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파괴는 창조의 시작 (한성대신문, 517호)

    • 입력 2016-10-10 20:50
백남준의 작품을 통해 알아본 현대예술

예술은 무엇일까? ‘모든 것이 예술이라는 극단적인 견해가 있을 정도로 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예술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 밀로의 비너스, 베토벤의 교향곡 등을 쉽게 떠올린다. , 그림이나 음악 등에 있어서 비율, 구성과 같은 형식적인 요소들이 작품 속에 적절하게 어우러졌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대 예술에서는 형식을 깨트리는 것 또한 예술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플럭서스. ‘플럭서스라는 이름은 '흐름'을 뜻하는 라틴어 플럭스(flux)에서 유래했으며 행위 예술의 한 형태다. 플럭서스 예술혁명의 저자 전선자는 엘리트 예술을 반대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1964년 이후 뉴욕 소호에서 예술집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예술 형태를 만들어 갔다. 플럭서스는 직선적인 과학과 권위가 만들어 놓은 신화를 깨고, 모든 전통개념에서 자유롭고, 창작자와 수용자가 일체가 되길 원했다. 창작자와 수용자가 미래를 사유하며 사회를 변화시키길 바랐다. 그들은 변화에서만 새로운 것이 등장 할 수 있다고 말하며 변화를 추구했다고 플럭서스에 대한 개념을 설명했다.
이러한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 백남준이다. 그는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첫 전시회를 열 때, 전시 제목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젼라고 붙였다. 우리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음악이 과연 전시 될 수 있는 것인가이다. 이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 중 총체피아노는 그 형상부터 기괴하다. 피아노를 구성하고 있는 구성품은 철조망, 전등, 깡통 등이다. 이것들은 피아노 이곳저곳에 부착되어있다. 연주자가 피아노를 두드릴 때마다, 전등이 켜지거나, 타악기 소리가 난다. 이에 대해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활동했었던 안소현 독립 큐레이터는 총체피아노는 관객이 느끼는 두려움, 공포를 포함하는 공감각적인 작품이다. 또한 관람객은 이것을 단순히 청각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작품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남준은 음악을 청각을 통해 수용한다는 고정관념을 깨트렸다. , 그는 예술 간의 장르를 해체함으로서 당시 예술계에 파장을 남겼다.
새로운 매체의 도입 또한 현대 예술의 한 형태다. 우리가 백남준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디오아트. ‘비디오아트란 텔레비전과 같은 비디오매체를 표현수단으로 한 예술을 말한다. TV는 대중이 쉽게 즐기는 대중매체임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TV는 불균형한 관계를 이루어왔다. TV보급 단계의 초기에는 그것이 가지는 특징, 일방향적 송신때문에 대중은 TV에서 송출한 내용을 그대로 수용해야만 했다. 따라서 백남준은 TV에 의한 대중지배에 대한 역기능에 대해서 고민하였으며, 이에 예술적 해석을 가하여 대중과 소통하고자 했다. , 비디오 예술의 등장의 배경은 TV와 대중이 갖는 불통의 문제를 지적하고, 대중을 작품에 끌어들여 소통하려고 한 것이다.
그는 1965자석TV’이라는 작품을 출품함으로서 비디오매체가 가지는 불통의 문제에 예술성을 덧씌웠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자석을 이용하여 TV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변형시키는 과정을 가진다. , 관람객들은 TV앞에 놓인 말굽자석을 브라운관 앞으로 이동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TV를 통해 추상적인 이미지를 얻게 되며 비디오 예술에 직접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정보독점의 상징인 TV는 관람객이 자석을 갖다 대는 순간 그것의 기능은 무용지물이 된다.
근대예술과 현대예술을 나누는 시점은 불분명하며, 현대예술의 정의 또한 불분명하다. 하지만 백남준을 통해 알아본 현대예술의 특징이 형식의 파괴, 장르의 해체, 새로운 매체의 활용 등 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한때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로 불렸던 백남준, 하지만 그는 현재 현대예술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유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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