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송> ‘직업적 양심’은 어디에 (한성대신문, 517호)

    • 입력 2016-10-10 15:57

지난 930일 서울대병원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학생들이 쓴 대자보가 붙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 조작 의혹에 대한 해명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고 백남기씨는 작년 11월에 있었던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다가 사망한 것이다. 서울대병원은 사망진단서에서 직접사인을 심폐정지’, 사망 종류를 병사로 규정했다.
의대생들은 대자보에서 이 두 가지 규정을 문제 삼았다. 먼저 심폐정지에 대해서는 그 자체가 직접사인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확실히 심장과 폐가 멈추는 것은 사람이 죽었음을 알리는 신호이지, 그 자체가 사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 사망진단서에 적힌 다른 사인들과 함께 읽으면 해석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사인으로 적은 것은 분명한 실수다.
또한 병사판정에 대해서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질병이 발생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외인사로 구분하는 것이 옳다고 명시했다. 특히 고 백남기씨의 경우 경찰의 물대포를 머리에 직격으로 맞고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사망진단서에서도 급성경막하출혈을 사인에 명시했는데, 이것만으로도 외인사로 볼만한 정황은 충분하다.
의대생들이 대자보를 통해 보내는 메시지는 아주 명료하다. ‘이 상황이 상식에 어긋나니, 관련자들은 빨리 해명을 하고, 유족들을 편안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해명해달라는 요점도 쉽고 간단하다. 하지만, 서울대병원과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아주 애매한 답을 내놓았다.
먼저 서창석 서울대병원 원장은 모든 사망진단서는 객관적인 주치의 판단 아래 작성되는 것이 원칙이며, 이번 백 씨 사망진단서 역시 담당 주치의의 철학이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지금 나온 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물었는데, ‘주치의의 철학을 존중한다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의협에서는 아예 병사에 관한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심폐정지를 직접사인으로 쓴 것은 의협 사망진단서 내부 지침에 어긋남이 없다고 밝혔을 뿐이다. 하지만 의협에서 발간한 <진단서 등 작성·교부 지침>을 살펴보면, ‘심폐정지를 사인으로 쓰지 말라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에 점입가경으로 경찰은 이런 의혹들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부검을 꼭 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유족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가해자일지도 모르는 주체가 부검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부검을 하는 것과 사망진단서가 조작되었는가를 밝히는 것은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오히려 경찰의 떼쓰기에 시민들의 혼란과,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슬픔만 더 커지고 있다.
의대생들은 선배 의사들에게 소명으로 삼고자 하는 직업적 양심이 침해받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자신들이 앞으로 짊어질 직업적 양심까지도 챙기려는 학생들 앞에서, 지금 맡은 직업적 양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다.

박종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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