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드를 누르지 않아도 생각만으로 컴퓨터 화면에 저절로 글자가 입력되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머지않아 다가올 미래의 모습일 수 있다. 키보드나 마우스, 리모컨과 같은 별도의 입력 장치 없이 뇌파를 통해 기기를 조작하는 기술이 바로 ‘뇌-컴퓨터 인터페이스(이하 BCI)’ 기술이다.
수술 없이도 뇌파를 측정하다
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은 장비가 뇌파를 수신해 사용자의 생각만으로 컴퓨터와 의사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뇌파의 측정 부위에 따라 크게 ‘침습적 방식’과 ‘비침습적 방식’으로 분류된다. 침습적 방식은 수술을 통해 두개골을 열고 뇌에 전극(電極)을 직접 부착해 뇌파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직접적으로 뇌파를 측정하기에 외부의 간섭을 받을 일이 적어 정밀한 신호 측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침습적 방식은 뇌를 덮고 있는 두개골을 여는 수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술 과정에서 뇌출혈이나 감염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김근태(한림대학교 인공지능융합학부) 교수는 “침습적 방식은 뇌 활동과 관련해 확실하게 뇌파를 측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침습적 방식은 두피에 전극을 부착해 뇌파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해당 방식은 사용자 스스로 뇌파를 측정하는 장비를 착용하기만 하면 된다. 별도의 수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의 심리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 다만 두개골이 뇌파를 감쇠시켜 정확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김 교수는 “뇌와 측정 센서 간에 거리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힘들 수 있다”고 언급했다.
생각만으로 기계가 움직이다
BCI 기술의 작동은 ▲신호 측정 ▲전처리 ▲형태 추출 ▲전환 알고리즘 ▲응용 단계로 구성된다. 신호 측정 단계에서는 침습적 방식과 비침습적 방식에 따라 측정 방식이 상이하다. 침습적 방식의 신호 측정 방식은 ‘뇌피질전도’와 ‘지역장전위’로 구분된다. 뇌피질전도는 두개골을 개방한 후 뇌 표면에 전극을 부착해 신호를 측정한다. 극성*을 띄는 신경 전달 물질이 활성화됨에 따라 전압에 차이가 생긴다. 전압의 차이는 (+) 전하와 (-) 전하의 충돌로 인해 나타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신호가 바로 뇌파다.
지역장전위는 수술을 통해 탐침 형태의 전극을 뇌 속으로 넣어 신호를 측정하는 방식이다. 뇌 속으로 들어간 전극은 뇌의 특정 영역에서 발생하는 전압을 측정한다. 이 방식은 신경 전달 물질의 활동 신호를 측정하는 특정한 뇌 영역의 신호 측정이 가능하다. 배재영(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박사후연구원은 “원하는 영역의 뇌파를 부분적으로 측정할 때 지역장전위가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비침습적 방식의 신호 측정 방식은 ‘뇌전도’와 ‘뇌자도’로 구분할 수 있다. 뇌전도는 두피 표면에 전극을 부착해 신호를 측정한다. 뇌전도에도 뇌피질전도와 마찬가지로 전기적 신호를 활용한다. 약 200V 이상의 강한 전기적 신호가 두개골을 통과하면 장비가 신호를 전달받아 뇌파를 측정한다. 김 교수는 “피질 내부에서 수천 개의 신경 전달 물질이 동시다발적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강한 전기적 신호를 형성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뇌자도는 신경 세포에서 흐르는 전류에 의해 발생하는 자기장을 측정한다. 신경 세포에 의해 발생되는 자기장은 매우 미세하기 때문에 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초전도양자간섭장치’가 사용된다. 이 장치는 위아래로 고리 형태의 두 초전도체와 그 사이에 전류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가 껴있다. 초전도양자간섭장치에 전류가 흐르면 가운데의 부도체가 전류의 원활한 흐름을 막아 두 초전도체 사이의 위상**값이 변하게 된다. 이후 변화하는 위상값에 비례해서 바뀌는 전압값을 환산해 자기장을 측정하게 된다. 배 박사후연구원은 “두개골의 낮은 전기전도성으로 인해 자기장이 전기장에 비해 신호 간섭이 작아 뇌자도가 뇌전도에 비해 정확한 신호 측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처리 단계에서는 측정된 신호 중에서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골라내기 위해 필터가 사용된다. 이때 사용되는 필터에는 ▲저역필터 ▲고역필터 ▲대역필터 ▲노치필터가 있다. 저역필터는 설정한 주파수 이상의 신호를 제거할 때 쓰인다. 고역필터는 저역필터에서 제거되지 않은 잡음을 처리하기 위해 설정한 주파수 이하의 신호를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대역필터는 저역필터와 고역필터를 조합시킨 필터로, 설정한 주파수 범위 내에 있는 신호를 제외한 나머지 신호를 제거한다. 마지막으로 노치필터는 측정 장비에서 발생하는 60Hz 단위의 주파수, 예컨대 60Hz, 120Hz, 180Hz 등 60의 배수 Hz의 주파수를 제거할 때 사용된다. 배 박사후연구원은 “사용하고자 하는 목적에 따라 주파수 대역을 선택해 필터를 선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형태 추출 단계에서는 아날로그 신호가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는 디지털 신호로 전환된다. 아날로그 신호는 연속적인 값으로 표현되며, 디지털 신호는 단절되는 값으로 표현된다. 앞서 전처리 단계에서 잡음이 제거된 신호는 연속적으로 발산되는 뇌파의 특징으로 인해 아날로그 신호의 형태를 갖는다.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 신호로 바꾸기 위해서는 ▲표본화 ▲양자화 ▲부호화의 과정을 거친다. 표본화 과정에서는 아날로그 신호의 가로축인 시간축을 일정한 간격의 주파수로 디지털화한다. 이때 원래의 신호가 왜곡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시간축을 일정한 구간으로 구분한다. 시간축은 디지털화됐지만, 신호값은 연속적이기 때문에 곡선 형태로 발산되는 아날로그 신호를 양자화 과정에서 직선 형태의 디지털 신호로 바꾼다. 신호값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실제 아날로그 수치와 아날로그 값을 나타내는 수치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신호값을 정확하게 계산해야 한다. 부호화 과정에서는 양자화 과정을 거쳐 디지털화된 신호값을 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이진수로 전환시킨다. 형태 추출 단계는 정보의 변환이 이뤄지는 단계이기 때문에 본래의 정보가 손상되지 않게끔 주의해야 한다. 김성필(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는 “형태 추출 단계가 얼마나 잘 이뤄지는지에 따라 정보의 전달량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환 알고리즘 단계에서는 이진수로 전환된 데이터를 여러 개의 클래스로 분류한다. 클래스는 데이터를 특성에 따라 분류하는 공간이며,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한다. 예를 들어 휠체어를 제어하는 경우 클래스는 ▲직진 ▲후진 ▲정지 ▲좌회전 ▲우회전 등이 될 수 있다. 김성필 교수는 “클래스 분류 과정에서 머신러닝이나 딥러닝 등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알고리즘이 사용된다”고 설명했다.
응용 단계에서는 전환 알고리즘 단계에서 클래스를 거쳐 나온 출력값이 컴퓨터가 실행할 수 있는 명령어로 일대일 대응된다. 클래스는 신호가 명령어로 전환되는 중간 단계의 역할을 한다. 이후 컴퓨터는 명령어를 인식해 사용자의 의도에 맞게 적절한 동작을 수행하게 된다.
일상을 변화시키다
BCI 전극에 사용되는 소재는 높은 전기전도성을 갖게 하기 위해 대부분 실리콘이나 금속 같은 단단한 소재로 구성돼 있다. 뇌 조직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상처를 일으키고 염증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부작용이 존재한다. 배 박사후연구원은 “단단한 소재는 뇌 신호를 왜곡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최근 뇌 조직과 유사한 성질을 가진 전극 개발이 이뤄지고 있는 이유다. 기존 금속 전극의 두께를 줄이거나, 금속 대신 부드러운 전극 소재를 활용하는 방법도 검토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7월 우리나라에서 부드러운 전도성 하이드로젤로 만든 인체삽입형 BCI 생체 전극이 개발됐다. 배 박사후연구원은 “BCI 전극의 강도를 약화시키는 것은 환자의 신체적 위험을 완화할 수 있기에 유망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머릿속 생각을 통해 기기를 조작하는 BCI 기술은 향후 신체 및 정신 질병을 치료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평가된다. 사지 거동이 어려운 장애인을 위한 일상생활 보조 장치가 대표적인 예시다. 사용자의 의도대로 로봇 팔을 제어해 원하는 물건을 잡을 수 있게 하는 등 몸이 불편한 환자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뇌파를 이용해 무인 드론을 원격으로 제어하는 등 국방 분야에서도 활용 가능성을 갖고 있다. 배 박사후연구원은 “BCI 기술은 뇌와 컴퓨터 간의 직접적인 상호 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로,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올 잠재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BCI 기술은 ‘뇌-뇌 인터페이스(이하 BBI)’ 기술을 지향하고 있다. BBI(Brain-Brain Interface) 기술은 두 사람의 뇌를 연결해 서로 간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이 기술은 첫 번째 사용자의 뇌 활성화 영역을 파악한 후 두 번째 사용자 뇌의 해당 영역을 자극함으로써 느낌이나 생각을 전달한다. 윤정원(GIST 융합기술학제학부) 교수는 “BCI 기술이 개인에 국한되는 방식인 반면, BBI 기술은 프라이버시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명이 동시에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다”며 “빠른 시간 내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분야에서 요긴하게 사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극성 : 전극의 양극과 음극을 모두 갖는 성질
**위상 : 진동이나 파동과 같은 주기적 현상에서, 일주기 내에서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특징지어 나타내는 변수
박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