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한 표가 헛되지 않도록, 비례대표제 (한성대신문, 555호)

    • 입력 2020-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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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4-27 00:05

48.1cm.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쓰인 비례대표 투표용지의 길이다. 이번 선거에는 자그마치 35개의 정당이 이름을 올려 역대 선거 중 가장 긴 투표용지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정당 혹은 정당 소속 후보자의 득표율에 비례해 당선자의 수를 결정하는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라고 부른다. 과연 비례대표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춘 것일까?

비례성의 원칙과 사표 방지


18세기 말 프랑스 시민혁명과 미국 독립혁명이 일어나 의회의 주권이 강해졌다. 의회를 구성하는 방법인 선거제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당시 학자들은 ‘비례성의원칙’에 주목했다. 이는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분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예를 들어 국회 의석수가 100석인 나라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고 가정할 때, A당의 득표율이30%, B당의 득표율이 40%, C당의 득표율이 30%일 경우 A당이 30석, B당이 40석, C당이 30석을 가져가야 한다. 이렇게 득표한 수에 비례해 의석이 돌아갈 때, 공정한 선거라고 말할 수 있다.
18세기의 주류 투표방식이었던 다수대표제는 비례성의 원칙을 제대로 보장하지 못했다. 다수대표제는 최다득표자가 당선되는 방식이다. 모든 선거구에서 A당이 3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고 가정하면, 나머지 당들이 모두 합쳐 70%의 득표율을 가지고 있음에도 의석을 하나도 얻지 못한다. 반영되지 못한 표는 사표, 즉 죽은 표가 된다.
사표를 줄이기 위해 절대다수제를 택하는 경우도 있었다. 절대다수제는 먼저 1차 투표를 통해 1위와 2위 후보를 정하는 방식이다.
1위 후보가 과반수를 득표했을 경우에는 그대로 당선자가 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결선 투표를 실시해 당선자를 뽑는다. 단판승부를 보는 것보다 사표를 줄일 수 있지만1·2위 후보를 배출할 수 없는 군소정당의 득표는 반영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프랑스의 니콜라 드 콩코르세 후작이 사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인당 2명의 후보를 투표하는 제한투표제를 제시하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안성호(충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다수대표제의 경우 사표의 증가로 1인 1표라는 표의 등가성을 왜곡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례성의 원칙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자, 비례대표제가 새로운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1821년 영국의 토마스 힐이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를, 1842년 프랑스의 콩시테랑이 스위스에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제안한 것이다.

사표를 방지하는 ‘단기이양식’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는 토마스 힐의 제안 이후, 그의 셋째 아들 롤랜드 힐이 채택되도록 해 1839년 당시 영국령이었던 호주 애들레이드시 평의회 선거에서 처음으로 실시됐다.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는 말 그대로 다른 후보자에게 표가 이양되는 방식이다. 먼저 투표자는 후보의 선호도를 표기하는 방식으로 표를 행사한다. 예를 들어 A, B, C 세명의 후보가 출마했다면, 투표자는 자신이가장 원하는 후보를 1순위, 그 다음으로 원하는 후보를 2순위, 가장 선호도가 떨어지는 후보를 3순위로 적어서 표를 행사한다.
개표에 들어가면 당선이 결정되는 기준인 ‘쿼터(Quota)'가 등장한다. 쿼터는 당선하는 데 필요한 득표수다. 쿼터가 100표를 득표하는 것이라면 한 후보가 100표를 득표함과 동시에 바로 당선이 된다. 당선자가 정해지면 모든 표에서 당선자의 이름이 지워진다. 만약 1순위였던 A후보가 당선이 됐고 ,B후보를 2순위로 정해뒀다면, 이제 그 표는B후보에게 돌아간다. 이런 방식으로 당선자의 이름을 계속 지워나가며 개표가 진행된다.
동시에 당선이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후보, 즉 최하위 후보의 이름도 지워나간다. 의석수만큼 당선자가 나오면 개표는 종료된다.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를 적용하면 사표를 최소화할 수 있다. 선호도를 통해 표를행사해 1순위로 찍은 후보에게 표가 가지 않아도, 2·3순위 후보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는 널리 퍼지지 못했다. 현재까지 호주나 아일랜드 몇몇 나라에만 적용돼 있다. 차재권(부경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기이양식은 자신의 표를 다른 후보에게 이양하는 방식으로 민의가 왜곡될 우려가 크다”고 한계를 설명했다. 또 안 명예교수는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는 군소정당이 원내에 들어갈가능성이 크다. 단기이양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거대정당 중심의 대의제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비례성의 원칙을 지키는 ‘정당명부식’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스위스에서 다수제 선거결과로 소요사태가 발생하면서 등장했다. 콩시테랑은 두 번의 선거를 제안했다. 첫 번째는 전국을 하나의 선거구로 묶어서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하는 선거다. 선거가 끝나면 각 정당의 득표수에 비례해 의석이 배분된다. 두 번째 선거에서는 한 유권자에게 원내 정당의 투표용지가 들어오고,이 투표를 통해 각 당의 당선자가 결정된다.
콩시테랑이 제안한 방식처럼 유권자가 정당에 투표해서 원내정당이나 당선자를 정하는 것이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의 핵심이다. 정당에 투표하기 때문에, 각 정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율이 그대로 선거에 반영된다. 안 명예교수는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국민의 지지율과 정당의 득표율, 의회 의석율이 가장 정확하게 일치하는 선거제도”라고 평가했다.
콩시테랑의 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는 곧 전 유럽에 퍼지게 됐다. 1899년 벨기에에서 세계 최초로 전국 단위의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선거가 진행됐고, 1920년대까지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우리나라 역시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국구 비례대표제’라는 이름으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했다.
비례대표제는 사표를 방지하고, 비례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한 선거제도로써 지금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처음 등장한 18세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300년이라는시간 동안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한 비례대표제. 더욱 정확하게 민의를 반영하기 위해 비례대표제의 변신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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