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라떼는 말이야 (한성대신문, 557호)

    • 입력 2020-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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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0-06-15 16:18

당신은 어떤 라떼를 좋아하는가? 혹자는 부드러운 우유와 에스프레소 샷이 들어간 카페라떼를, 또 다른 누군가는 씁쓸한 녹차가 들어간 녹차라떼를 말할 것이다. 우리의 라떼는 조금 특별하다. 우유 대신, 그 시절 그 감성이 담겨있는 ‘라떼는 말이야’다.

조금은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컴퓨터를 켜면 제일 먼저 ‘zi존킹카☞’가 남긴 일촌명을 확인했고, TV를 틀면 자연스럽게 38번부터 눌렀다. 집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딱지와 힐리스는 그 시절 뽀대나는 아이템이었다. 당신도 기억하는가? 그 시절 그 감성이 담긴, 우리의 ‘라떼’.



듀얼! 그때 그 시절. 추억의 놀이

▲또래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놀이는 '유희왕' 카드게임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동네 놀이터로 삼삼오오 모인다. 놀이터는 모니터 속 세상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정자 위에서는 고무로 된 딱지를 서로 뽐내며 딱지치기를 하는가 하면, ‘블레이징 틴스’라는 애니메이션이 불러온 요요 열풍으로 인해 화려한 요요 기술을 뽐내는 친구도 있다.

인기가 가장 많은 것은 단연 ‘유희왕’ 카드게임이다. 놀이터 내 벤치는 듀얼 배틀장이 되곤 한다. “융합! 나와라, 사이버 오파 유의, 사이버 엔드 드래곤!” 원작 애니 속 주인공의 대사를 읊으며 게임을 하는 친구들로 놀이터는 항상 시끌벅적하다.

종종 카드 효과를 가지고 논쟁을 하거나, 구하기 힘든 카드를 도둑맞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부모님께 야단맞은 후 눈물을 머금고 딱지나 카드를 버렸던 것은 아직도 웃지 못할 기억이다. 딱지를 치는 것보다 키보드를 치는 것이 더 익숙한 지금, 친구와 얼굴을 맞대고 했던 그 시절 우리의 놀이는 짙은 향수로 남아있다.

김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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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켜줘, 한성대 명예 추억팔이”

▲‘꽃보다 남자’ 포스터. 구준표의 소라빵 머리가 눈에 띈다. (사진 출처 : 그룹에이트)



“시켜줘, 금잔디 명예 소방관” 지후 선배의 주옥같은 대사가 나온다. “대사 미쳤다”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흥분으로 떨리는 주먹을 소파에 내리치느라 바쁘다.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학원에서 집까지 얼마나 달렸던가. 한 장면이라도 놓치면 다음 날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 없을 것이다.

점 하나 찍었을 뿐인데 새로운 사람이 된 민소희의 복수극부터, 소라빵 머리에 화려한 왕자 의상을 입은 구준표가 보여주는 로맨스까지…. 폭포처럼 쏟아지는 드라마들 중 무엇을 본방사수 해야 할까.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고난이다.

드라마가 끝나면 은밀한 독서 생활이 시작된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을 쪼갠다. 어둠 속에 유유히 빛나는 PMP에는 텍스트 파일이 가득 차있다.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온갖 향신료와 매운 맛이 가미된 인터넷 소설 파일이다.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의 절절한 짝사랑, 전 세계 서열 1위와 평범한 학생이 보여주는 달달한 로맨스…. 인터넷 소설은 빠져나올 수 없는 ‘늪’과 같다.

지금 보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대사와 내용이었지만, 우리는 그 감성에 미쳐있었다. 남몰래 그 시절 드라마와 인터넷 소설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오늘밤 다시 정주행 해보는 것은 어떨까.

박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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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셔니스타 90년대 생의 '워너비' 아이템

▲양쪽 발뒤꿈치에 바퀴가 달린 것이 특징인 '힐리스' (사진 제공 : @jinsil_truth)



토요일 오후 4시. TV를 틀자 신인가수 세븐이 ‘와줘’를 부르며 춤을 춘다. 미끄러지듯 빠르게 무대 위를 이동한다. 그가 신은 신발은 바퀴 달린 신발, ‘힐리스’다. 몇 날 며칠 부모님에게 졸라 얻어낸 힐리스는 나의 워너비 아이템에서 ‘보물 1호’가 됐다. 새로 산 힐리스를 자랑하기 위해 등굣길마다 신고 다닌다. 마치 내가 세븐이 된 것 같다.

하굣길엔 힐리스를 신은 채 친구와 함께 문방구로 달려간다. 친구 하나, 나 하나. 똑같은 모양의 반지를 사 손가락에 끼운다. 우리가 산 반지의 이름은 ‘진실반지’. ‘매직반지’라고도 불리는 이 반지는 감정에 따라 형형색색의 자태를 뽐낸다. 보라색은 행복함, 연두색은 평온함, 초록색은 만족감…. 오늘이 용돈 받는 날인 걸 알았는지 내 손가락에 끼워 진 반지는 행복함을 나타낸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 ‘붐’을 일으킨 최고의 아이템, 힐리스와 진실반지. 이제는 우리에게 추억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안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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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해, 한 그릇 더 만들어 달라해

▲플래시게임 ‘띵호와 주방장 1’의 플레이 화면이다.



돼지고기, 두부, 양파, 양배추, 참기름, 마늘, 대파, 물, 밀가루 순으로 넣는다. 반달모양 만두는 굽고, 또아리모양 만두는 찌고, 쭈그리모양 만두는 삶는다. 이것만 기억하면 기가 막힌 만두를 만들 수 있다. 중국음식도 식은 죽 먹기다. 음식의 재료를 알맞은 순서로 넣고, 타이밍에 맞춰 꺼낸다. 먹음직스런 짜장, 잠뽕, 탕수육에 주방장은 ‘따봉’을 날린다. VJ특공대 맛집 뺨 칠 정도로 완벽한 음식이 완성됐다.

고향만두와 중국음식을 정복했지만 끝판왕은 아직 남았다. ‘슈의 라면가게’를 정복해야만 진정한 장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쉬운 음식의 대명사 라면이지만 플래시게임에선 얕잡아 볼 수 없는 상대다. 훅훅 줄어드는 시간. 정신을 놓으면 냄비가 타버린다. 설거지 엔딩을 보지 않으려면 나의 집중력을 최대로 끌어올려야 한다. 그렇게 수익금 만 원을 모으면 라면이 나고, 내가 라면인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화려한 나의 요리 실력은 이제 보여줄 수 없다. 추억 속 그곳들이 이젠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남은 모습이지만 그때를 추억하면 왠지 미소가 지어진다.

최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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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만화. 추억 그 자체죠

▲‘이누야샤’ OST 앨범 커버 사진이다.  (사진 출처 : 에이벡스 트랙스)

하교와 동시에 새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집으로 달려가 가방은 아무렇게나 던져두고 TV를 켠다. 내 종이 남자친구, 천재 명탐정 코난이 등장해 살인사건을 추리해 나간다. 코난의 추리 이야기가 끝나면 체리가 등장해 주문과 함께 요술봉을 돌려 변신한다. “TV 그만 보고 숙제해!” 엄마의 잔소리가 귓속을 파고든다. 해가 지도록 TV에 빠져들어 엄마에게 등짝을 맞는 건 당연한 일상이다.

교실에서는 이누야샤의 팬덤과 셋쇼마루의 팬덤이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외모, 성격 전부 정반대인 둘 중 과연 누가 진정한 주인공인지, 누가 더 잘생겼는지를 두고 다투는 거다. 저게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그 시절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만화는 지금도 따뜻했던 그때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그때의 만화들이 아직까지 우리에게 회자되고 있는 이유다.

주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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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퍼가요~♡

▲미니홈피의 ‘미니룸’을 꾸민 모습. (사진 출처 : 싸이월드)



모두가 잠든 새벽, 모니터를 켜고 ‘싸이월드’에 접속한다. 미니홈피를 열자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온다. 프리스타일의 Y. 오늘따라 음악이 우울한 마음을 대변한다. ‘ㄴr는 ㄱr끔 눈물을 흘린ㄷr….’ 새벽 감수성에 젖어 글을 작성한다. 이 순간만큼은 여느 시인 부럽지 않다. 친구에게 일촌 맺기를 보낸다. 일촌명은 ‘♣소울ㅁh히뚜♣’. 파도타기로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일촌평을 남긴다. ‘내 소울메이트 찜꽁!’ 나의 소울메이트 목록에 한 명이 더 추가됐다.

미니홈피의 꽃은 단연 ‘미니룸’이다. 거기에 도토리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돈을 도토리로 바꿔 나만의 세상을 꾸며간다. 스킨과 인테리어 용품을 사서 미니룸을 꾸미고, 기분에 따라 나의 아바타인 ‘미니미’의 표정과 행동을 바꾼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본뜬 미니미를 사서 무대처럼 꾸미기도 한다. 화면 속 작은 세계는 나의 취향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 세계는 나만의 세상이었고, 누구에게도 없는 특별한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싸이월드는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도토리를 사느라 부모님께 야단맞던 것도 가물가물하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지금의 SNS와는 다른, 싸이월드 특유의 여유와 소소함이 그리워진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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