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수님, 제가 왜 B인가요?” (한성대신문, 571호)

    • 입력 2021-10-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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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1-10-24 01:32

항목별 세부 성적 공개는 학생 권리

성적 이의신청 답변 받을 수 있어야

상호 피드백 통한 성적 고지 필요해

‘대학은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국가와 인류사회의 발전에 필요한 심오한 학술이론과 그 응용방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국가와 인류사회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고등교육법』 제28조에서 대학의 목적을 정의하고 있는 구절이다. 대학은 학생이 인격과 학술 측면에서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사회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학생의 발전은 교수자와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에서 탄생하며, 원활한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학생의 과제, 시험 등에 대한 교수자의 피드백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간 학생들은 꾸준히 ‘세부 성적 공개’에 대한 목소리를 냈으나 충분한 피드백이 이뤄지지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한 논의는 어디까지 왔을까?

본지는 성적 공개와 관련한 대학사회의 현 위치를 파악하고자 수도권 4년제 대학교 70개*의 ‘항목별 세부 점수 공개 현황’과 ‘성적 이의신청 방식’에 대한 전수조사(이하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현재 수도권 4년제 대학교 70개 중 20개가 출석, 과제, 시험 등의 세부 점수를 의무적으로 공개하고 있다. 경기도 소재의 모 대학교 학사팀 관계자는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학생의 학습권과 학부모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세부 성적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한편, 세부 성적을 일괄 비공개 처리하는 학교는 39개, 교수자 재량으로 공개하는 학교는 11개로 확인됐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본지는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 등을 대상으로 ‘성적 세부 공개 및 성적 이의신청 설문조사’(이하 설문조사)도 진행했다. 본 설문조사는 10월 11일부터 19일까지 온라인 구글폼으로 진행됐다. ‘학교 시스템상에서 의무적으로 출결, 과제, 시험 등의 세부 성적을 공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305명 중 298명(97.7%)이 ‘예’라고 답했다. 세부 성적 공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학생의 학습권 및 알권리 보장’이 가장 많았다.

일부 교수들 역시 항목별 세부 점수 공개를 통해 학생의 권리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학생이 어떤 근거로 최종 성적을 받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조성택(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세부 점수 공개는 학생의 학습권과 알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은 자신이 해당 성적을 받은 이유와 소속된 분반에서의 위치 등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부 성적 공개를 찬성하는 교수들은 무엇보다도 교육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교수자와 학생 간 상호 피드백은 학생의 학습 실력이 발전되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이현우(상명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는 “피드백이 대학 교육에서 학생들이 가장 불만을 가지는 부분인 만큼 학생에게 교수자의 설명이 주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교수자와 학생 간의 피드백 과정은 학생의 자기조절 학습능력에 큰 도움을 주고 개선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의신청을 줄여주기 때문에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지영(한성대학교 상상력교양대학 소양핵심교양학부) 교수는 “세부 점수를 모두 공개하면 그에 대해 이의신청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히려 모든 점수를 명확하게 제시하면 학생들이 대부분 성적에 납득해 이의신청이 거의 없다”며 자신의 경험을 밝혔다.

반면, 세부 성적 공개를 반대하는 이들은 일괄적인 공개가 아니더라도 학생의 권리는 보장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이의신청을 통해 학생이 자신의 성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이지영 교수는 “자신의 점수만을 아는 정도로는 정보가 빈약하다. 학생에게 수업 전반의 평균 점수와 표준편차 등이 공지돼야 한다”고 전했다.

또, 실습이 주를 이루거나 서술형 시험으로 평가를 내리는 수업은 정성적인 평가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해당 수업들은 학생이 교수자의 평가 기준을 명확하게 납득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결국, 세부 성적 공개는 필요하지만 과목의 특성을 고려해 다각도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교수들의 전언이다. 임현열(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명시적인 언어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전문가가 내리는 직관적인 평가가 의미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며 “세부 성적 공개를 무조건적으로 해야 한다면 ‘공정한 평가’의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겠지만 ‘타당한 평가’인가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최종 성적이 확정되기 전, 담당 교수자에게 성적에 대한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세부 성적을 고지받지 못한 학생들에게 이의신청은 교수자에게 성적 관련 사항을 문의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학생의 이의신청에 대해 교수자가 답변하지 않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했다. 설문조사 결과, 교수자에게 이의신청 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을 받지 못해 결국 성적 정정을 포기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성적 이의신청에 대한 교수자의 답변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305명 중 288명(94.4%)이 ‘예’라고 답했다. 이유를 묻자 ‘성적 정정 결과와는 관계없이 자신의 감점 요인을 분석해 추후 보완을 위한 피드백을 받고 싶다’는 의견과 ‘성적 오류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한 정당한 이의신청이라면 당연히 답변이 필요하다’, ‘학생의 이의신청이 터무니없더라도 한 번 정도는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는 것까지가 교수자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교수자의 답변율을 높이기 위해 이의신청과 관련된 전산 시스템을 마련한 학교들도 있었다. 본지가 실시한 전수조사에 따르면, 28개의 대학에서 학교 시스템으로 교수자와 학생이 이의신청을 주고받을 수 있다. 전산 시스템을 통한 이의신청은 효율성 측면에서 선호된다. 임 교수는 “학교 이의신청 시스템을 이용하면 사사로운 내용이 개입될 여지가 확연히 줄며,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교신은 시스템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성대학교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에 재학 중인 이지원 학생은 “시스템으로 이의신청을 하는 방식은 교수님마다 개인 연락망을 확인해 메일, 문자 등의 수단으로 일일이 연락하는 방식보다 접근성과 시간적인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라며 “실제로 본교의 시스템을 이용하면서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을 받지 못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의신청 관련 전산 시스템이 없더라도 학생이 이의신청에 대한 답변을 받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 교수는 “성적에 대한 의문 제기는 학생의 권리이므로 재검토 요청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교수자는 학생에게 성적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설명해줄 의무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교수들과의 심층적인 논의를 거쳐 최선의 세부 성적 공개 방안과 이의신청 방식을 마련해야 함을 강조했다. 실제로 세부 성적 공개와 이의신청 전산 시스템 마련에 대해 논의 중인 학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소재 모 대학교 학사팀 관계자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내부적으로 세부 성적 공개 여부에 대해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서울 소재 대학교 학사팀 관계자는 “전산 시스템만으로도 편리하게 이의신청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개발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4년제 대학교 70개 : 『고등교육법』 제 2조에서 규정하는 ‘대학’, 산업·교육·전문·원격·기술대학과 각종학교를 제외한 범주이며, 이원화 캠퍼스는 본교와 동일한 대학으로 간주하고 분교는 본교와 상이한 대학으로 처리했다.

한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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