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복판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156명이 유명을 달리했고, 그중 104명은 20대였다. 세월호 참사를 겪었던 20대가 또 한 번 아픔을 앓고 있다.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친구를, 그리고 동료를 잃었다. 한순간에 일어난 예상치 못한 사고였다.
사고 발생 이전부터 20대 사이의 현장 상황 공유는 활발했고, 사망 소식이 전해진 이후에도 책임소재에 대한 갑론을박은 끊이지 않았다. 국가애도기간이 선포되면서 날 선 공방은 서로를 향해 더욱 날카로워졌다. 피해자에 대한 혐오성 발언을 뱉으며 사고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또래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유가족이 아직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힐난하는 촌극을 목도하니, ‘학우’라는 의미가 진정 실존하고 있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국가이기도, 학교이기도, 가족이기도 하다. 또래집단 역시 그중 하나다. 특히 20대로 대표되는 청년층은 시대정신과 사명을 공유하는 가장 변혁적인 공동체다. “네 가족이라고 생각해봐라”같은 구태의연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다. 모든 비판을 면제받는 ‘성지’를 만들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또래의 죽음에 이죽거리는 우리는 대체 누구인가? 최소한 한 사람의 시민이라고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개인에게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전제되므로 개인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일부가 아니면 적이 돼라”고 으르렁거리는 전체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함께 연대하며 상생하는 지혜를 터득해나가는 삶의 철학을 회복하자는 말이다.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타고난 이상, 공동체의 존속은 개인의 자아에 필요불가결한 요소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성장과 실업문제가 장기화되고, 이로 인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청년층이 사회적 책무보다는 자기계발과 같은 개인적 생존 전략을 중시하는 추세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민주화’라는 시대 사명이 실종되고, 세대 정체성보다는 개인의 처지에 따른 개별적 차이가 더욱 와닿는 세대인 20대는 ‘청년’이라는 단일 집단으로서 의미가 옅어졌다. 이번 참사를 두고도 ‘우리’ 중 몇 사람이 아니라 ‘저들’ 중 몇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적지 않은 20대의 생각일 것이다.
주요 교리로 ‘사랑’을 꼽는 기독교는 사랑을 4가지로 나누어 분류한다. 그중 ‘필리아(philia)’는 친구 사이의 ‘동지애’를 의미한다. 20대의 공동체 정신 붕괴는 이러한 필리아의 소실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동지의 죽음을 비웃고 도덕 정신은 상실된 시대, 한 시인의 고리타분한 시 구절로 평을 마치고자 한다. 그렇다면, 사랑(philia)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한혜정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