과’를 제출하지 않은 대학은 46개다. 정태석 교수는 “단순하게 권고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유사도 검증 결과 첨부 혹은 제출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논문 심사 과정에서 엄격한 평가 기준이 마련돼야 함도 지적됐다. 석·박사 학위 취득을 목적으로 논문을 작성할 때, 일부 대학원생이 논문을 표절하는 경우가 있지만 지도교수가 이를 엄격하게 심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강 교수는 “만약 교수가 제대로 심사하지 않았다면 논문을 표절한 대학원생뿐만 아니라 담당 교수에게도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 교수는 “단순히 연구윤리를 지키라는 교육보다는 표절 행위의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한 교육이 이뤄져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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