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자와 함께하는 시사한잔> 감축, 감축, 또 감축… 생계형 노인일자리마저 (한성대신문, 581호)

    • 입력 2022-09-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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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2-09-19 00:00

초등학생의 등굣길에서 안전지도를 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27만 원을 받는 노인이 있다.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에 참여하는 노인이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초등학교 앞에서 이들을 보지 못할 수 있다. 정부가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를 줄이고 시장의 논리를 앞세운 시장형 노인일자리를 늘리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긴축재정이 필요한 시점에 국가 예산을 투입해 ‘질 낮은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가 수행하고 있는 노인복지의 기능이 사라져 ‘복지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는 노인이 자기만족과 지역사회 기여를 위해 참여하는 사회활동으로, 초등학교 등굣길 안전지도, 키오스크 도우미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참여 대상은 기초연금 수급자, 즉 만65세 이상의 노인으로 한 달에 총 30시간 일하며 최저시급과 관계없이 월 27만 원의 보수를 받는다. 이는 노인이 직접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생산활동에 참여하는 시장형 노인일자리와 비교했을 때 노동시간, 보수, 생산성이 모두 적다.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가 ‘질 낮은 일자리’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정재훈(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의 노동 가치를 저하시키는 인식이 있었고, 이것이 고착화됐다”며 “공공 예산의 투입 여부에 관계없이 일자리라면 일정 정도의 생산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시장형 노인일자리를 늘리고, 고령자를 채용하는 기업에 지급하는 고령자 고용장려금의 규모를 키워 전체 노인일자리는 증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 참여자가 오갈 데 없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참여자 대부분이 70~80대의 고령이고, 더욱이 저학력자라는 이유로 기업의 채용이 원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조사 결과, 2020년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 참여자의 90%가 70세 이상이었다. 또한, 13.1%가 무학(無學), 31.3%가 초등학교 졸업, 12.4%는 중학교 졸업으로, 절반 이상이 중등교육을 수료하지 못한 저학력자였다. 최현수(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재정정책연구실) 실장은 “시장형 노인일자리는 기업이 노인을 받아들여야 활동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70세 이상의 고령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라며 “나이와 업무 역량 등을 고려하면 시장형 노인일자리가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인일자리의 축소는 비단 노인의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정신건강적 측면까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노인이 일자리를 통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유지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보건복지부의 조사에서 노인일자리 미참여자의 우울 의심 비율은 32.3%, 참여자의 의심 비율은 7.3%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최 실장은 “이마저 없다면 바깥활동을 일체 하지 않는 노인이 생길 수 있어 고독사나 복지 사각지대 형성 등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러한 일자리로 인한 사회적 유익을 무시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초등학교 등굣길 안전지도 등은 그 필요성이 충분하지만 청장년층이 기피하는 저임금 노동이기에,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를 통해 충족되는 사회적 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영란(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는 그 일을 수행하는 노인을 제외하고도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한다”며 이를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노인일자리의 발전을 위해 참여자가 직접 일자리 사업 개선에 대한 논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대안이 제시된다. 김 교수는 “노인이 능동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노인의 독립과 존엄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노인일자리 사업에 대한 논의 구조에 이해당사자인 노인을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를 감축하는 것은 참여자의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재정적 기준만을 적용한 조치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가 참여자에게 주는 효과를 생각한다면, 이를 단순 일자리 정책으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복지정책의 일환으로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기술과 경력이 부족해 자력으로 노후대비를 하지 못한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줄이고, 그렇지 않은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사회정의에 부합되지 못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최 실장은 “노인일자리는 단순히 유형별로 수치를 증감하는 차원에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참여자의 특성과 일자리에 대한 필요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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