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오랫동안 안정적인 일자리의 상징이었다. 정년이 보장되고, 외부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제도적 울타리는 직업공무원제가 지닌 본래의 장점이었다. 직업공무원제는 개인에게는 외부적 변화에도 안정성을 보장해 평생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제도적으로는 이해관계에 좌우되지 않도록 하여 장기적 안목에서 공공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도록 설계된 제도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행정의 풍경은 시대와 함께 달라졌다. 권위와 통제 중심의 행정이 ‘서비스’로 전환됨에 따라 공무원은 단순한 집행자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원하는 서비스 제공자로 자리 잡았다. 규정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폐쇄적 절차에서 열린 행정으로 변화하였고, 이는 시민들의 편익을 향상시키고 주민 친화적 제도를 확산하는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최근 행정 현장은 새로운 모순에 부딪히고 있다. 서비스 지향이 강조되면서 공무원의 역할은 점차 개별 민원 해결과 즉각적 대응에 집중됐고, 무리한 요구를 감내하는 공무원의 모습은 대중에게 흔하고 익숙한 이미지로 굳어졌다. 우수 인재의 유입이 줄고 이탈이 늘어나는 것은 인사행정에서 큰 고민거리가 되었다. 단순한 안정성만으로는 공무원의 직업적 가치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행정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좁다. 많은 시민들은 민원 창구에서 만나는 공무원의 모습이 행정을 대표한다고 이해한다. 물론 민원 처리는 행정의 중요한 기능이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행정을 설명할 수는 없다. 행정은 공동체 전체를 위한 장기적 비전을 그려내는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행정이 직면할 문제들은 더욱 복잡하다. 인구 감소, 환경 위기 등은 단순 민원 처리 방식으로는 대응하기 어렵다. 이 난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행정의 기능과 공직자의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새롭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 공익을 바라보는 힘, 시민의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사회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모두가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행정을 불편을 해소하는 창구로만 이해하지 않고, 사회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보는 시선의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강혜연(융합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