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어쩌다’와 ‘아무튼’ (한성대신문, 579호)

    • 입력 202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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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6-07 00:00

‘어쩌다’라는 부사가 제목으로 자주 쓰인다. tvN의 <어쩌다 사장>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은 별안간 시골 마을의 마트를 운영하게 된 두 배우의 모습을 그렸다. 이 제목은 2015년부터 방영된 같은 방송사의 <어쩌다 어른>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른’과 ‘사장’이라는, 어쩐지 어렵고 권위적인 대상이 사실은 대단한 이유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일까. 두 프로그램에서는 어른이 되고도 서툰, 사장이 되고도 서툰 사람들의 배움을 다루었다.

‘아무튼’이라는 부사도 자주 보인다. MBC의 <아무튼 출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각양각색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업무 일상을 보여주었다. 이 제목은 출판사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곳에서 번갈아가며 출간하는 에세이 ‘아무튼’ 시리즈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며, 지금껏 이 시리즈는 『아무튼, 피아노』, 『아무튼 요가』, 『아무튼 술』, 『아무튼 비건』, 『아무튼 아이돌』 등 49권이 나와 있다. 여러 분야에서 이름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것에 대해 신나게 수다를 떤 이 책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밖의 여남은 일이야 분별할 줄 있으랴”라고 노래한 윤선도가 떠오른다. 윤선도는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도리와 신념을 노래하였지만, 오늘날의 도(道)가 어찌 하나로 모아질 수 있을까. 다양한 삶의 풍경 속에서는 일이든 취미든 마음 둘 곳을 찾아 매진하는 모습 자체가 귀하고, 각자에게 그 일은 ‘아무튼’ 해야 하는 것이고 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바람은 어느 때고 모습을 바꾸어 가며 있다. ‘됨’의 순간이 언제 오는지에는 참으로 변수가 많아서 우리는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그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고 준비를 넘치게 하고도 기다리기도 한다. 늦든 빠르든 그 순간은 ‘어쩌다’일 때가 많다. 그러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교훈도 좋지만, 갑작스럽게 찾아 온 ‘됨’ 앞에서 ‘뚝딱’거리는 자신을 잘 보듬고 잘 키우라는 교훈도 필요하겠다.

그리고 이후는 ‘아무튼’이다. ‘의견이나 일의 성질, 형편, 상태 따위가 어떻게 되어 있든’이라는 뜻풀이는 ‘아묻따(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의 맹목성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는 어떠한 선택과 결정에서 파생되는 불편들과 잡념들과 부작용을 ‘일단’ 괄호 안에 넣는 용단(勇斷)이기도 하다. 그러니 아무튼 일하고 아무튼 공부하고 아무튼 좋아하면 어떨까. 그러다가 문득 뒤돌아보았을 때 발견되는 것이 각자의 도(道)가 아닐까.

정보미(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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