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가 꼭 알아야 하는 경제 상식’ ‘경제 초보를 위한 경제 개념 10분 요약’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경제 관련 콘텐츠들이다. 대학생이 됐으면 경제개발 상식 정도는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 까다로운 경제 용어가 발목을 잡기 일쑤다. 겨우 이해했다 하더라도 경제 뉴스 한번 읽어볼까 하면 공부했던 기억이 휘발되곤 한다.
경제주체로서 현명하게 소비하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사회 전체의 경제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경제 원리를 알아야한다. 나아가 이를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경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00만 명 개설. 일명 ‘만능계좌’라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이하 ISA)의 지난해 2월말 가입자 수다. ISA는 주식,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합해 투자하면서 세제혜택도 받을수 있는 계좌다. 고금리 기조 속에서 ISA는 청년 자산 증대 방안으로 주목받아 왔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ISA규제 완화 계획을 설명했다. 그러나 규제 완화로 인한 정책이 청년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갈지는 미지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의 규제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나아가 청년 ISA 활용에 대한 과제를 짚어본다.
이승희 기자
규제의 덫에 걸린 경제의 균형
경제는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상품을 교환하며 형성된다. 가계는 소비의 주체로서 상품을 구매해 생활을 영위하고, 기업은 생산의 주체로서 상품을 창출하고 이를 시장에 공급하며 이윤을 추구한다.
일반적으로 개별 경제주체는 자신의 선호와 조건에 맞춰 생산과 소비를 결정하지만, ‘시장신호’가 이들의 선택을 변화시킨다. 시장신호는 정부나 규제기관의 개입 없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가격 변동의 정보가 전달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장 내에서 가격이 결정된 후 시장신호가 제공되면 경제주체는 수요와 공급 변화를 예측한다. 이 신호를 바탕으로 가계와 기업은 각각 소비와 생산의 적정 수준을 조절하게 된다. 김형진(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시장에서는 상품의 가격이 결정되며 시장신호를 통해 수요와 공급이 조정되고 상품의 생산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시장신호에도 불구하고 가계와 기업은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가계는 소득 변화나 경제 불안정에 따라 수요를 변화시킨다. 경제주체가 상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수요가 급격히 줄면 상품에 대한 가격은 폭락한다. 한번 폭락한 상품의 가격은 반등하기 어렵기 때문에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손실을 입게 된다. 반대로 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 상품의 가격은 폭등한다. 이 경우 소비자에게는 경제적 부담을, 기업에게는 폭리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비효율적인 상황은 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저하시킨다.
정부는 가계와 기업이 신호를 읽지 못해 형성될 수 있는 시장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시장을 규제하고 감독한다. 명확한 규제 정책을 통해 경제적 불균형을 방지하고 시장을 강제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부는 시장신호를 파악하는 격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시장에 개입한다”고 설명했다.
규제 정책을 통한 정부의 개입은 가계와 기업의 경제적 ‘후생’을 변화시킨다. 후생이란 각 경제주체가 자원 배분에서 얻는 효용을 의미하며 소득, 소비, 생산 등에 대한 만족도를 포함한다. 시장 내에서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할 가능성이 있는 상품에 대해 가격 규제를 펼친다고 가정하자. 가격 상한제를 시행할 경우 폭등할 가능성이 있는 상품의 가격 인하로 소비자는 혜택을 보고 생산자는 이윤이 감소한다. 반면 가격 하한제를 시행하면 소비자는 더욱 낮아질 수 있는 가격보다 높은 비용을 내고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이 경우 소비자는 가격 상승으로 인한 피해를 보고 생산자는 규제가 시행되기 전보다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규제 정책의 방향에 따라 소비자나 생산자의 이득과 손실의 정도가 달라지지만, 궁극적으로 경제 전체의 후생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김 교수는 “어느 한 쪽이 정상적인 이득보다 큰 이득을 가져가는 비효율적인 상황에는 정부가 개입해 손해를 보고 있는 측을 보호하려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부의 규제 정책이 오히려 시장의 비효율성을 심화시킬 수도 있다. 이는 ‘포획이론’으로 설명된다. 포획이론은 규제기관이 피규제자인 기업에 의해 상황이 역전되는 현상을 말한다. 즉 규제기관이 정책을 통해 기업을 규제하려 해도 기업의 영향이 더욱 커 기업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정책이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정책의 본래의 목적인 공공의 이익 보호를 벗어나게 되고 규제기관에 의해 시장신호 왜곡이 더욱 크게 형성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규제기관이 기업의 영향을 받아 규제의 강도를 완화하면, 기업은 불공정 경쟁을 유도하거나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다. 이는 시장신호 왜곡을 초래하고 시장 내 자원이 원활하게 배분되지 않아 경제 효율성을 저해시킨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사회적 후생을 감소시키고 경제적 불균형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김 교수는 “기업이 1만 원에 판매하는 상품에 대해 5천 원으로 낮추는 규제를 시행하려 했지만, 8천 원으로 규제하는 경우가 포획된 경우에 해당한다”며 “정부는 규제를 시행했다고 판단하지만 시장의 효율성은 제고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포획이론의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규제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규제 과정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정부는 규제 완화가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해 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적절한 규제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김 교수는 “정부가 규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독립된 규제기관을 형성하는 방법을 통해 기업에게 포획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고 전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규제 변화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사와 은행에 대한 감독을 통해 금융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고, 금융시장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제고하는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부의 손에 달린 규제의 이정표
ISA는 주식,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통합해 관리할 수 있는 절세 계좌로 일임형, 중개형, 신탁형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일임형은 전문가에게 투자를 맡기고 중개형은 국내 상장 주식에 투자하며 신탁형은 자금을 예치한 후 개인이 직접 운용한다. 해당 계좌는 가계의 금융자산을 체계적으로 형성하기 위해 도입됐다.
지난달 정부는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ISA 규제를 완화해 활용성을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는 ISA 가입 한도 확대와 비과세 항목 조정 등이 포함됐다. 2021년 ISA 규제 완화 당시 청년층의 종잣돈 형성 정책으로 주목받았으나, 일시적인 관심에 그쳤다. 이번 ISA 규제 완화 역시 청년의 실질적인 자산 형성에 크게 기여하지 못하는 규제 완화 정책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청년 자산 형성 방안으로 ISA가 떠올랐지만 계좌는 운용되지 못한 채 ‘깡통계좌’로 남아있다. 청년의 가입이 증가하는 데에 비해 실질적으로 계좌가 운용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금융투자협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0년말 6.4%에 그쳤던 20대 가입자 수가 2024년 2월 말 16.4%로 증가하며 전 연령대 중 청년층의 비중이 가장 많이 높아진 것으로 드러났다. 반면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병덕(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14개 은행·증권사로부터 제출받은 ISA 운영 현황에 따르면 4개 은행의 납입 금액 1만 원 이하, 1만 원 초과~10만 원 미만 계좌의 비중이 8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SA가 청년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고려한 계좌도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ISA는 용도 없이 예·적금된 자금을 투자성 자금으로 전환하는 성격을 갖는다. 가입자가 위험 자산으로 유도될 수 있는 상황에서 투자 경험이 부족한 청년은 더욱 위험성이 더해진다. 천창민(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글로벌테크노경영학과) 교수는 “자산을 불릴 수 있도록 마련된 계좌인 점은 긍정적이지만, 청년에게 특화된 정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청년이 ISA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한 오용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ISA는 금융회사가 투자 지원을 제공하는 만큼 수수료가 부과되는데 은행별로 수수료 및 보수 체계가 상이해 청년이 혼란을 겪고 과도한 수수료를 부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우철(서울시립대학교 세무학과) 교수는 “은행별로 수수료 금액이 상이한 점 등이 청년에게 어려움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밝혔다.
ISA가 운용되지 않고 깡통계좌로 남는 문제는 금융사의 금융상품 양산 과열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해 4월, 주요 은행 및 증권사가 일제히 중개형 ISA 관련 행사를 진행하며 고객에게 현금성 쿠폰을 지원하거나 수수료 우대 혜택을 부여하며 유치를 유도한 바 있다. 김 교수는 “ISA 등 금융사들이 가입 유치를 위해 단기적인 유인책을 남발하는 경우가 빈번하지만 그 속에서 계좌를 실질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해당 계좌에 대한 위험성 문제의 원인으로 정부가 청년정책으로 ISA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청년의 특성을 반영한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 점이 거론된다. 불안정한 경제적 여력을 고려한 청년의 안정성 중·장기성 상품이 마련돼야 하지만 이뤄지지 않은 실정이다. 김 교수는 “청년의 경제적 불안정을 반영한 자산 형성 방안을 마련한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청년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수료 부과 등 오용 문제는 청년들의 금융 교육 부족에서 비롯된다. ISA는 기존의 투자 방법이나 예적금 계좌와 차이가 있는 상품으로, 청년들이 수수료 체계와 운용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가입하면 불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김 교수는 “은행 및 금융사는 투자 등을 중개하는 대가로 수수료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비용 부담이 주어질 수 있다”고 답했다.
금융당국이 금융사를 대상으로 명확한 ISA 운영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금융사가 ISA를 통해 효과적으로 청년의 자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관리 체계 마련을 제시하고 금융사는 이를 이행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김 교수는 “금융사들이 가입 유치에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금융 당국의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청년 맞춤형 ISA 상품이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ISA는 일반형, 서민형, 농어민형 등으로 구분되며 서민형, 농어민형의 경우 비과세 혜택 등이 추가로 주어진다. 청년은 일반형으로 가입이 이뤄지는 경향이 크므로 청년 맞춤 상품을 도입하면 효과적인 자산 형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견해다. 박준태(금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년형 ISA 도입은 새로운 청년 자산 정책으로 그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계적인 금융 교육을 통해 청년들이 ISA 상품의 특성을 이해하고, 올바르게 계좌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금융당국이 대학 내 세미나 등을 통해 ISA 계좌 개설부터 운용, 세금 혜택까지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방안이다. 천 교수는 “ISA를 통해 자산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야 하므로 청년이 계좌를 현명하게 운용하기 위한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