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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조 3779억원’ 해당 금액은 2024년에 상정된 복지 예산이다. 매년 복지 예산은 늘어나지만, 정책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경계선 지능인 역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중 하나다.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인보다 IQ가 조금 높다는 이유로 여러 지원에서 배제당하고 있다. 다만 경계선 지능인을 마냥 IQ로만 구분하는 것은 잘못됐다. 경계선 지능인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성격을 갖는 이들이다. 그렇다면 경계선 지능인은 어떤 사람들을 가리키는 걸까.
경계선 지능인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다. IQ가 70 이하면 지적장애, 85 이상이면 일반인이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그 사이인 71~84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경계선 지능인의 규모는 정확히 파악된 바 없다. 다만 IQ 정규분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13.59%가 IQ 71~84 구간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약 697만 명이 있을 것에 달하는 수치다.
경계선 지능인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그럼에도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부족해 이들은 사회의 사각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본지는 경계선 지능인이 처한 상황과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해당 기사를 송고한다.
박석희 기자
‘경계선 지능인’, IQ 71~84에 해당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느린 학습자’라 불리기도 하는 이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정의되지 않았다. 미국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이하 DSM)’에 따라 지적장애에 해당하지 않는 경계 구간 지능을 가진 사람들이 경계선 지능인으로 인식되나, 구체적인 법적 기준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최윤경(한국공학대학교 대학공유협력센터) 연구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은 일부 영역에서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고 일상적인 사회 활동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별도로 구분하는 법적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청년층 사이에서도 경계선 지능인은 다수 분포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에서 발표한 「서울특별시 경계선지능인 실태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경계선 지능인 의심 대상자 위험군은 19~29세가 11.3%로 모든 연령대 중에서 가장 높았다. 이는 약 93만 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수치다. 최 연구교수는 “청년층은 성인으로서 독립을 준비하는 시기이자 사회적·경제적 자립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중요한 단계”라며 “청년 경계선 지능인은 대인관계 형성 경험 부족으로 더 큰 스트레스와 좌절을 경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계선 지능인은 대체로 학습과 일상생활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보이는 특성을 갖는다. 이들은 집중력, 기억력, 고차원적 사고, 추론 능력 등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또한 배움의 속도가 느리고 고등교육 과정으로 올라갈수록 학업실패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낮은 자존감과 불안함을 느끼고, 대인관계가 서투르며 협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 최진오(국립창원대학교 특수교육과)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은 머릿속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공간이 협소해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적다”고 밝혔다.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은 각자 공통분모를 갖기도 하지만 IQ 구간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성을 보이기도 한다. IQ가 71에 가까운 경계선 지능인은 지적장애인과 비슷한 특성을 갖고 84에 가까운 이들은 일반인과 유사한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홍성두(서울교육대학교 유아특수교육과)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은 IQ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며 “IQ가 84에 가까운 경계선 지능 학생은 학교 교육과정을 따라오기 비교적 쉽지만, 71에 가까운 학생은 버거워한다”고 전했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미술치료 ▲음악치료 ▲놀이치료 등을 통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실제로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2월까지 관련 치료를 받은 경계선 지능 아동들의 자기효능감과 자아존중감은 프로그램 실시 전후 각각 9%, 30% 향상됐다. 최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은 일정한 지원이 이뤄진다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을 정의하는 합의된 기준이 없어 혼란을 빚는 문제가 있다. 여러 연구와 정책에서 ▲경계선 ▲경계선급 지적기능성 ▲경계선급 지능 ▲느린 학습자 ▲학습지원 대상 학생 등 구체적인 정의 없이 많은 이름으로 혼용되는 현 상황은 대중들의 잘못된 용어 사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명확한 지식이 갖춰지지 않은 채로 의사소통의 오류를 불러올 수 있다는 위험을 갖는다. 최 연구교수는 “용어들의 불명확성은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일관된 지원 체계 구축을 어렵게 만든다”고 답했다.
경계선 지능인이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발달장애인법)의 지원 대상에 속하지 않아 이들이 법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발달장애인 및 그 가족은 발달장애인법에 따라 활동서비스, 재활서비스, 가족지원서비스 등을 지원받고 있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동법에서 정의하는 발달장애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서윤(숙명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상담교육학과) 교수는 “장애등록이 돼 있는 청년들은 장애인노동고용공단에서 취업 공고를 제공받는 등의 혜택을 누리지만 경계선 지능인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국가적인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논했다.
법률에 따른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지 않아 학습 부진에 직면하는 문제가 있다. 이들은 정부에서 지정한 ‘특수교육 대상자’에 해당하지 않아 현재의 교육제도에서는 평균 지능을 갖는 학생과 동일한 교육을 받는다. 경계선 지능인은 또래 학생에 비해 발달이 느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뒤쳐질 수밖에 없다. 변민수(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반 학급에서 경계선 지능인의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로 수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은 문제”라고 덧붙였다.
경계선 지능인이 초·중·고등교육기관에서 맞춤형 교육을 지원받지 못하다 보니 학교를 졸업한 후 취업 및 근로 활동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계선 지능인도 존재한다. 이로 인해 경계선 지능인의 고립 및 은둔 문제가 나타난다. 특히 청년 경계선 지능인의 사회적 고립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를 불러일으켜 국가적으로 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최서윤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이 사회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 직장 내 괴롭힘을 많이 당한다”며 “반복된 실패로 학습된 무기력감, 우울감, 불안과 공황 등으로 인해 은둔형 외톨이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인의 정의가 불명확한 원인으로는 DSM의 기준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 꼽힌다. 본래 미국에서는 지적장애 진단 기준을 지금의 경계선 지능인에 해당하는 구간인 IQ 84까지로 설정했다. 이로 인해 지적장애에 해당하는 인원이 매우 많아져 IQ 70 이하로 진단 기준을 변경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지 않고 진단 기준을 들여와 경계선 지능인의 정의가 불확실한 채로 통용되는 상황을 유발했다. 최진오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의 정의를 담은 외국의 기준을 사전적인 고려 없이 가져와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개별화된 프로그램과 정책이 수립되지 않았다”고 첨언했다.
경계선 지능인은 정부에서 지정한 장애인 등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보건복지부의 발달재활서비스를 지원받지 못한다. 『장애인복지법』상 지적장애인의 기준이 IQ 70 이하이고, 경계선 지능인은 그 이상의 IQ에 속하기 때문에 『장애인복지법』의 지원 대상에 속할 수 없다. 변 선임연구위원은 “경계선 지능인은 비장애인 고용지원 체계에서 적정한 성과를 얻기 힘들고 장애인 등록이 돼있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 고용서비스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경계선 지능인을 단순히 일반학급 또는 특수학급으로 분류시킨다는 이분법적 접근이 맞춤형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현재 교육기관에 확보돼 있는 학급은 일반학급과 특수학급 단 2개뿐이기 때문에 양자택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다. 경계선 지능인은 일반학급에서 또래 학생들에 비해 학습 속도가 뒤처지고 특수학급에서 지적장애 학생들과 동일한 교육을 받기에는 부적절하다는 설명이다. 최승숙(강남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일반학급과 특수학급의 중간지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청년 경계선 지능인을 대상으로 한 직업 교육이 실시되고 있지만 바리스타 또는 제과·제빵에 한정돼 있어 정작 체험할 수 있는 직군의 폭이 넓지 않다.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선택 가능한 직군의 종류도 자연스럽게 적어질 수밖에 없다. 최승숙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을 위한 직군 체험이 다양하지 않아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이 실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는 경계선 지능인의 기준을 마련해 그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경계선 지능인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인 IQ도 국가별로 편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경계선 지능인의 기준을 정의할 때 IQ뿐만 아니라 행동적 특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최 연구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을 정의하는 명확한 기준을 정함으로서 이들이 직면한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법적·제도적 지원을 제공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계선 지능인도 보건복지부의 발달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활동서비스나 가족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하면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과 동시에 그들을 부양하는 가족의 생계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경계선 지능인의 필요를 충족하는 서비스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전했다.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일반학급 또는 특수학급에 국한된 방식이 아닌 교육 방식의 다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반학급에서 또래 학생들의 학습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추가적으로 교육을 진행한다는 뜻이다. 최승숙 교수는 “대학의 교수학습지원센터처럼 학업성취도가 떨어지거나 코칭이 필요한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전문적인 기관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직업 교육의 개선을 통해 경계선 지능인의 직무 역량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 분야에 국한된 진로 체험의 방식이 아닌 사회환경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등 경계선 지능인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방식의 프로그램이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경계선 지능인의 경우는 소수 인원으로도 직업 교육이 가능한 프로그램에 투입시키는 것이다. 독일에서는 ‘전문 실행가 직업훈련’을 통해 사무·판매·요양·요리·청소·목공 등 다방면에 걸쳐 경계선 지능인의 직무 수행 능력을 함양하고 있다. 최승숙 교수는 “프로그램 내 직군의 다양화가 필요하다”며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계선 지능인에게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사람을 함께 참여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전언이다. 사회에서의 적응을 어려워한다는 이유로 배척하는 태도를 갖기보다는 정당한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포용하는 태도가 요구된다는 뜻이다. 최서윤 교수는 “무엇보다 사회에서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가 이뤄져야 한다”며 “차별적 시선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이자 동료로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