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재주는 연구자가 부리고 돈은 학술DB가 번다 (한성대신문, 621호)

    • 입력 2026-04-1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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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04-13 00:01

지식의 생산과 공유는 학문의 핵심 가치다. 그중 ‘학술 데이터베이스(이하 학술DB)’는 연구 성과를 보존하고 유통하는 등 학술연구 환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민간 학술DB 중심의 독점적 유통 구조가 형성되면서 연구자와 학생들의 권리가 침해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학술DB는 학술지와 학위논문 등이 저장된 데이터 저장 공간이다. 학술DB는 크게 공공 학술DB와 민간 업체가 운영하는 민간 학술DB로 구분된다. ‘KCI’, ‘RISS’ 등의 공공 학술DB는 논문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구축·운영하는 만큼 공공성과 접근성 확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DBpia’, ‘KISS’로 대표되는 민간 학술DB는 학회와의 계약을 통해 원문을 수집·유통하며, 사용자는 논문 열람을 위해 일정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현재 민간 학술DB는 논문 유통 구조 과정의 핵심 주체다. 연구자가 논문 게재를 위해 학회에 심사료와 게재료 등을 지불하면 학회는 논문 심사 후 연구자의 논문을 학회 홈페이지 등에 최종 게재한다. 이후 학회와 민간 학술DB 간 계약을 통해 논문은 해당 DB에 게시된다. 오선혜(청주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민간 학술DB는 구독기관으로부터 받은 구독료의 일부를 계약 조건에 따라 저작권료로 배분하고, 학회는 이 수익으로 학회 운영 비용을 충당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논문 유통 시장의 규모가 확대되면서 중첩되는 구독료가 대학에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논문이 여러 학술DB로 분산해 등재되니 대학 등 기관이 여러 학술DB를 한 번에 구독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에 정부는 ‘대학라이선스 학술DB 구독지원’ 등을 통해 대학의 구독료를 지원하고 있으나, 지속적으로 중첩돼 대학의 재정 부담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의 「2025 대학도서관 실태조사 결과분석」에 따르면 전국 대학도서관 전체 자료 구입비 대비 전자자료 구입비 비율은 2021년 70.3%에서 2025년 77.5%까지 매년 상승하는 추세다. 실제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학술DB를 구독 중인 고려대학교는 186개에 달하는 학술DB를 학생에게 제공하고 있다.

상승하는 구독료로 인해 대학이 구독을 해지하며, 비수도권과 수도권 대학 간의 정보 격차가 발생한다. 실제로 구독 종수 상위 20개 대학 중 11개 대학이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이처럼 비수도권 대학 학생들의 지식접근권이 상대적으로 열악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오 교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 간의 정보 격차는 이제 단순히 우려를 넘어 심각한 현실이 됐다”며 “학교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빠듯한 비수도권 대학들이 매년 수억 원씩 오르는 구독료를 감당하지 못해 정보 접근권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의 저작권이 민간 학술DB에 넘어가 이들이 모든 저작권을 독점하는 주객전도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원저작자인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성과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논문 유통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다는 지적이다. 이지연(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연구자는 비용을 내고 지식을 생산하지만 상업적 이익에서는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 현재 학술 출판 생태계의 가장 근본적인 모순”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연구 성과가 지식 거래 사이트에서 헐값에 유통되면서 논문의 학술적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간 학술DB는 수익을 위해 논문 사용권을 ‘해피캠퍼스’ 등 지식 거래 사이트에 재판매한다. 그러나 벌어지는 무단 2차 유통을 막지 못해 연구자의 학술 자산이 소모품으로 취급받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지적이다. 계승균(부산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가공 및 배포 행위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라며 “이는 손해배상청구의 대상이 된다”고역설했다.

학회와 민간 학술DB 간의 계약 구조가 구독료 중첩의 원인으로 제기된다. 민간 학술DB는 특정 논문을 자사 플랫폼에서만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배타적 공급 조항’을 학회와의 계약 조항에 포함시킨다. 대학이 분산된 논문을 열람하기 위해 각 학술DB를 모두 구독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에 대학은 한정된 예산 안에서 비효율적인 지출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오 교수는 “한정된 도서관 자료 구입비 중 학술DB 구독료가 최우선으로 집행되면서 단행본 구입은 뒷전으로 밀리는 기형적인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논문 제공 양극화의 원인으로 민간 학술DB의 독점 시장 구조가 꼽힌다. 민간 학술DB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져 민간 학술DB가 일방적으로 가격을 주도하게 된다는 의미다. 수도권 대학에 비해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비수도권 대학 입장에서 이는 예산 압박으로 다가온다. 김은기(계명대학교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특정 학술DB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가격 결정 구조가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된다”며 “이러한 독점구조가 지속되는 한 대학의 재정 여건에 따른 정보 격차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저작권이 민간 학술DB에 종속되는 문제는 연구 실적이 절실한 연구자에게 저작권 양도 동의서 작성을 강요하는 구조가 원인으로 꼽힌다. 논문 게재를 위해 저작권을 양도하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선택이다. 게재를 위한 필수 절차라는 학회의 규정 탓에 연구자는 권리가 박탈되는 모순을 인지해도 을의 위치에 놓이게 된다. 정경희(한성대학교 크리에이티브인문학부) 교수는 “90년대 중반 학술DB가 등장하며 유통 권한 확보를 위해 저작권 양도를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학회는 이를 관행적으로 수용하며 연구자에게 저작권 양도를 요청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논문의 상품화는 지식 거래 사이트에서의 재가공을 정부와 민간 학술DB가 단속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민간 학술DB의 값비싼 유료 가격으로 인해 저렴한 자료에 대한 수요는 폭발적이다. 그러나 저작권법상 재가공에 대한 명시가 충분하지 않거나 법이 있어도 집행이 느슨한 실정이다. 이지연 교수는 “민간 학술DB가 지식의 가치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 부여와 관리 감독 체계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독점적 유통 구조에 따른 대학의 재정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공동 구독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이 대두된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등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한 국가 라이선스 지원을 확대해 대학 규모와 관계없이 논문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국가 차원의 공동 구독 모델은 대학 재정 부담을 완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공공기관과 민간 학술DB 간 역할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핵심 과제”라고 진단했다.

민간 학술DB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공공 학술DB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KCI, RISS 등 기존 공공 학술DB의 정보 구축 정도와 UI 편의성 등을 민간 학술DB 수준으로 상향시켜 이용자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향후 공공 학술DB와 민간 학술DB 간의 역할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가 논문 유통 생태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정부가 공적 기금을 통해 학회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단순한 재정 보조를 넘어 학회가 논문을 독립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장기적 지원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견해다. 정 교수는 “공적 기금 지원을 통해 연구자, 학회가 논문을 심사, 게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금전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문 재가공을 막기 위해 정부가 유통 구조에 대한 관리 책임을 민간 학술DB에 명확히 부여하는 것이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민간 학술DB 업체가 자체 모니터링 시스템을 가동해 지식 거래 사이트를 넘어 이뤄지는 2차 유통을 상시 단속하는 방식이다. 또한 논문 파일에 이용자 식별 정보를 담은 ‘디지털 워터마크’ 등을 삽입해 불법 유통 경로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지연 교수는 “논문 이용 시 저작권자 확인 의무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학술 유통 구조는 지식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연구자 중심으로 재정립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유통 과정에서 정부의 법적 가이드라인, 대학의 적극적인 연구 환경 인프라 지원, 학술DB의 책임성 제고 등 3주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단순히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고질적으로 자리잡은 유통 구조를 개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학술 지식이 사회적 공유 상태가 되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뒷받침할 제도적·재정적 인프라를 갖추는 국가적 책임이 수반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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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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