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음료수만 나오는 자판기 "이제 안녕~" (한성대신문, 534호)

    • 입력 2018-05-14 00:00

 
무더운 여름, 자판기에서 탄산음료 한 캔 뽑아 마시면 잠시나마 몸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자판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비단 시원한 음료만이 아니다. 버튼만 누르면 궁금증을 유발하는 책 상자를 얻을 수 있고, 마음의 증상에 맞는 처방전을 얻을 수 있는 ‘이색 자판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판기에서 설렘 하나가 ‘땡그랑’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마시면 갈증은 풀린다. 그러나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마음 속에는 어떤 설렘의 새싹조차 움트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여기 당신의 감성에 한 줄기 빗물을 내려줄 자판기가 있다.
  고양 스타필드에 있는 ‘설렘자판기’ 안은 음료수 캔 대신 정체를 알 수 없는 상자로 가득 차 있다. 상자에는 ‘추리’, ‘로맨스’ 등 8가지 장르만 적혀 있어서, 도대체 어떤 책이 들어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자연히 소비자는 ‘상자 안에 어떤 책이 들어있을까’ 하는 호기심을 느끼게 되고, 이는 곧 설렘으로 이어진다.
  또 한 가지, 이 자판기의 특기할 만한 점은 대학생이 운영하는 자판기라는 것이다. 설렘자판기는 국제 비영리 단체 ‘인액터스(Enactus)’ 연세대학교 지부에 속한 학생들이 결성한 프로젝트 ‘책잇아웃’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지윤(영어영문 4) 책잇아웃 팀장은 “청계천 헌책방 거리가 쇠퇴하는 실정이 안타까워, 이를 돕기 위해 자판기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자판기로 올린 수익의 일부는 본래 취지에 맞게 책을 제공한 헌책방 사장에게 분배된다. 자판기를 이용하는 것만으로도 설렘을 느낄 수 있고, 동시에 이웃에게 도움도 줄 수 있게 된 셈이다.

자판기에서 처방전이 나온다고?
  몸이 아프면 약도 사먹고 병원에도 가면서, 정작 마음은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몸에 난 상처는 보이기라도 해서 금방 알아챌 수 있지만, 마음에 난 상처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서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는 우리의 고된 마음에 ‘처방’을 내려주는 ‘마음약방’ 자판기가 있다. 마음약방에는 각각 21가지 증상이 적힌 상자가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래막막증’, ‘작심3-illness’와 같이 신선하면서도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증상명은 이 자판기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다. 상자 안에는 각 증상에 따른 처방전이 들어있는데, 각각의 상황에 도움이 될 만한 영화, 도서, 대학로 산책코스 등을 추천해준다.
  마음약방은 ‘시민들의 마음을 돌보자’는 취지로 서울문화재단이 설치했다. 이에 대해 김진환(서울문화재단) 과장은 “본인이 겪고 있는 증상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돌아보고, 처방전에 적힌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이를 치유했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취업 준비, 학점 관리로 인해 마음이 점점 메말라가고 있는 요즘, 영화나 책을 고를 틈조차 없이 바쁜 일상에 자신을 내던져왔다면 오늘은 ‘이색 자판기’가 주는 소소한 낭만으로 마음을 촉촉이 적셔 보는 것은 어떨까?

윤희승 기자
[email protected]

고양 스타필드에 있는 ‘설렘자판기’(좌), 대학로 서울연극센터에 소재한 ‘마음약방’ 자판기(우)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