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주4일제, 환상이 아닌 현실이 되려면 (한성대신문, 611호)

    • 입력 2025-05-1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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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05-12 00:01

‘주4일제’. 휴일이 늘어나는 꿈만 같은 단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이하 대선)를 앞두고 주요 정당들이 주4일제와 주4.5일제를 거론하고 있다. 국민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에서다. 주4일제는 평일 하루를 추가 휴일로 지정하는 방식이며, 주4.5일제는 근무 시간을 조정해 하루를 더 쉬거나 퇴근을 앞당기는 제도다. 휴일이 늘어난다는 점은 누구에게나 달콤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자들도 이를 의식한 듯 관련 공약을 꺼내들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필수 과제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연차조차 온전히 소진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들의 평균 연차 일수는 13.0일이지만 이중 4.3일은 사용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00~299인 규모의 중소기업에서는 연차 사용에 가장 큰 걸림돌로 ‘상급자 및 동료의 눈치’를 꼽은 비율이 40.3%에 달했다.

쉬는 것조차 눈치를 보며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그 공백은 자연스레 남은 이들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일이 멈추지 않는 환경에서, 한 사람의 휴식은 곧 누군가의 부담으로 전환된다.

이는 휴식권이 박탈된 문제가 아니다. 일상에 대한 통제권, 즉 ‘시간 주권’의 부재를 보여준다. 시간 주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를 말한다. 쉴 수 있는지의 여부마저 타인의 기준과 조직의 구조에 좌우되는 형태다. 시간 주권이 조직에 종속된 상황에선 제도적 휴일이 늘어난다 한들 그것이 실제 삶의 여유로 이어지긴 어려워 보인다.

주4일제가 현실화되려면, 그 밑바탕부터 다져야 한다. 시간 주권을 실현해 휴식을 보장할 수 있는 기반 형성이 필요하다. 대체 인력 확보, 업무 분담 재설계, 휴식권 보장을 위한 변화도 요구된다. 나아가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등 제도 밖에 놓인 이들의 시간권도 함께 고려돼야 할 테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은 익숙하다. 그러나 노동자의 시간은 여전히 자기 것이 아니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스스로의 시간을 당당히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하루 더 쉬게 해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이 아닌,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공약이 등장하길 바란다.

김혜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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