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두고두고 꺼내어 쓰고픈 처방전 (한성대신문, 600호)

    • 입력 2024-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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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4-05-13 00:00

얼마 전, 아주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직전에 시작한 야학 생활. 교사가 꿈이었던 나는 야학 교사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단숨에 지원하러 갔다.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싶어하시는 어르신들께 중학교 과정의 국어와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자원 봉사였다. 중구에 위치한 야학은 여러 사정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치신 분들을 대상으로 저녁에 네 시간씩 가르치는 공간이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공부를 하러 야학에 오셨던 분들. 그리고 그분들께 얕은 지식이나마 함께하고자 했던 여러 대학생들. 저녁 시간에 수업이 진행되는 터라 2시간 공부하고 간단히 만든 저녁을 함께 먹고 나머지 2시간을 공부하는 일정이었다. 수업을 마치는 10시 30분이 되면 우리는 하나같이 근처 음식점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일상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보낸 1년 여의 시간들. 시작 단계에서부터 1년 이상은 해야 한다는 나름의 원칙이 있던 곳이었기에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은 매우 길게 이어졌다. 나와 같이 야학 교사에 지원한 대학생 친구들은 야학에 있는 시간동안 많은 것을 경험했다. 그분들과 함께하면서 배우게 된 삶의 자세와 열정들, 함께 나눈다는 것의 의미,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보낸 시간들. 그러한 시간들이 내 인생에 끼친 영향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순간, 지칠 때마다 우리는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때로는 1년 만에, 때로는 2년 만에, 때로는 3년 만에 만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늘 어제 만난 사람처럼 속내를 털어놓고 푸념도 늘어놓고 그렇게 만남을 이어가면서 세월도 흘러갔다.

인생을 살아갈 때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소중한 사람들과 나를 따뜻한 기억 속으로 몰고 가는 추억들이 특히 그렇다. 찬란한 20대에 마주하게 되는 무수한 경험들, 그 경험들 속에서 만나는 될, 두고두고 꺼내어 보고 싶을 추억들을 쌓을 수 있는 20대의 아름다운 시간. 그리고 그 경험을 함께 나누면서 어쩌면 내 인생의 끝까지 함께하며 지내게 될지 모르는 관계들. 지금 내 옆에 있는 관계들과 추억들은 인생의 힘든 순간에 나에게 전해지는 맞춤형 처방전이 될지도 모른다.

늦은 시간, 야학 근처를 찾아갔다. 야학이 있던 위치도 주변도 많이 변해 버렸지만, 순간순간 기억나는 추억들은 늘 같은 이미지로 되살아났다. 이상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때로는 슬프고 힘들고 지치는 순간에 이런 추억들은 또다시 나에게 위로가, 약이 되어 줄 거라고 믿는다. 나의 학생들도 이러한 처방전을 만들 수 있는 20대 시기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노정은(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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