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에 올라> 일단, 멈춰보자 (한성대신문, 554호)

    • 입력 2020-04-06 00:00
    • |
    • 수정 2020-04-05 01:00

그날의 하루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일단, 1교시에 수업이 있어서 일찍 일어났다. 공강 시간엔 수업과제를 대충 해결했다. 모든 수업이 끝나고 나서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관심이 있는 업종이어서 하는 것은 아니고 다들 하기도 하고 자꾸만 돈이 필요한 곳이 생겨서, 일단 한 푼이라도 벌어야했다. 일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단 대충 씻고 냉장고를 뒤져 요기를 하니 벌써 시간이 자정에 가까워졌다. 일단 자자.

잠깐, 오늘 내가 지나쳐온 것들 중 나의 의지는 얼마나 첨가되었나. 물론 학교에 입학하는 것과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나의 선택으로 시작된 일들이다. 하지만 그 ‘선택’ 안에 나의 의지가 얼마나 있냐고 물으면 목소리가 점점 작아진다.

얼마 전, 발목을 돌릴 때마다 뼈에 소리가 나서 정형외과에 방문했다. 발목을 잇는 뼈와 뼈 사이에 충분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내 발목은 그 공간이 충분치 않다고 한다. 더 방치했다가는 관절염에 걸릴 수 있단다.

‘뼈와 뼈 사이의 공간’. 그것이 지금 내 발목에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공간이 과연 나의 발목에만 필요할까? 우리는 누군가 펼쳐놓은 카펫 위를 ‘일단’ 뛰고 걷느라 각자의 틈새, 공간을 잃어가고 있다. 그 카펫의 재질이 좋다거나 색이 고와서, 특별히 그 카펫이 마음에 들어서 그 위로 걷기보다는 당연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혹은 다른 사람이 그 위로 걸어가기에, 일단 그들을 따라 걷는다.

요즘 친구들의 앞모습보다 옆모습, 뒷모습을 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들 역시 나를 볼 때 그러하리라. 그건 아마 우리가 무언가에 자꾸만 쫓겨 서로 마주 볼 여유가 없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같은 길을 가는 빽빽한 인파의 사람들 속에서, 컨베이어 벨트 위에 탄 것처럼 하염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이 가득 차 있고 개인의 충분한 공간이 없는 곳에선 서로 부딪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다. 마치 나의 발목처럼. 그렇기에 잠시 눈을 감고 걸어갈 본인만의 카펫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작은 틈, 공간이 필요하리라. 다들 바쁘겠지만 우리 일단, 잠깐 멈춰보자.

이정호(인문 2)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