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에 40세가 되는 여자 배우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우연히 있었다. 배우가 되기까지 살아온 인생을 두서없이 얘기하는 자리였다. 어릴 때 생긴 심장수술 자국 때문에 육사 입학시험에 실격 당한 얘기부터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니며 해외 경험 없는 소수로서 절망하기도 하고, 방송 리포터가 잠깐 되기도 하다가, 청와대 최초의 여성 경호원이 되어 10년을 좌충우돌하며 버티다 30살이 훌쩍 넘어 배우가 된 얘기였다. 지금은 마흔 살 되기 전에 백덤블링할 수 있는 배우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인생은 영화와 같다’며, 자신의 인생을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겠다 생각하며 산단다.

이즈음 열독하는 일본의 소설가가 있다. 이름은 마루야마 겐지. 마루야마는 ‘인생은 도로(徒勞)다.’ 도로 아미타불이란다. 마루야마는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지프차를 몬다. 그저 달릴 뿐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릴 때 정신과 몸은 오직 달리는 것에만 집중한다. 이럴 때 자신이 존재함을 온전히 느낀단다. 달리기 위해 마루야마는 소설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마루야마는 인생에 대해 아주 냉소적이다. 과연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 죽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고 묻는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란 자신의 대표작에서 ‘인생은 소풍이다’라고 했다. 잘 즐기다 하늘로 돌아가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면서….

인생은 게임이다. 모두가 하고 있는 게임은 너무 어렵지 않아야 한다. 너무 어려우면 많은 사람들이 포기한다. 너무 쉬워도 안 된다. 게임은 적당히 어려워야 하고 계속 레벨업이 돼야 성취감으로 주야장천 게임에 매달린다. 그래야 게임회사의 매출이 늘고 간혹 대박 나는 게임이 되어 성과급을 챙길 수 있다. 게임인 인생이 너무 어려우면 젊은 나이에 자살해 버린다. 적당히 어려운 인생은 승급과 승진을 거쳐 인간의 본능인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고 계속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자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난 인생이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여행은 소풍이나 게임이나 영화와 같이 끝이 있다. 정주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환상을 찾아 떠나는 여행 말이다. 환상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 것이다. 여배우의 꿈이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은 인생을 사는 것이란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래, 내 인생은 세계여행이다!

윤재건(기계전자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