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학법인, 장애인 고용의 불모지였다 (한성대신문, 586호)

    • 입력 2023-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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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2-27 00:00

장애인 고용률 ‘2%의 벽’ 견고한 사학

부담금으로 의무 모면한다는 지적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등 방안 多

대학은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 공간일까. 많은 대학이 교내에 경사로, 점자판 등을 설치해 장애인의 보행 편의를 증진하고, 오디오북 등을 확충해 장애인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립대학과 그 학교법인의 경우, 장애인 고용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수십억 원대의 ‘장애인 고용부담금(이하 고용부담금)’을 정부에 납부하고 있다.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28조에는 상시근로자가 50명 이상인 사업장은 근로자 총수의 3.1% 이상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고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또한 동법 제33조는 3.1%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을 경우, 사업주가 매년 고용부담금을 납부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장애인이 능력껏 직업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고용 촉진과 재활을 돕기 위한 목적으로 1990년에 제정됐다.

전국의 사립대학 학교법인이 매년 지불하는 고용부담금은 수백억 원대에 이른다. 송옥주(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사립대학교 학교법인 장애인 의무고용현황’에 따르면, 학교법인의 고용부담금은 2016년 약 223억 3,700만 원에서 2020년 약 390억 4,600만 원으로 계속 증가해 왔으며, 장애인 고용률은 2020년 기준 1.93%로, 5년 동안 2%를 밑돌고 있다.

장애인 고용의무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공공기관과 기업체를 정리한 명단에 사립대학 관련 사업장이 대거 포함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는 장애인 고용률이 3.1%의 절반인 1.55%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고용 노력을 다하지 않은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공개된 ‘장애인 고용의무 불이행 기관·기업 명단공표’에는 대학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13개와 사립대학의 산학협력단 10개가 이름을 올렸다.

학생들은 사립대학과 학교법인의 이러한 상황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양희원 학생은 “전체 사립대학이 약 390억 원을 고용부담금으로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며 “대학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할 때,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휴학생인 주상현(20) 씨는 “장애인 의무고용 정책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고용부담금의 규모가 이렇게나 큰 것은 알지 못했다”며 “장애인 의무고용 정책이 장애인 고용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면 해당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수사회에서도 개선을 주문한다. 전지혜(인천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애인 고용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부분”이라며 “대학은 이윤을 창출하는 일반적인 기업과는 다르기에 당연히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강동욱(한경국립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는 “학교법인도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선도적으로 장애인 고용의무를 이행해야 함에 동의한다”고 전했다.

다수의 사립대학과 그 학교법인은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장애인을 고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과 연구가 주요 업무인 만큼 교원 인력을 가장 필요로 하는데, 학사 이상의 학위를 소지해 교원으로 채용할 수 있는 장애인의 수가 현저히 적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교직원의 주요 업무는 학생·교원의 민원 응대이기에, 직원으로서의 장애인 고용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외국어대학교가 소속된 학교법인 동원육영회 관계자는 “학위를 소유하고 있는 장애인을 찾기 힘들 뿐 아니라 세분화된 학문 분야별로 장애인을 채용하는 것도 어려운 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학교법인의 이와 같은 입장이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반론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장애인에 적합한 직무는 어디에나 마련할 수 있기 때문에, 법인의 노력이 부족하다는 반박이다. 전 교수는 “장애를 가진 박사학위 소지자도 생각보다 많고, 이들이 임용의 기회를 얻지 못해 강사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법인이 장애인은 비장애인만큼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고, 장애인 노동자에 대한 인건비를 낭비되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학교법인이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의무를 외면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실제로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과 고용부담금을 단순 비교해보면, 고용부담금은 대학법인 입장에서 비교적 적은 금액임을 알 수 있다. 2020년 기준 학교법인 중에서 가장 많은 고용부담금을 지불한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는 약 8,004억 2,800만 원 가량의 수익용 기본재산을 보유했고, 약 67억 8,400만 원의 고용부담금을 납부했다. 수익용 기본재산의 0.8%가량을 납부한 것이다.

학교법인이 경증장애인을 주로 고용하고 중증장애인의 채용을 기피하는 것 또한 문제로 꼽힌다. 물론 이는 학교법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기업체가 개선해 나가야 할 지점이라 여겨진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학교법인의 관계자는 “직원이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 교원과 학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제약이 발생한다면 대학 입장에서는 그것이 또다른 어려움으로 다가온다”고 전했다.

학교법인을 포함한 기업체가 중증장애인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은 충분히 마련돼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는 사업주가 중증장애인을 고용하면 ‘고용관리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사업주는 지원받은 고용관리비용을 통해 중증장애 노동자의 업무 이행에 도움을 주는 ‘작업지도원’을 선임·배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보전할 수 있다. 또한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주에게 작업용 보조공학기기*를 무상으로 지원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김현종(한국장애인고용공단 소통협력실) 실장은 “중증장애인의 직업생활을 위해 국가에서 환경적으로 지원해주는 부분이 있다”며 “학교법인이 선입견을 갖지 않고, 지원책을 활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다면 중증장애인의 고용도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미 몇몇 학교법인은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을 장애인 고용의무 준수 방안으로 선택했다. 모회사, 즉 학교법인이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을 위해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해당 자회사에서 고용한 장애인을 모회사에서 고용했다고 간주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법인 아래에 설치된 자회사에 대학의 교육환경 조성 업무를 용역의 형태로 맡긴다. 김 실장은 “학교법인 경희학원이 설립한 ‘경희매니지먼트’는 교내 카페 운영을 포함한 다양한 직무를 발굴해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고 예시를 들었다.

고용부담금 산정 체계의 변화를 통해 학교법인이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으로 의무를 면피하는 꼼수를 방지해야 한다는 해결책도 제시된다. 월 단위로 정해지는 고용부담금은 ‘사업장이 해당 월에 고용해야 하는 장애인의 총 수’에서 ‘사업장이 해당 월에 고용한 장애인의 수’를 뺀 값에, ‘부담기초액’을 곱한 금액이다. 고용노동부고시 『장애인 고용부담금의 부담기초액』에서 부담기초액은 장애인을 많이 고용할수록 적게 지불하도록 정해져 있다. 장애인을 한 명도 고용하지 않은 사업장의 부담기초액은 최저임금(201만 580원)과 동일한데, 의무고용률은 준수하지 못했지만 고용의무인원의 3/4 이상의 장애인을 고용한 사업장의 부담기초액은 120만 7,000원으로 책정된다. 학교법인이 고용부담금을 ‘적당히 아낄 수 있는’ 정도까지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 교수는 “2018~2020년 기준 학교법인의 장애인 고용률 평균인 1.8~1.9% 수준으로 장애인을 고용했을 때, 사업장의 부담기초액은 크게 줄어든다”며 “부담기초액을 고용인원수에 관계없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고정시켜야 학교법인이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컨설팅을 통해 장애인 고용 지원 정책을 홍보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지 않은 학교법인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컨설팅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학교법인의 장애인 고용 독려를 위해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있는 부분을 안내하고 고용의무를 준수하도록 한다는 방안이다. 전 교수는 “컨설팅의 제도화를 통해 개별 학교법인마다 계획을 수립하고 이행하도록 하는 방향도 고려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 재정 지원을 위한 평가에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률을 평가 항목으로 신설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정부가 학교법인이 장애인 고용을 의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미달된 대학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삭감하고, 그 삭감분을 장애인 고용의무를 이행하거나 초과 달성한 대학에 지급하는 방안이다. 김 실장은 “기획재정부에서 진행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재정 평가에는 이미 장애인 고용의무 항목이 들어가 있다”며 “대학 평가에도 해당 항목이 신설된다면 학교법인이 적극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은 학교법인이 장애인 직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장애인 고용 증대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김 실장은 “국내 카드사 등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에서 지체장애인·시각장애인 직원이 다수 근무하고 있고, 악성 민원 등도 처리하고 있다”며 “사례에 비춰 봤을 때 대학이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장애인 고용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역설했다.

대학은 미래를 이끌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기에, 이러한 사회적 책무를 다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 교수는 “대학은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나갈지에 대해 고민하는 장이 돼야 한다”며 “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공부하는 모습이 대학에서부터 자연스러워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보조공학기기: 장애인, 노인 등이 일상생활 및 직업생활을 잘 영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개발된 모든 기기를 통칭하는 말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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