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혐오할 준비가 된 사람들 (한성대신문, 526호)

    • 입력 2017-09-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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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1-10 10:22

240번 버스 논란이 오해로 벌어진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버스기사 딸이 SNS에 해명글을 게시하기 전, 버스기사는 어느새 ‘버스에서 혼자 내린 어린아이를 따라 내리지 못해 울부짖는 어머니를 욕설과 함께 무시한 사형감 인간말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버스 CCTV 판독 결과, 당시 어머니와 아이는 떨어져 있었고 아이가 버스에서 내린 후 버스 뒷문이 16초간 열려있었다. 또한 어머니는 아이가 버스에서 내렸음을 인지하지 못하다가 버스가 출발하고 2차선에 진입했을 때 하차를 요구했으며, 버스기사는 어머니에게 욕설을 하지 않았다.
버스기사 측 해명글이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진 후, 비난의 화살은 순식간에 어머니에게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자기 아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아동학대 맘충’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CCTV 공개를 원하지 않았고 일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으며 직접 신고나 제보를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초기 제보자의 사과문이 해당 카페 와 SNS에 전파되면서 어머니를 향해 증오를 내뿜던 사람들이 조심스레 손가락을 거두고 다시 언론에게 책임을 물었다. 이번에는 ‘사실 파악도 하지 않고 무작정 기사를 쏟아낸 기레기’라며 언론을 모독했다. 하지만 당시 언론은 240번 버스 사건 정황과 초기 제보자가 제보한 사실을 전달했을 뿐이었다.
요즘 우리는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24시간 혐오 대기 중이다. 매 순간 혐오를 장전하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고 뜯고 할퀸다. 증오와 분노로 똘똘 뭉쳐 누군가를 저주하며 하루하루 버텨가는 불안한 사람들, 그리고 우리.
지금 우리는 누군가를 ‘비판하고 잣대를 들이밀어야’만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인터넷에 떠도는 글 몇 편을 읽고 얼마나 큰 자신감을 얻었는지 다수가 서로 격려하기까지 하면서 혐오와 증오는 격렬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러다가 우리는 머지않아 인간사회를 불신과 살의가 난무한 파국으로 이끌게 될 것이다. 이 순간에도 바득바득 이를 갈며 혐오 대상을 찾아다닐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저 마음 한 켠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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