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보리
최현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 환승길
풀내에 이끌려 따라간 작은 꽃집
노란 꽃 파란 꽃 널린 깡통 사이
희미한 튤립 한 송이가 말을 걸어온다
혼잣말처럼 들릴 듯 말 듯
이름없이 죽어가는게 슬프다고
나는 우울한 꽃을 집어올려
계산대에 얹고 삼천원을 낸다
흰 종이로 대충 싸인 꽃을 쥐고
듣그러운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힘 없이 잎을 내려놓은 꽃이
어두워진 차창을 내다보며 중얼댄다
기쁨에는 이유가 필요하지만
슬픔에는 이유도 필요없다고
페트병 물속에 꽃댈 담그자
희미한 낯빛이 더욱 희미해지고
어느 날 문득 들여다보니
꽃은 더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꽃 있던 자리 흐린 물 속
지친 외로움만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