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차별의 덫'에서 빠져나올 기회 (한성대신문, 573호)

    • 입력 202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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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2-06 00:00

거듭 미뤄지는 차별금지법 제정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견도 존재

법안 제정 및 인식 개선이 필요

▲지난 11월 28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서울시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연내제정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진 : 조정은 기자]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헌법』(이하 헌법) 제11조제1항 규정하고 있는 국민의 권리다. 최근 헌법에 명시된 차별방지 조항보다 세밀하고 포괄적인 내용이 담긴 차별금지법의 제정 논의가 촉구되고 있다.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병력, 나이, 성적 지향성,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피부색, 언어 등을 이유로 생활 전반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현 21대 국회에는 장혜영(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이상민(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주민(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평등에 관한 법률안』, 권인숙(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등 총 4개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지난 6월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국민동의청원이 10만 명을 넘어서기도 했지만, 청원 심사 기한인 11월 10일이 다 돼서도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21대 국회 임기가 종료되는 2024년 5월 29일까지 청원 심사 기한을 연장했으며, 해당일까지 심사가 완료되지 않는다면 청원은 자동 폐기된다. 심사가 완료되더라도 본회의 심의에 들어가지 못하면 발의안들은 폐기될 예정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관련 법률개정 및 제도변경과 연관돼 ‘심도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며 거듭 미뤄지고 있다. 그러나 법안의 심사 기한만 연장됐을 뿐, 법안 소위원회는 차별금지법을 상정·심의하지는 않는다. 전문가들은 심사가 이뤄지지도 않는 시점에서 언제, 어떻게 심도 있는 심사를 진행할 것인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했다. 홍관표(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심도 있는 심사가 필요하다면, 먼저 해당 법안을 소위원회 안건으로 상정시키는 일부터 해야 한다. 그 후, 심사를 진행하면서 문제가 있는 부분을 검토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미뤄지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심각성을 느끼는 이들은 절반 이상이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2020년 4월 22일부터 2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이하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이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한다’(82.0%)고 응답했다.

해당 조사에서 360명(36.0%)의 응답자가 ‘고용 형태에 따른 차별’을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차별로 꼽았다.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등의 개별법이 복잡한 차별에 대응하기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다. 실제로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차별의 종류에 따라 각각의 차별시정기구에 진정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재희(공주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는 “개별법이 이미 시행되고 있지만, 부분적 적용에 불과하다는 한계점이 있다. 사회적 차별을 시정하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불충분한 부분, 흠결에 해당하는 내용을 메우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다양한 차별 상황을 다루기에 한계가 있는 개별법을 보완해 발의된 법안이 바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다. 장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 제10조에 따르면, 기업이 성별 등과 같은 이유로 모집·채용의 기회를 주지 않거나, 제한하는 것을 금지한다. 제39조에는 ‘장애나 특정 신체조건을 가진 자 등이 장애인이 아닌 자 등과 동등한 근로조건에서 근로할 수 있도록’이라는 구절도 명시돼 있다. 장 의원은 “한 사람은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니며 살아가기 때문에 실제 차별이 단 하나의 이유로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차별이 발생하는 맥락을 여러 요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 때 그 사람의 경험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복합적 차별을 다루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민인식조사에서 고용에 따른 차별에 이어 325명(32.5%)의 응답자가 학력·학벌에 따른 차별이 가장 심각하다고 꼽았다. 학벌주의가 고도화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과다. 박천웅(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학벌주의는 개인의 능력이 아닌 출신 학교의 ‘지위’를 중요하게 여기고 출신 학교에 따라 차등적 보상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현상”이라며 “사회 속에서 차등적 보상을 두고 펼쳐질 여러 경쟁 단계에서 능력보다 출신 학교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학벌주의는 현대 사회의 신분제로 고착화될 공산이 크며 이는 사회적 차별이다”라고 전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기업 차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학력에 따른 차별이 금지돼 능력을 기준으로 한 인사가 불가능하고 이는 곧 기업 채용의 축소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선택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기업의 선택이 헌법에 수호하는 가치와 충돌하거나 공익 목적에 어긋날 경우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기업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들이 헌법상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준일(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원은 “기업은 이윤을 최대화할 수 있는 인재를 선택할 자유와 권리를 가지지만 이때 다른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학력 및 학벌’이 차별금지법에 포함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이 잇따른다. 학력은 선천적인 요소가 아니고 개인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성취의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장 의원은 “차별금지법에서 규정하는 차별은 ‘합리적인 사유가 없는 차별 행위’다. 학력 등의 조건에 대해 필요 이유를 함께 명시하고 충분히 설명한다면 법안 상의 차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차별금지법 제정이 학벌주의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정영선(전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 사회에 병적으로 확산돼 뿌리내리고 있는 정의롭지 못한 학벌주의 현상을 하루속히 타파해 나가야 한다”며, “그 첫걸음이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본다”고 전했다. 차진아(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학벌주의 자체를 없애긴 어렵지만, 법안과 함께 추가적인 제도 및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이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차별적 언행만으로 범법자가 될 수도 있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주장이다. 하지만 차별에 대한 일반적인 조치는 조정 및 시정 권고일 뿐, 형사 처벌의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일상생활의 모든 표현이 제한되는 것도 아니다. 장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을 살펴보면 차별이 금지되는 영역은 엄격히 정해져 있다. ‘고용의 과정 혹은 직장에서’,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교육기관에서 교육이나 직업훈련을 받을 때’, ‘행정서비스 제공이나 이용할 때’ 등이 해당 영역이다.

심지어 헌법상 표현의 자유는 무제한적이지 않다. 헌법 제37조제2항에는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 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결국 차별금지법은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닌 인격적인 가치에 위배되는 표현을 금하고자 하는 법안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표현의 자유가 막대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예외 규정을 마련해 차별 금지 적용 범위에서 제외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위원은 “자신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부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홍 교수 역시 “동성애 등 성적 지향에 관한 학문적·의학적·종교 교리적 표현은 문제 되지 않는다. 반면, 인격적 가치를 훼손하는 혐오 표현,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부·배제·배척 등의 태도는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에서 정하고 있는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전했다.

결국 입법과 함께 인식 개선의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법안 제정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차별이 사라지지 않겠지만, 차별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만드는 것이 차별금지법의 핵심이다. 박용철(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별 피해가 발생할 경우 적절한 구제수단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적 차별 문제를 개선하며 나아가 우리 국가를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한 걸음”이라며 법안 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임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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