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4년간 운영됐던 라이브 공연장인 ‘브이홀’이 폐업을 결정했다. 그 뒤를 이어 ‘나무와 물’ 예술극장도 2003년에 개관한 이후 18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외에도 공연계에 상징적인 공연장들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는 공연계에 유독 혹독했다. 공연계는 기약 없는 공연 중단으로 재정난에 시달려야 했다. 실제로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코로나19에 의한 공연예술분야 피해현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연시설 및 단체가 휴업하거나 폐업한 경우는 39.6%인 것으로 나타났다.
칼바람 맞은 공연계
코로나19로 공연계는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콘서트는 물론 뮤지컬, 연극, 클래식 공연 등이 줄지어 취소와 연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계의 현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최근 공연예술통합전산망 종합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공연건수는 5,390건이다. 이는 2019년 9,574건과 비교할 때 44% 줄어든 수치다. 공연장을 찾는 관객 수도 크게 감소했다. 공연 예매 사이트 ‘인터파크’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연 티켓 매출이 2017년 4,411억 원에서 2020년 1,303억 5,600만 원으로 급감했다. 올해 들어 회복세를 보이지만 여전히 예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공연이 대안 없이 취소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조사한 「2020년 1~4월 사이에 취소·연기된 문화예술행사 규모」 자료에 의하면, ▲서울 1,614건 ▲경북 156건 ▲부산 150건 등이 취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연극단체 ‘극단배우들’의 대표를 맡고 있는 박성원 배우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연 일정이 불규칙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극단체뿐만 아니라 뮤지컬, 영화 등 공연계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코로나19 관련 문화예술분야 피해 추정」을 보면 공연예술분야는 약 1,967억 원, 시각예술분야는 약 678억 원으로 공연 및 시각예술분야에서 총 2,646억 원의 매출 피해가 발생했다.
텅 빈 객석
문제는 유독 공연계에만 사회적 거리두기 세부지침(이하 세부지침)이 엄격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관객은 공연장의 세부지침에 따라 동반자와도 한 칸 혹은 두 칸씩 떨어져 앉아 공연을 봐야 했다. 엄격한 세부지침은 매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좌석 가동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해 수익률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한종신(광주연극협회) 사무처장은 “일행과도 거리두기를 해야 할 때는 공연장에 대략 10명 정도의 관람객만 있을 수 있었다. 그 당시 피해 금액은 상당했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공연계 종사자들은 지난 1월 ‘코로나피해대책마련 범 관람문화계 연대모임’(이하 연대모임)을 조직했다. 연대모임은 ▲문화산업에 기초산업과 동일한 지원을 할 것 ▲창작자와 문화산업종사자에 대한 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할 것 ▲좌석 70%까지 가동을 허용할 것 ▲퇴근 후 문화생활을 위해 운영시간 제약을 완화할 것 등의 내용을 포함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중 매출과 직결되는 좌석 가동률 항목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졌다. 공연장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업계는 좌석 가동률 70%를 넘어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이다.
연대모임을 비롯한 여러 예술단체가 공연장 내 감염률 0%를 근거로 세부지침 완화를 요청한 결과, 정부가 지난 2월에서야 ‘동반자는 함께 앉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된 완화 세부지침을 발표했다. 현재 수도권 내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뮤지컬 등 공연계는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중음악 공연의 경우 ‘모임·행사’로 분류돼 100인 이상 모일 수 없어 여전히 100인 이상 관람하는 대중음악 공연은 취소·연기되는 실정이다.
일부 예술 단체에서는 떠나간 관객들을 잡기 위해 온·오프라인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예술의 전당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했던 연극 <늙은 부부이야기>를 영화 제작한 뒤 IPTV와 OTT 서비스로 제공했다. EMK뮤지컬컴퍼니 제작사도 창작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온라인으로 중계했다.
대규모 예술단체는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지만 소규모 예술단체는 이조차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박 대표는 “온·오프라인 공연을 동시에 진행하면 비용이 많이 발생한다. 재정 부족으로 줄줄이 폐업하는 상황에서 온라인 공연 병행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며, “실행에 옮긴다 해도 연극을 영화보다 질 높은 영상으로 제작해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유명무실한 지원 제도
각 지방자치단체 및 일부 예술단체는 공연계를 지원하기 위해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예술인 긴급재난지원금(이하 예술인 지원금), 생활안정자금대출, 2021년 코로나19 특별융자 등이 그것이다. 그중 각 지방자치단체가 코로나19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술인에게 지급하는 예술인 지원금에 대해 문제가 제기됐다.
공연계 종사자들은 예술인 지원금이 유명무실한 제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제도에 빈틈이 많아 실질적으로 수혜를 받은 이들이 적다는 것이다. 예술인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예술활동증명서(이하 증명서)를 필수 제출해야 한다. 이때문에 증명서 발급 신청자가 단 시간에 몰리면서 발급까지 10주에서 15주가 소요됐다. 문제는 예술인 지원금 신청 기간이 대부분 2주였다는 것이다.
증명서 발급 기관인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에는 한 달이면 증명서를 발급 받을 수 있었는데, 예술인 지원금 정책으로 인해 증명서를 발급하고자 하는 사람이 증가하면서 발급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김자영 연출가는 “업무량이 증가해 일처리가 지연됐다면, 일시적으로 추가 인력을 배치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증명서 대신 다른 인증 수단을 마련하는 정부 차원에서의 노력이 있어야 했다”고 역설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창작준비금과 예술인 지원금의 중복 신청을 제한한 것도 지적됐다. 창작준비금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제공하는 지원금 제도로, 예술인들이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창작활동을 포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박 배우는 “이 때문에 우리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배우가 예술인 지원금을 받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공연계 종사자들은 정부가 실질적인 지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 처장은 “공연장 대관료는 전액 완납이 원칙이기 때문에 코로나19 이전보다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극장이 위기에 빠졌다”며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대관료 지원 사업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출가는 “많은 예술인이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좋은 취지에서 만들어진 여러 지원이 현실적으로 공연계 종사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선 공연계 현장에 대한 파악이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조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