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이 깃든 자리
여행은 시작하기 전부터 우리를 많은 고민에 빠트립니다. 가서 어떤 옷을 입을지, 신라면은 몇 개를 챙길지, 인천공항행 버스는 어떤 시간대의 것을 탈지 등 하나부터 열까지 선택의 연속이지만 왠지 모르게 입가에는 옅은 웃음을 띠고 있습니다. 이국적인 곳으로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설레는 시간입니다. 이러한 설레는 마음으로 개강 전, 저는 2월에 홍콩으로 떠났습니다.
2월의 한국은 너무나도 춥습니다. 늘 그렇듯이 뉴스에서는 역대급 한파다 라고 하며 옷들 따듯하게 입으라고 일러주었고, 밖에 나갈 때마다 귀가 베이는 듯한 추위를 느꼈습니다. 그런 서울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다 4시간 동안 바다를 건너니, 제 마음에는 따듯한 공기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이런 홍콩의 날씨는 한국에서는 5월이나 돼야 느낄 수 있는데, 남들보다 3개월 먼저 따듯한 날씨를 만끽한 저는 소박한 우월감에 빠졌습니다.
‘2월의 홍콩’은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 구경을 하다 우연히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이렇게 여행을 가면 현지인이 사는 동네를 산책하며 구경하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특별하고 멋진 랜드마크를 돌아다니는 것도 중요하고 흥미로운 일이지만, 현지인들의 소박한 생활 양식을 엿보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인 것 같습니다. “여기 왔으면 여기는 무조건 가봐야 돼” “여기 왔으면 이 집은 무조건 가봐야 돼” 라는 강박이 우리를 피곤하게 할 때가 있고 또 너무 기대한 나머지 실망감이 클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음식점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을 때, 산책을 하다 우연히 근사한 정원을 발견했을 때 등등 우리는 계획된 것보다 우연이라는 상황이 성공적일 때, 더 열광하고 가치 있게 받아들입니다. ‘2월의 홍콩’도 마찬가지로 길을 걷던 도중 우연히 발견한 모습을 담은 것이고 또 우연히 택시가 지나가준 덕에 멋진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는 이 작품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삶도 여행처럼 모든 걸 계획대로 할 수는 없지만, 때로는 그런 우연 속에서 더 큰 감동과 의미를 발견하곤 합니다. ‘2월의 홍콩’은 그런 순간이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 오히려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고,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도 큰 행운이었습니다. 이 사진이 누군가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공기처럼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번 공모전 수상을 계기로 앞으로도 일상 속 작고 우연한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담아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지섭(사회과학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