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매운맛. 요리프로그램이나 먹방, 식품 광고에까지 흔하게 쓰이는 문구다. 한국인은 매운맛을 좋아하고 잘 먹는다는 생각이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엽기떡볶이’나 ‘불닭볶음면’처럼 ‘더 맵다’는 것을 앞세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상품들도 있다. 애초부터 떡볶이와 볶음면 모두 매운 고추가 들어가지만 많은 사람이 더 맵고, 자극적인 맛을 원하니 ‘매운맛’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매운 음식을 못 먹는 한국인도 있다. 슬프게도 내가 바로 그 한국인의 매운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다.
이 ‘한국인의 매운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음식점에 가도 주문할 수 있는 메뉴가 적다. 김치나 고추장이 베이스로 사용된 음식, 청양고추로 국물을 낸 음식은 모두 경계대상 1호다. 이런 음식을 하나씩 선택지에서 배제하다 보면 남는 건 치킨마요 같은 느끼한 음식이나 계란찜 같은 순한 음식이다. 치킨마요나 계란찜도 먹고 싶지 않은 날에는 억지로 매운 메뉴를 시키며 ‘청양고추는 빼주세요, 덜 맵게 주세요’ 하며 한 끼를 먹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한다.
하지만 고추만 빠진 음식에선 잡내와 비린내가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본래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추를 뺐을 때 매운맛뿐 아니라 다른 맛도 변한다는 걸 모르거나, 알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당은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오히려 더 매워질수록 맛있다는 평가를 받고, 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맵지 않은 맛을 찾는 사람을 위한 요리법을 고민하지 않는다.
안 매운맛을 찾는 이들이라고 심심한 음식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매운맛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도 자극적인 맛을 즐긴다. ‘한국인의 매운맛’ 을 모르는 우리가 늘 듣는, 안 매우면 무슨 맛으로 먹냐는 질문은 잘못됐다. 안 매운 메뉴들이 그것밖에 없는데 뭘 어쩌란 말인가. 앞으로 이런 질문을 하려거든 식당에 물어라. 왜 안 매운 메뉴들은 건강식이나 저염식 같나요? 맵지 않으면서도 맛있는 음식이 필요한데요.
김태은(한국어문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