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이나 인사동 같은 번화가를 걷다보면, 많은 외국인들을 볼 수 있다. 가깝게는 학교에서 외국인 유학생들과 수업을 같이 듣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외국인들이 관광·유학·취업 등 다양한 목적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법무부에 따르면, 작년 한해 우리나라로 입국한 외국인은 약 1천3백만 명이다. 대부분은 비자가 끝나기 전에 본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원하지 않게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바로 5,711명(지난해 기준)의 난민신청자들이다.
우리는 보통 난민을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곤경에 빠진 이재민이나 피난민쯤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법률상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다음과 같은 법률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먼저 난민은 ▲인종, ▲종교, ▲국적,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정치적 견해라는 5가지 원인 중 하나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경제적 빈곤이나 내전·재해 등에 의한 피난민은 위의 5가지 원인에 해당하지 않아 법률상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박해받을 우려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또한 본국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어야 한다. 다만, 법률상 난민에 해당하지 않는 사실상의 난민을 위해, 「난민법」에는 별도로 ‘인도적 체류 허가’ 제도를 두고 있다.
「난민법」에는 법률적 요건에 부합하는지 심사하기 위한 절차와 기간 역시 규정하고 있다. 난민 심사는 신청서 접수일로부터 6개월 안에 이뤄져야 하며, 예외적으로 6개월 범위 내에서 연장될 수 있다. 그러나 불인정 결정을 받은 경우에도 재신청이 가능하다. 또한 이의신청·행정심판·행정소송 제기로 심사기간이 길어진다. 콩고 출신 난민인 욤비 토나 (광주대학교 자율융복합전공)교수는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6년이 걸렸다. 그가 겪은 고난과 역경은 그의 저서 『내 이름은 욤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그가 겪은 일들은 그에게만 일어난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평균 20개월이 걸리며, 수년째 장기화되는 경우도 많다.
한국의 난민인정률 왜 3.42%인가?
우리나라가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부터 2016년 7월까지 난민신청자는 17,640명이나, 불과 3.42%인 604명만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인도적체류자를 포함할 경우에도 인정률은 8.96%에 그친다. 이는 지난해 UN난민기구가 밝힌 전세계 난민인정률 37%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수치다. 시민단체들은 국제 평균에 못미치는 난민인정률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다. 그리고 난민인정률이 낮은 원인 중 하나로 엄격한 심사기준을 꼽았다. 그러나 정부가 난민심사에서 소극적 태도를 유지하는 데에도 나름의 이유가 존재한다.
정부는 난민 문제에 지나치게 도덕적으로 접근할 경우, 국가 안보가 위협받고 이민통제의 문제점이 야기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그래서 담당심사관은 명확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 일단 불인정처분을 내린다. 난민신청자는 대부분 본국을 긴급하게 떠나왔기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를 제출하는 것이 어렵다. 결국 신청자가 주장한 내용의 모순이 없고 신빙성이 있는 경우에 난민 지위를 인정하게 되는 현행 심사제도 하에서, 심사관의 부정적 시각과 엄격한 잣대는 낮은 인정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이의신청 등 사후적 구제수단이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심사관들이 비교적 쉽게 불인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이유가 된다.
또 다른 이유는 난민으로 인정된 이후에 국외추방이 힘들어진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난민법에는 예외적으로 강제송환이 가능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강제송환 시 국내외적으로 도덕적 비난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강제송환은 불가능하다. 이 점 역시 심사당국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난민신청제도를 국내체류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사실도 정부의 소극적 태도를 부추긴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4개원 동안 제도의 허점을 노린 난민신청 알선 브로커 등 171명이 검거되었다. 이들은 난민신청 시 심사기간 동안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여 불법체류자들이 난민신청을 하는데 필요한 서류를 위조했다.
법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보편적 인권’
난민을 통제 대상으로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을 비판하는 견해도 많다. 시민단체들은 난민협약의 목적과 취지가 세계인권선언문 제14조에 명시된 ‘보편적인 인권’이라는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법리적인 판단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재)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제도 도입 초부터 지금까지 정부는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떠한 신청·허가 제도도 악용이나 남용의 소지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국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하면, 난민이 보호받지 못하고 송환될 수 있다. 그는 난민의 송환은 그들의 생사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UN난민기구에서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UN난민기구 편람에는 ‘심사관은 신청인에게 유리한 추정을 해야 한다’는 원칙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UN난민기구의 편람은 권고사항에 그칠 뿐이며, 난민심사여부와 방법은 체약국 개별의사에 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쟁점들로 인해 정부와 시민단체 모두 현행 난민법 개정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개선 방향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난민법 개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총 9회 발의되었으나 의결되지 못하고 모두 폐기되었다. 20대 국회에서도 총 4회의 난민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 법무부 역시 지난 9월에 난민법 개정 방안을 연구할 용역을 발주했다. 연구를 바탕으로 내년까지 개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경관리와 인권 보호라는 두 가지 목적을 균형있게 달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난민법 개정 논의가 필요가 시점이다.
난민 인정 이후, 그들의 삶
난민 문제가 심사기준과 절차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난민 인정’이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았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독재정권이나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낯선 땅에서의 편견과 생활고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난민의 현실은 만만치 않다.
난민을 채용하는 곳은 대부분 공장 생산직이나 공사현장이며, 직장보험 가입을 해주지 않는 업체도 존재한다. ‘(사)피난처’의 실태조사(조사기간 : 2015년 4월 ~ 10월)에 따르면 전체 조사 대상 147명의 인도적체류자 중 24명만이 근로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중 12명만이 4대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월 110~150만 원의 수입에서 50만 원 가량의 월세와 공과금·교통비를 제외하면, 난민들이 쓸 수 있는 생활비는 거의 없다. 국민기초생활 보장법 상의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2016년 기준 1,624,831원)과 비교해보면, 많은 난민들이 빈곤층에 해당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난민의 처우 개선을 위한 규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난민법」 제4장 등에는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보장, ▲사회적응교육, ▲학력 및 자격인정, ▲미성년 난민에 대한 교육지원 등 난민의 권리와 처우 개선에 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법 규정들은 집행력이 없는 선언적 규정이 대부분이다. 난민 관련 예산도 많지 않을 뿐더러, 행정집행을 맡은 각 정부부처 간의 협의도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제로 ‘(사)공익법센터 어필’ 등 시민단체의 조사결과, 언어 장벽과 담당공무원들의 난민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수급신청이 취소당하는 사례가 보고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난민이 보험료 부담을 하지 않고 있다거나, 정착지원금이나 생활비 지원을 받고 있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난민들은 별도의 지원금을 받고 있지 않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다. 법률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를 보장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난민들은 한국사회에서 사실상 방치되어 있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난민의 내일이 달콤해지기를 바라며
유럽의 난민 사태를 목격한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9월 26일 ‘서울경제’의 난민법 관련 기사에도 ‘지금이라도 난민법을 폐지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나 챙겨라’, ‘난민들 받아들이는 미친 짓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이러한 의견에 반박하는 주장을 담은 글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난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난민 문제를 보다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을까?
대학로에 위치한 카페 ‘내일의 커피’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카페는 여느 카페와 다르지 않다. 이 카페만의 특별함은 아프리카 출신 난민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내려준다는 점이다. ‘내일의 커피’의 문준석 대표는 2014년 10월 6일부터 카페를 열었다.
문 대표는 NGO에서 봉사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난민과 만나게 되었다. 난민들과 친구로 지내게 되면서, 그는 난민이 우리가 불쌍하게 바라봐야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문 대표는 난민들이 가진 매력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카페를 창업하게 되었다고 한다.
난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그에게 묻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커피 맛이 어떠신가요? 보통 커피는 쓰다는 편견이 있어요. 그런데 커피에는 훨씬 더 다양한 맛과 향기가 존재해요. 이 (난민)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각자의 개성과 매력이 있어요. 이들이 각자의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못하는게, 오히려 우리 사회에 마이너스라고 생각합니다.”이 카페에 걸려있는 ‘쓰지 않을 꺼야, 인생도 커피도’라는 문구처럼, 난민들의 내일도 더 이상 쓰지 않은 날이 오기를 바래본다.
김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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