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법의 어제와 오늘> 예방책 빠진 전세사기피해자법 (한성대신문, 593호)

    • 입력 202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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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0-16 00:00

하루아침에 보금자리를 잃으며 길거리에 나앉은 206명의 피해자가 있다. 이는 전세보증금 426억 원을 받아 챙기며 무려 772채를 사기 행위로 매수한 일명 ‘빌라왕’ 때문이다. 지난 10일 이 빌라왕이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외에도 다양한 지역에서 수많은 빌라왕으로 인해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특별법이 마련됐음에도, 특별법의 미비함으로 인해 많은 피해자가 보금자리 없이 지낼 위기에 놓였다.

전세사기피해자를 보호하고 지원하고자 『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하 전세사기피해자법)이 만들어졌다. 전세사기피해자법은 시행 후 2년이 경과하는 날까지 효력을 갖는 ‘한시법’으로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사기 의도가 있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입었음을 입증하면 국가가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후 전세사기피해자는 저금리로 대출을 받아 새집을 구할 수 있는 등의 금융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임대인이 피해주택을 담보로 잡아 대출 등을 사용해 피해주택이 경매에 넘어간 경우, 피해자가 우선적으로 피해주택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우선매수권’이 보장된다.

대부분의 전세사기는 전세보증금이 주택의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높을 때 발생한다. 수도권을 포함해 주택 수요가 많은 곳에서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전셋값이 상승하게 됐다. 이에 주택을 구매할 만한 자본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대출 등을 통해 자본을 끌어와 주택을 구매하고,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더 높게 형성된 전셋값으로 임차인을 받아 이익을 취하는 ‘갭투자’가 성행하게 됐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며 전세 계약 만기 시점에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돌려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김영대(법무사김영대사무소) 법무사는 “부동산 가격과 전세가격이 같이 하락하며 임차인이 임대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는 2022년 하반기부터 다수 발생하기 시작했다. 갭투자를 통해 수십 채의 건물을 소유한 빌라왕 다수가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며 수천 명의 국민이 집을 잃는 일이 벌어졌다. 전세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도 필요하지만 당장 살 곳을 잃은 피해자를 구제할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고, 국회가 올해 6월 전세사기피해자법을 제정했다. 권호근(국제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가격이 급상승했지만 이후 금리가 높아지고 입주 물량이 증가하며 전세가격이 폭락했다”며 “갑자기 하락한 전세가격으로 인해 임대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임차인이 직접 임대인의 사기 의도와 피해를 입증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전세사기피해자 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세사기피해자법 제3조에 따르면 임대인이 전세보증금을 반환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돼야 국가로부터 전세사기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동법 시행규칙에서는 임차인에게 사기 의도 및 피해를 입증할 수 있는 서류 제출 의무를 지우고 있다. 임차인이 임대인의 보이지 않는 의사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에,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피해 입증을 도와야 한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현재는 각 지역의 전세피해지원센터가 피해자와 법률상담을 진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김 법무사는 “임차인 스스로가 임대인의 사기 의도를 입증할 만큼의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며 “임대인이 자신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공개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밝혔다.

우선매수권을 보장하고 있어도, 다가구주택은 이를 행사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다가구주택은 『 건축법』상 단독주택으로, 세대가 나뉘어 있어도 한 세대만을 소유하거나 매매할 수 없다. 각 세대를 구분해 소유할 수 있는 다세대주택과는 다르다. 이에 따라 다가구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려면 해당 주택에 입주한 모든 임차인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은 임차인은 경매에서 우선매수권을 적용받음으로써 피해주택을 자신의 소유로 만드는 것이 유리하지만, 나머지 세대에 거주하는 임차인은 경매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진형(공정주택포럼) 대표는 “다가구주택은 임차인 각각 구분된 소유권이 없어 건물 전체를 매수해야 하지만 피해 임차인이 건물 전체를 매수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발생한 전세사기피해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보완하는 입법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인 예방책 이 될 수 있는 법률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지원 방안은 사후 대책에 불과하며 전세사기 예방에는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진유(경기대학교 스마트시티공학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보증금 미반환 사기는 주로 매매가에 대비한 전세가의 비율이 높은 주택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어떤 주택 이든 전세보증금은 매매가의 70%를 넘을 수 없다’와 같은 전세가 상한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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