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이야기이다. 골목에서 차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친구와 어떤 여자가 동시에 치였다고 한다. 여자는 심하게 다쳤고 친구는 얼결에 넘어지긴 했지만 바로 일어설 정도였다. 운전자와 주변 사람들 모두 피까지 흘리며 넘어진 여자에게 관심이 쏠렸다. 골반 쪽이 얼얼하긴 했지만 여자를 보니 괜히 엄살부리는 것 같아 병원은 사양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일주일간을 허리와 골반의 통증 덕에 침대에서 꼼짝도 못하고 지냈다고 한다. 어중간하게 다친 걸 탓해야 할는지 모르겠다.
어중간한 탓에 억울한 이들은 더 있다. 최근 고려대학교가 성적장학금을 폐지했다. 실컷 싸움을 부추기고 이긴 쌈닭에게만 상금을 주는 식의 제도를 없애자는 취지였다. 대신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기로 했다. 훌륭한 취지이니만큼 학생들과는 일말의 협의도 없이 공지만 불쑥 올렸던 모양이다. 학생들의 반발은 적지 않았다. 장학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이 성적으로나마 장학금을 타낼 기회마저 박탈한 셈이기 때문이다. 사각지대에 있는 학생들이란, 소득분위로 산정하는 국가장학금 자격요건에 아슬아슬하게 탈락해오던 이들이다. 즉 ‘어중간한’ 소득분위에 있는 학생들이다.
이런 어중간한 학생들은 어느 학교에서나 호사는 못 누린다. 우리 학교도 다르지 않다. 국가장학금을 못 받게 되면 학기 중이든 방학이든 아르바이트를 뛰어야 한다. 한성복지장학금은 국가장학금 신청서 없이는 지원자격이 안되기 때문에 진즉에 희망고문이다. 바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성적장학금을 바라기란 퍽 사치스런 일이다. 게다가 고학년일수록 경쟁이 심해져 4.3학점으로는 택도 없다. 이러니 돈도 벌면서, 공부할 시간도 있는 학교 근로가 경쟁이 치열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단, 경쟁이 치열한만큼 근로가 자주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근로 학생들은 거의 교직원들과 안면이 있는 학생들이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계속 뽑으니 말이다.
이번 사건은 ‘어중간한 것을 탓하게 놔둔’ 오랜 업보이다. 고려대학교가 진정 ‘정의’ 장학제도를 만들고 싶었다면, 사각지대로 몰린 학생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살폈어야 했다. 우리 학교도 강 건너 불 구경할 일이 아니다. 성적, 복지, 근로장학 등 적지 않은 장학제도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사각지대들이 방치되어 있었는지 알아야한다. 집 있고 차 있다고 해서 등록금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소득분위 산정 기준이 한강 자이와 반지하를 구분해줄 만큼의 현실성은 없기 때문이다. 어중간해도 결국 아픈 건 마찬가지다.
이지원
국문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