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단발성 모임’이 청년층 사이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다. 어린 시절 놀이터에서 뛰어놀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경찰과 도둑’ 모임부터 처음 보는 이들과 감자튀김을 나눠 먹는 ‘감튀 모임’, 짧은 대화를 통해 상대를 알아가는 ‘로테이션 소개팅’까지! 모였다가 흩어지는 순간 자체를 즐기는 현장이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바로 지금 그 모임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보자.
임지민 기자
여기여기 모여라!
만남은 짧게, 연결은 느슨하게 최근 청년들 사이에서 가볍게 모였다가 흩어지는 단발성 모임이 새로운 관계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청년들은 명확한 목적이나 장기적인 계획 없이 특정 활동이나 취향을 매개로 모여 짧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빠르게 해산한다. 서용구(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는 단발성 모임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이는 관계 형성 방식의 변화와 맞물린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단발성 모임은 소속감을 확보하되 느슨한 연대’가 반영된 결과다. 오늘의 청년들은 다양한 사람과 부담없이 교류하며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한다. 짧은 만남만으로도 유대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임은 관계의 지속 여부와 상관없이 의미 있는 사회적 경험을 제공한다. 윤인진(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층은 관계에서 오는 심리•시간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사회적 연결감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 교수는 청년은 만남 자체에서 얻는 경험을 중요시하며 관계를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과 디지털 플랫폼에 익숙한 청년 세대의 특성 역시 단발성 모임이 확산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SNS, 메신저 등을 통해 빠르게 모임 정보를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다. 과거보다 관심사와 취향이 비슷한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단발성 모임이 물리적•시간적 제약 없이 이뤄진다. 새로운 사람과의 교류를 시도하는 문턱이 낮아진 셈이다. 윤 교수는 “디지털에 친화적인 청년 세대의 특성이 단발성 모임을 활발하게 하고 빠르게 확산되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분석했다.
오늘 경도할 사람
단발성 모임의 대표 주자는 경찰과 도둑 모임이다. 이른바 ‘경도’라고 불리는 이 단발성 모임은 제한 시간 동안 도둑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감옥에 갇힌 도둑은 동료 도둑의 도움으로 탈출하는 방식이다. 참가자 모집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이뤄지며, 모임은 동네 공원이나 운동장 등에서 진행된다. 실제로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에서의 경도 관련 검색량은 지난해 12월 전월 대비 6만 7.044% 급증했다. 서 교수는 “온라인 플랫폼 특성상 지역을 기반으로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편하게 모임을 형성하고 참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둑을 잡는다는 단순한 규칙 덕분에 처음 만난 이들도 쉽게 어울릴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경도 모임에서는 별도의 비용이나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누구나 곧장 참여할 수 있다. 안양대학교 영미언어문화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지현 학생은 “규칙이 단순해서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금방 어울릴 수 있었고, 별다른 준비 없이 바로 참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갑작스레 모여 뛰어다니는 청년들, 그 속내는 무엇일까. 경도 모임은 어린 시절 골목에서 뛰놀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가 되고, 실제로 몸을 움직이며 사람과 마주하는 경험이 해방감을 선사한다. 윤 교수는 “정해진 역할에 따라 마음껏 뛰어다니는 과정 자체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느낌을 준다’며 “몸을 움직이며 타인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경험이 일종의 해방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자가 직접 참여해 보니 동네에 사는 또래 청년들을 만나 뛰고 웃으며 교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시작 전에는 말을 아끼며 서 있었지만, 역할이 나뉘고 출발 신호가 울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참가자들은 “저쪽!“이라 외치고 도망치며 처음 본 사람과 자연스럽게 같은 방향으로 뛰어다녔다. 몇 분이 지나자 웃음이 터져 나왔고 어색함도 빠르게 사라졌다. 경도 모임에 참여한 숭실대학교 컴퓨터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연학 학생은 “처음 보는 또래 친구들과 편하게 교류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지역 커뮤니티가 소홀해진 시대인 만큼 일상 속에서 타인과 연결되고 싶다는 욕구가 놀이의 형태로 분출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감자튀김 위로 쌓인 이야기
경도에 이어 또 다른 형태의 단발성 모임이 등장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모여 감자튀김을 먹는 일명 감튀 모임이다. SNS와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감튀 모임 모집글이 잇따라 올라온다. 하나의 모임에 1,700명가량의 사람들이 가입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롯데리아나 맥도날드와 같은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관련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연학 학생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 매력 있다”고 말했다.
감튀 모임의 핵심은 감자튀김 하나가 낯선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교류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참가자들은 감자튀김을 늘어놓고선 식감이나 소스 조합에 대해 이야기한다. 좋아하는 음식이라는 공통분모가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끈다. 감자튀김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대화를 여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서 교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 낮은 소재는 자연스러운 대화와 공감 형성을 이끈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감자튀김을 매개로 취향을 공유하며 빠르게 친밀감을 쌓는다. 좋아하는 소스나 감자튀김의 식감에 공감하며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하나의 음식 취향만으로 연결되는 경험은 관계 형성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윤 교수는 “음식이라는 공통 분모가 존재하면 청년들은 부담 없이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자가 참여한 감튀 모임에서도 대화는 자연스럽게 감자튀김에서 시작됐다. 소스 궁합과 식감 차이에 대한 의견이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일상 이야기로 주제가 확장됐다. 감자튀김에 관한 토론 외에도 다양한 이들과 고민을 나누거나 사소한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취업 준비 과정에서 겪는 막막함이나 진로 고민 같은 현실적인 이야기도 오갔다. ‘청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대화는 빠르게 깊어졌다. 이지현 학생은 “처음에는 단순히 감자튀김만 먹는 자리라 생각했지만, 음식을 계기로 일상부터 고민까지 공유하며 동네 사람들과 편하게 교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러한 단발성 모임 흐름은 청년의 연애 시장에도 스며들고 있다. 바로 로테이션 소개팅이다. 기존의 소개팅이 사전에 정해진 짝과 비교적 긴 시간을 보내며 상대를 알아가는 방식이라면, 로테이션 소개팅은 한 공간에서 일정 시간마다 자리를 바꾸며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로테이션 소개팅을 운영하는 ‘러브매칭’의 양보현 대표는 “개인의 감정 소모와 관계 단절 위험을 줄이면서도 의미 있는 인연을 찾고자 하는 청년들을 위한 소개팅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로테이션 소개팅에서는 모두가 부담 없이 서로를 파악할 수 있다. 참가자들은 간단한 자기소개 카드를 작성한 뒤 일정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타이머가 울리면 자리를 옮긴다. 몇 분 동안 취향과 관심사를 나눈 뒤 다시 이동하면 또 새로운 상대와의 만남이 시작된다. 이같은 구조 덕분에 거절이나 실망에 대한 심리적인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짧게 반복되는 만남으로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연학 학생은 “취향이나 관심사 등 다양한 소재로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곤 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직접 참여했을 때 분위기는 예상보다 편안했다. 10분 간의 짧은 대화로 상대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대화를 이어 가는 과정에서 기자 자신이 새로운 인연을 만나는 상황에서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인지 돌아보는 순간도 경험했다. 이지현 학생은 “짧은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아가고 다양한 사람을 경험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며 “연인 관계에서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청년에게 만남은 길이보다 순간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잠깐 모였다가 흩어지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 서로의 취향과 생각을 나누고, 예상치 못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시선을 배우게 된다. 관계가 오래 이어지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얻는 깨달음과 교류의 즐거움이다. 단발성 모임은 청년이 자신을 돌아보고 타인을 이해하는 관계의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윤 교수는 “청년의 단발성 모임은 시대 변화에 따른 자연스럽고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