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겁다. 아직 바람은 선선하다. 놀기 좋은 날씨다. 이런 날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프라인 수업이 확대되면서 학교에는 이제 사람 소리가 들린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다니기도 하고 홀로가 되었다가 다시 강의실 안에 모여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그들의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예외 없는 무기력함이나 우울과 만나게 된다.

대학이란 공간은 그렇다. 더 큰 사회를 마주하기 전의 단계이기 때문에 누구는 지금을 즐기고자 하고 누구는 지금을 쪼개고 쪼개 자기 발전을 위해서 쓴다. 그들은 각자 사회의 압박을 받기도 하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압박을 주기도 한다. 성인이 되었으나 사회인이 되지는 못했고, 어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어린 것은 틀림없다. 여러모로 애매한 시기다.

필자 역시도 그 애매한 위치 속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가오는 졸업, 어려워지는 전공 과목, 쏟아지는 과제와 한숨만 나오는 학점 속에서 여름이라는 계절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밤에 잠 못 들게 하고 모기에 물려 신경 쓰이게 만들고 날은 더운데 에어컨은 차가워서 옷 입기가 귀찮은 계절, 그 뿐인 것이다. 매일이 비슷하다. 강의실과 도서관을 오간다. 집으로 돌아갈 때쯤이면 태양의 뜨거움은 이미 그 힘을 다했다.

사람은 참 신기하게도 이렇게 빡빡한 일정 사이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때가 있다. 필자가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 것은 해가 아주 쨍쨍한 날이었다. 해가 닿는 살이, 해로 인해 데워진 벤치가 따뜻하지만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은 시원하다. 마침 배부르게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커피 한 잔을 딱 손에 든 뒤였는데, 그 벤치에 앉아 햇살과 바람을 만끽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의 행복감은 차마 활자로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다.

그 순간 이후의 하루는 온통 완벽했다. 피곤하던 하굣길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따뜻해진 날만큼 꽃이 정말 많이 피어있었다. 학교 앞 분홍색의 장미는 유독 꽃송이가 커다랗고 향이 달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파트 단지 주차장의 붉은 장미는 향이 덜하지만 줄기의 초록색과의 조화가 더욱 아름다웠다. 아무 생각 없이 신은 신발이 마침 운동화라서 버스가 집에 도착하기 전 미리 내려 20분 정도를 더 걸었는데 발이 편해서 좋았다. 심심함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들었던 노래는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너무 잘 어울려서 마치 내가 난관을 헤쳐 가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곧 모든 일상이 행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아주 사소한 낭만 안에 잠들어 있다. 하늘을 보자. 눈을 감고 바람을 느껴보자. 혹은 거기에 실려 올가느다란 생명의 향기를 맡아 보자. 우리는 분명 행복을 위해 달리고 있다. 그 과정이 행복하지 아니하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 사라져가는 해로운 바이러스 말고, 낭만을 전파시켜 보자.

노유리(인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