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실에 짓눌린 꿈의 배낭 (한성대신문, 612호)

    • 입력 2025-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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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6-09 00:00

<편집자주>

해외에서 일과 쉼을 함께 누릴 수 있다는 마치 꿈같은 제도가 있다. 바로 워킹홀리데이(Working Holiday)(이하 워홀)다. 워홀은 협정을 맺은 국가의 청년이 방문국에서 일정 기간 자유롭게 거주하며 관광, 취업, 어학연수 등을 병행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제도다.

워홀은 1990년대부터 청년의 해외 문화 체험 및 교류를 촉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최근에는 정부가 해외 취업을 장려하며 참여 연령 확대와 협정국 추가 등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에 호응한 듯 청년 사이에서도 워홀이 해외 취업의 디딤돌이자 ‘필수 방학 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워홀 참여 확대에만 집중하는 사이 청년의 안전은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워홀을 적극 장려하기 위해 긍정적인 면을 부각해 홍보할 뿐 정작 제도적으로 이들을 보호하거나 구제할 방안은 마련되지 않는 실정이다. 해외 출국 전후로 방치된 청년의 현실과 그에 따른 지원 방안을 함께 살펴본다.



이승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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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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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은 협정 체결 국가의 청년이 방문국에서 자유롭게 취업, 여행, 어학연수 등을 수행하며 구직 활동이 가능하도록 특별히 허가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 호주를 시작으로 현재 캐나다, 독일, 일본, 홍콩 등 27개 국가 및 지역과 워홀 협정을 맺고 있다. 박한진(소유유학컨설팅) 대표이사는 “워홀 협정을 통해 워홀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며 “해당 비자는 워홀 체류 기간 중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며 정규 학업 이수가 가능한 유학 비자 등과 차이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오랜 시간 이뤄져 온 워홀은 초기 정책 목적과 달라진 형태를 보인다. 도입 당시에는 청년의 문화 체험 및 교류를 장려하기 위한 취지였다. 그러나 청년 실업률 증가에 따라 점차 해외 취업을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워홀을 통한 청년 해외 취업 프로그램 등도 지원되는 상황이다. 박 대표이사는 “워홀 초기에는 세계화를 통한 문화 경험에 목적이 있었으나, 점차 정부가 워홀의 정책 목적을 청년 취업률 제고로 설정했다”며 “이에 따라 정부는 청년에게 워홀을 적극 권장·지원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많은 청년이 워홀에 참여하고 있지만, 이들을 겨냥한 사기 등 각종 범죄도 잇따르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안민석(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호주에서 발생한 워홀 관련 사건·사고는 101건에 달했다. 동일 기관의 한정애(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확보한 외교부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간 호주 내 워홀러 사건·사고는 213건으로 집계됐다. 호주는 워홀 협정 체결 국가 중 워홀에 참여한 청년의 약 80%가 선택하는 대표적인 목적지다.

해외로 떠난 이후 워홀 국가에서 피해를 입은 사례가 다수 존재하지만, 워홀 출국 전 정부에서 제공하는 정보가 극히 단편적이다. 현재 정부는 ‘재외국민 워킹홀리데이 인포센터(이하 인포센터)’ 플랫폼을 통해 워홀 관련 공지사항과 체험 수기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플랫폼은 정부가 운영하는 유일한 공식 정보 창구지만, K-pop 콘테스트 개최 소식 등 피상적인 내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청년은 사설 카페 등 사적인 방안을 통해 위험 요소나 현지 제도에 대한 정보를 찾아야 한다. 공주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수진 학생은 “워홀 청년은 일을 하기에 방문 국가의 제도나 법의 정보를 얻어야 하지만,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없어 카페나 모임 등을 통해 정보를 얻었다”며 경험을 전했다.

정보가 극히 제한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연계한 일자리에서도 취업 사기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정부는 해외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월드잡플러스(WORLDJOB+)’ 플랫폼을 통해 직무 내용, 근로 조건 등이 포함된 해외 채용 정보를 제공한다. 이때 구인처에 대한 사전 검증이 미흡하거나 실제 근무 환경과 다른 정보가 게시되며 피해가 이어지는 실정이다. 국민대학교 빅데이터경제학융합전공 3학년에 재학 중인 양지은 학생은 “뉴질랜드로 워홀을 갔을 때 만난 사람이 월드잡플러스를 통해 일자리를 구했으나 사기를 당했다”며 “이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워홀에 참여한 청년에게 출국 전후로 부실한 지원이 포착될 뿐만 아니라 현지에 가서도 청년을 보호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재외국민을 지원하는 재외동포청은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이하 영사조력법) 제12조에 따라 워홀 청년의 피해 구제를 도와야 한다. 이때 정부는 변호사 및 통역인 명단과 같은 정보 제공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청년의 피해를 확실히 구제하기 어려울뿐더러 명단이 미갱신돼 연락을 취할 수 없는 경우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박기태(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영사조력법을 통해 국가가 재외국민을 지원할 의무가 있으나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워홀의 사전 교육과 사후 지원을 담당할 재외공관의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타난다. 한국재난정보학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71개 재외공관 중 재외국민 보호를 전담하는 해외안전담당 영사가 파견된 곳은 전체의 49.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해당 연구자료에서는 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확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교부의 「2025년도 예산 개요」에 따르면 재외공관 관련 예산은 지난해에 비해 60%가량 감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박 변호사는 “재외공관의 인력과 예산이 충원되지 않아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정보 제공이 한정적인 이유는 정책의 초점이 청년 일자리 알선과 워홀 제도 홍보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워홀 협약 국가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각국과 외교적 협력 방향을 조율한다. 이때 청년의 워홀 참여율이 높을수록 상호 이해관계가 강화되기 때문에 정부는 제도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박 대표이사는 “워홀은 취업률, 국가 간 협약 등 다양한 요소가 맞물려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취업 사기 문제는 정부의 기업 정보 검증 불충분에 기인한다. 월드잡플러스는 해외 취업과 관련해 가장 크고 공신력 있게 운영되는 플랫폼으로 해외 기업에 대한 정보를 망라하고 있다. 이에 기업의 규모 대비 적정 임금 수준 등 공고 수준을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검증 절차가 생략되며 취업 사기 문제가 발생한 실정이다. 박 대표이사는 “해외 취업을 위해 방대한 정보를 단순 나열식으로 제공하면서 청년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영사조력법이 정부의 재외국민 보호 의무를 지나치게 모호하게 규정하며 워홀 청년을 구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타난다. 상술한 법령에 따라 재외공관은 의료기관, 변호사 및 통역인 명단 등의 조력 외에 ‘재외국민의 범죄피해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추가적인 조력을 제공할 것을 명시한다. 이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농후하며 해외에서 긴급하게 이뤄지는 사건·사고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박 변호사는 “영사조력법이 재외국민 보호의 기본 틀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조항이 모호해 실질적인 조력을 받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워홀 지원 인력 및 예산 부족 문제는 2021년 영사조력법 개정 이후 재외공관 운영 계획이 미흡했던 데에서 비롯된다. 개정된 법은 재외국민 보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며, 위기 대응을 포함한 공관의 역할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워홀 참가자처럼 현지에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한 국민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은 뒤따르지 않았다. 그 결과, 지원 수준은 여전히 개정 이전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박 변호사는 “영사조력법이 2021년 처음 시행되고 그동안 재외국민 보호의 근거가 되는 체계적인 근거법령 및 가이드라인이 없었다”고 역설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워홀 관련 플랫폼에서 안전 정보를 통합해 제공하는 해결 방안이 제기된다. 현재 대사관과 각국 재외공관을 통해 워홀 중 발생한 사건·사고 사례와 피해 현황이 수집되고 있다. 이를 종합해 안내하면 청년의 안전한 해외 체류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박 대표이사는 “정부가 제공하는 공신력 있는 플랫폼을 통해 종합된 정보는 워홀 안전 예방에 필수적”이라고 전했다.

해외 취업 과정 중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기업 운영 이력 검증 의무화 및 정보 비교·분석 자동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구인 공고를 낸 해외 기업이 실제로 각국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기업 신뢰도 평가 지표 등을 통해 확인하는 방식이다. 또한 과거 플랫폼에 등록된 기업 정보가 있다면 이를 기반으로 최신 현황을 자동 분석하는 체계다. 이경재(법무법인 TWC Lawyers) 변호사는 “워홀 협정 체결 국가의 협조가 이뤄진다면 기업별 신뢰도 평가 시스템 등의 해결책이 실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영사조력법에 세부적인 지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워홀에서 발생하는 임금 체불, 주거 사기 등의 사건·사고는 유형화된 형태를 보이는 만큼 피해 유형에 따른 조력 방식과 기준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이를 바탕으로 청년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나중에 갚게 하는 등의 방식을 택할 경우 현실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제시된다. 이 학생은 “워홀 국가에서는 거주지가 갑작스럽게 사라지며 피해가 심화될 수 있다”며 “워홀 청년에게 긴급 거주지 지원 등의 보호책이 마련된다면 효과적인 구제 방안이 될수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정부 차원의 업무 계획을 세운 후 재외공관 인력 및 예산 확보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방안이 거론된다. 당시 법령이 전면 개정된 후 충원돼야 할 인력과 예산의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방치됐기 때문이다. 박 변호사는 “재외국민 보호가 매우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알리고 이에 따라 충분한 예산과 인력 등이 배정돼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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