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대가 꼭 알아야 하는 경제 상식’ ‘경제 초보를 위한 경제 개념 10분 요약’ 인터넷에서 한 번쯤 봤을 법한 경제 관련 콘텐츠들이다. 대학생이 됐으면 경제개발 상식 정도는 쌓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관심을 가져보려 해도 까다로운 경제 용어가 발목을 잡기 일쑤다. 겨우 이해했다 하더라도 경제 뉴스 한 번 읽어볼까 하면 공부했던 기억이 휘발되곤 한다.
경제주체로서 현명하게 소비하고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경제 흐름을 이해하는 능력은 필수적이다. 사회 전체의 경제 흐름을 효과적으로 이해하려면 경제 원리를 알아야 한다. 나아가 이를 사회 문제에 적용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로 경제를 이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조 원. 지난해 말 신용회복위원회, 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공공기관의 대략적인 ‘대위변제’ 금액이다. 대위변제란 서민이나 소상공인이 빚을 갚지 못할 때 이들을 대신해 금융공공기관이 대출금을 대신 갚아주는 제도다. 이 제도는 시장에서 경제 전체의 자금이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돕는 한편,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며 부실 대출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대위변제는 왜 존재하며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대위변제 관련 경제 이론과 그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들여다보자.
이승희 기자
기회를 창출하는 신뢰의 힘
가계, 기업 등의 경제주체는 생활을 영위하고 사업을 운영하는 데 자금을 필요로 한다. 이들이 자금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금리나 원자재 가격 등 경제 환경이 예기치 않게 변하면 자금 보유 규모에 불확실성이 발생한다. 자금이 증가할 경우 저축이나 투자가 확대될 수 있지만, 자금이 부족해지면 가계는 생계 불안에 직면하고 기업은 경영 위기, 투자 위축, 도산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자금 부족으로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이 저해되면 경제 전체의 불확실성이 가중된다. 이는 화폐의 시간적 가치로 설명된다. 화폐는 현재의 화폐가 미래의 화폐보다 큰 가치를 가진다. 이는 자금을 즉시 활용하지 못하면 그만큼 경제적 기회와 효용이 감소한다는 의미다. 일례로 기업이 시의적절한 설비 투자를 단행하지 못할 경우 생산 기회를 상실하고 수익 또한 감소한다. 이로 인해 경제주체는 미래에 대한 선택을 보류하며 경제 전체의 불확실성을 더한다. 양주영(한국개발연구원 거시·금융정책연구부) 부연구위원은 “가계와 기업에 추가 자금이 제때 제공되지 않으면 경제활동에 필요한 재화를 활용할 수 없게 돼 경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제주체는 현재 자금을 확보하는 수단 중 하나로 ‘대출’에 의존한다. 대출은 담보나 신용을 바탕으로 자금을 차용하는 행위로, 은행 등의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연결된다. 은행의 중개를 통해 여유 자금을 보유한 경제주체는 저축 이자를 받고, 은행은 저축으로 또다른 자금이 필요한 경제주체에게 대출을 제공한다. 서상원(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은행 등의 금융기관은 자금의 수요자이자 공급자로서 책임성을 갖고 금융중개를 주도적으로 수행하며 경제 효율성을 높인다”고 전했다.
대출 계약의 핵심은 ‘신용’이다. 신용이란 일정 기한 내에 채무를 상환할 수 있는 능력과 그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은행은 신청자의 소득, 자산, 부채, 상환 이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용을 평가한다. 신용은 대출 한도와 이자율 결정의 기준이 되며 신용의 정도가 높을수록 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양 부연구위원은 “신용은 신뢰를 제공함으로써 자금 활용에 드는 비용을 절감해 자금시장에서의 핵심적인 기능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신용이 자금시장의 기반이 되는 만큼 신용에 대한 평가는 더욱 강조된다. 신용이 정확히 평가되지 않으면 대출 기관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크며 반대로 상환 능력이 충분한 채무자가 과도한 이자율을 부담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험에 대응하고자 금융기관은 신용을 재차 보증하는 담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담보란 채무자가 빚을 상환하지 못할 경우 처분해 금융기관의 손실을 보전할 수 있는 자산을 의미한다. 자가용, 부동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담보를 통해 금융기관은 위험을 분산시키고 신용이 낮은 경제주체에게도 자금 조달의 기회를 제공한다. 신용과 담보를 기반으로 대출 계약이 체결되면 채무자는 약속한 기한 내에 대출금을 상환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개인의 실직 등으로 인해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환 불이행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금융공공기관이 채무자를 대신해 대출금을 상환하는 제도가 ‘대위변제’다. 이는 보증기관이 채무자의 채무를 대신 상환함으로써 금융기관의 손실을 막는 방식으로, 신용이나 담보 능력이 취약한 청년, 서민, 소상공인이 주된 대상이다. 보증기관이 대신 변제하면 금융기관은 부실채권을 방지할 수 있고 더 많은 신용 대출을 가능케 하는 기반을 마련하며 금융시장 내 유동성을 제고하는 효과를 갖는다.
대위변제는 자금 흐름의 안정성과 취약계층 보호 측면에서 분명한 장점을 지니지만, 동시에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도덕적 해이란 경제주체가 자신의 선택에 따른 위험이나 손실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할 때, 신중하지 못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경제 개념이다. 이는 상환에 대한 책임 의식을 약화시키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의 대출을 무리하게 실행하게 할 수 있다. 금융기관 또한 채무자의 신용보다 보증인의 존재만을 근거로 대출을 과다하게 승인할 위험이 커진다. 대출 남발은 금융시장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금융기관은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신규 대출을 억제하면서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은 이러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위변제를 비롯한 보증 제도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정부가 직접 대위변제를 시행하거나, 보증기관의 책임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금융기관과 채무자, 정부 간의이해관계를 조율하며 균형 있는 금융 환경을 조성하고자 한다. 서 교수는 “대위변제 등의 보증제도가 잘 운영될 수 있도록 보증기관은 신용도를 정확히 평가하도록관리하는 등의 노력이 이뤄진다”고 전했다. 이어 양 부연구위원은 “대출과 신용은 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 뒤로 숨은 대출시장
금융공공기관의 대위변제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오기형(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3개 금융공공기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대위변제액은 16조 3,142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대비 18.4% 증가한 수치다.
청년·서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대위변제 규모가 급증하면서 금융당국이 변제금 대부분을 부담하고 국민 전체가 개인의 채무를 대신 떠안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대위변제는 개인의 대출을 정부 재정, 즉 세금으로 메워주는 방식이다. 본래 대위변제는 청년, 서민 등에게 자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지원 수단이었으나, 최근에는 정부의 재정이 과하게 투입되는 실정이다. 통계청의「 신용보증 규모」에 따르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 규모는 2019년 52.2%였으나 지속 상승해 2023년 기준 81.6%를 보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의 대위변제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은행은 오히려 대위변제 보증대출을 확대하며 문제를 키우고 있다. 대학생, 청년의 금융 애로 해소를 목표로 금융당국이 마련한 보증 상품인 ‘햇살론 유스’가 대표적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남근(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서민금융진흥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햇살론 대출 공급액 현황」에 따르면 햇살론 유스의 경우 2020년 2,234억 원에서 2023년 3,016억으로 약 35% 증가했다.
정부의 대위변제에도 불구하고 신속채무조정이 증가하며 도덕적 해이 강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신속채무조정은 30일 이하로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채무상환을 유예하거나 상환기간을 연장하는 제도로, 최대 10년까지 분할상환이 가능하다. 해당 제도는 일반 채무조정보다 신용회복에 유리하다는 차이를 지닌다. 지난 1월 신용회복위원회가 상술한 기관 소속 김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신속채무조정 신청자 수는 4만5,832명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당국의 재정 지출 증가는 정부의 대응방안 미흡에서 비롯된다. 상술한 오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대비 2023년 대위변제 금액이 8조 원가량 급증하는 형세를 보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대위변제 재정 관리를 시행하지 않은 것이다. 윤영훈(한국조세재정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경기침체 등의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대위변제 증가는 예측이 가능했으나 정부의 선제적인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은행의 상환 능력 심사 부실이 보증대출 상품 판매 증가의 원인으로 제기된다. 대출 과정에서 은행은 개인의 상환 능력을 면밀히 검토해 적정한 대출 한도와 변제 가능성을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소홀히 한 채 정부의 보증을 기반으로 이자 수익을 확보하는 데 집중하는 실정이다. 지난 16일 KB·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연간 순이익은 18조 8,742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1조 7,811억 원 증가한 실적이다.
정부가 채무자의 상환 능력 회복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점이 신속채무조정 증가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질적인 재정 지원 체계나 상환 능력 회복을 위한 방안 없이 단순히 상환을 유예하는 신속채무조정 규모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채무자는 장기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보다, 단기적인 유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이게 된다는 견해다. 서진형(광운대학교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고기를 주기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단편적인 교육 제공 형식으로 정책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대위변제 부담을 모두 떠안지 않도록 담보인정 비율을 검토하고 선제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위변제는 금융당국이 보증하지만 금융기관이 대출을 중개하므로 정부와 은행이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의견이다. 금융당국의 총보증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의 보증 비율을 높이는 방안이 제시된다. 윤 초빙연구위원은 “정부의 보증 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정부의 대위변제 보증 비율을 줄이고 은행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의 보증을 근거로 금융기관이 대출을 남발하지 않도록 위기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대출 리스크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위기가 커질 경우 유동적으로 대출 조건을 재조정하는 형식이다. 또한, 대출 조건 변경으로 신뢰도가 떨어지지 않도록 고위험 대출과 저위험 대출에 대해 상환 능력을 고려해 적절한 한도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 회복을 돕는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는 단기적인 유예나 채무 조정만으로는 채무자의 근본적인 재정 회복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환 능력 회복을 위해 대위변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단 회생 재정을 지원하며 금융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서 교수는 “채무자의 근본적인 재정 회복을 위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