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의식주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이다. 이 중 ‘식(食)’ 에 해당하는 먹거리는 삶을 영위하는 데 있어 결코 빠질 수 없는 요소로,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유지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오르는 물가와 1인 가구가 안정적 으로 식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청년들은 ‘밥’을 삶의 우선순위에서 점차 뒤로 미루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정부도 이를 인식한 듯 관련 정책을 확대하고 있지만, 체감 가능한 변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청년들은 어쩌다 제대로 된 한 끼조차 고민해야 하는 현실로 내몰리게 됐을까. 이에 본지는 청년 식생활의 현실을 짚어보고, 이를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공적 과제로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살펴보고자 한다.
김혜윤 기자
송사무엘 기자

‘런치플레이션(Lunchflation)’은 점심을 뜻하는 런치(Lunch)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지속적인 물가 상승으로 인해 등장한 용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먹거리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외식 소비자물가지수는 2020년 100에서 2025년 124.56으로 24.5% 상승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16.4%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청년층은 고물가와 불안정한 소득 구조 속 식비를 가장 먼저 줄일 수밖에 없다. 자취방이나 고시원 등 조리 환경이 열악한 주거 형태는 문제를 더욱 심화시킨다. 조리가 어려운 환경은 즉석식품이나 저렴한 배달 음식 소비로 이어지고, 이는 영양 불균형과 건강 문제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낳는다. 질병관리청이 발간한 「2025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만성질환은 2024년도에 전체 사망의 78.8%를 차지했으며, 영양 불균형 등의 건강 위험 요인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이보희(희망 먹거리 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청년층의 만성질환 발병률이 높아지고 있다”며 “만성 질환은 식성, 식습관에 따라 발병하는 질환으로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되기에 젊은 세대일수록 주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런 식생활 위기는 ‘먹거리권(Right to Food)’에 대한 논의로 확산되고 있다. 먹거리권이란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공급받아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국제인권규범에서는 먹거리권을 정부가 보장해야 할 기본 권리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식생활교육지원법』으로 정부가 국민이 건강하고 올바른 식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관련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먹거리권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현행 먹거리 관련 정책이 지역·대학별로 상이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보편적 권리 보장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천원의 아침밥 참여 대학은 수도권 76개교에 비해 강원권 12개교, 충청권 34개교 등 지역별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박소현(한살림연합식생활센터) 센터장은 “현재 정부의 파편화된 지원은 보편적 먹거리 안전망으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의 생활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 설계로 인해 실효성이 낮다는 점도 문제다. 좁은 원룸이나 공유 주택에 거주하며 조리 시설과 여건이 열악한 청년들에게는 기존의 조리 중심 지원책이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중앙대학교 광고홍보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인 이지수 학생은 “기숙사에 취사실과 같은 요리 장소가 없어 배달음식 위주로 먹게 된다”며 “요리를 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간이 없다”고 토로했다.
정책이 단순 금전 지원에만 머물러 있어 청년들의 식생활이 편의점이나 가공식품 소비로 치중되는 현상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제시된다. 농식품 바우처 플랫폼에 따르면 인천 10개 군·구의 사용처는 편의점이 약 77%를 차지한다. 이로 인해 식비 지원을 받아도 접근성이 좋은 편의점에서 가공식품을 선택하게 돼 부실한 끼니가 지속되는 실정이다. 이보희 상임대표는 “식비 지원이 이뤄져도 청년들이 건강한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실한 식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먹거리 관련 법령의 분산으로 인한 통합적 대응 한계도 심각하다. 현재 51개로 분산돼 있어 국가의 책임과 정책적 방향성이 명확하게 규정되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먹거리 관련 법령으로 『식생활교육지원법』,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 『국민영양관리법』 등 개별 법령으로 운영 중이다. 이로 인해 식생활 위기에 대응할 통합적인 법적 근거가 미비한 상황이다. 이원택(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현행 법령들은 생산과 산업의 논리에 치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법률에 대한 논의도 지지부진하다. 일명 『먹거리기본법』은 지난 2020년도부터 발의와 논의가 반복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인 제도화와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어, 청년들의 먹거리 권리는 법적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보희 상임대표는 “『먹거리기본법』은 지속 발의돼 왔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정책의 대상이 한정적인 원인은 청년 식생활 관련 정책이 정부 부처별로 분산된 채 운영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시된다. 현재 먹거리 정책은 학생은 교육부, 취약계층은 보건복지부, 식생활 교육은 농림축산식품부로 분산돼 각 부처에 맞는 특정 대상군으로만 정책을 시행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층은 제도적 지원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되는 구조적 공백이 발생한다는 의견이다. 김상기(한국친환경농업협회) 회장은 “정책이 대상별로 분리돼 운영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는 지원 체계가 복잡해지고 사각지대도 발생한다”며 “특히 청년층의 경우 젊다는 이유로 제도적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이 과정에서 소외된다”고 말했다.
기존 먹거리 정책이 1인 가구가 급증한 청년 세대보다는 가족 단위 가구나 조리가 가능한 환경만을 전제로 설계된 점도 주요한 원인으로 꼽힌다. 1인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은 먹거리 부분을 다루지 않는 등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박 센터장은 “먹거리 돌봄이 주로 가정 내에서 이뤄진다고 보았던 보편적인 가구 모델과 그에 따른 행정적 편의성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지원 사업이 건강한 공급망보다 가맹점 및 유통 구조 중심의 소비 체계로 운영된다는 점도 악순환을 부추긴다.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 마트의 경우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지만 중소 마트는 국산, 수입산을 바코드 단위로 관리해야 해 부담이 크다는 주장이다. 김 회장은 “먹거리는 생산과 소비가 순환 구조로 연결돼 있음에도 현재 정책은 단순 소비 지원에 치우쳐 있다”고 말했다.
먹거리 관련 법령의 분산은 생산부터 소비까지의 과정 단계가 서로 다른 부처의 업무 범위에 속한 점에서 기인한다. 먹거리의 경우 유통과 가공, 소비 과정에서 여러 부처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정책이 시행됨에 있어 부처 간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보희 상임대표는 “보건복지부는 영양 기준 중심으로, 농식품부는 농산물 생산·유통 중심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협업 체계가 없으면 정책이 각각 따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먹거리 문제를 여전히 개인의 관리 책임이나 단기적인 복지 이슈로만 치부하는 인식의 한계가 제도화를 가로막고 있다. 먹거리 정책이 단순히 한 끼를 때우는 수준에 머물고, 먹거리를 복지 비용 정도로만 인식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센터장은 “먹거리 권리를 시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으로 보지 않는 정책 기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범부처 차원의 통합적 식생활 지원 체계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다. 현재 분산돼 있는 청년 식생활 관련 정책을 통합하는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부처 간 예산과 사업을 총괄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상설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된다. 이원택 의원은 “국가먹거리위원회를 설치해 부처 간 정책을 조율하고 청년 식생활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전했다.
청년의 거주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인프라 확충도 시급하다. 공유주방 설치 등 1인 가구 청년들이 직접 건강한 음식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보희 상임대표는 “주거 환경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공공 먹거리 인프라가 청년 주거지 인근에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단순한 금전 지원을 넘어 공급 체계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공공 급식이나 직거래 중심의 공급망을 확보해 신선한 식재료가 전달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방안이다. 이보희 상임대표는 “단순 지원을 넘어 대안적인 먹거리 공급 체계를 구축해 청년들이 건강한 식품을 선택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구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선 『먹거리기본법』 제정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한다. 분산된 법령을 하나로 묶고 국가의 공공성을 명시해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 센터장은 “먹거리는 인간이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보장받아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권리”라며 “국가가 이를 보호하는 것은 시혜적 복지를 넘어선 당연한 책무”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먹거리를 단순한 소비재나 복지 대상이 아닌 사회권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먹거리는 개인의 선택을 넘어 생존과 건강, 노동 능력 유지와 직결되는 기본 조건인 만큼 공동체가 해결해 가야 할 문제라는 제언이다. 김 회장은 “먹거리는 단순히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 아닌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문제”라며 “먹거리가 생산–소비–환경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중심에 있는 만큼 정부가 나서서 보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