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알에서 나온 혁거세.’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1절 가사의 일부다. 삼국의 건국자로 알려진 이들을 각각 언급하는데, 이 때문인지 우리는 신라의 건국자를 분명히 박혁거세로 기억한다. 하지만 역사가들은 박혁거세가 자신의 세력만으로 신라를 건국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신라는 지증왕 이전까지 ‘사로국’이라고 불렸으며, 혁거세는 이 사로국의 초대 왕이다. 사로국은 혁거세의 단독 건국이라기보다는 인근의 토착 세력들과 협력해 결성된 국가라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김선주(중앙대학교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박혁거세가 신라의 건국자로 기록돼 있지만, 경주 일대의 토착 세력인 6촌장 세력과 혁거세로 대표되는 박씨 집단, 그리고 알영 집단 등 유이민 세력의 상호 협력을 통해 건국된 나라가 사로국”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로국의 건국 모습이 담긴 혁거세 신화를 보면 ‘6촌장’과 ‘알영’이 누구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연합과 건국이 이뤄졌는지 그 내막을 알 수 있다. 조범환(서강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건국신화를 파악할 때 중요한 것은 신화의 내용 속에서 역사적인 실마리를 추출하는 과정”이라며 “혁거세 신화에서도 사로국 건국과 번영을 알아낼 수 있다”고 전했다.
『삼국유사』에서 전하는 혁거세 신화는 옛날 경주 땅의 여섯 고을로부터 시작한다. 경주에는 여섯 개의 마을과 각 마을을 다스리는 6명의 촌장이 있었다. 이들은 어느날 모여 백성들이 모두 방종하니, 덕이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으로 모시고 더 큰 나라를 만들자고 논의했다. 그리하여 일단 높은 곳으로 올라가 보니,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이상한 기운이 드리우고 있었다. 기이하게 여긴 촌장들이 우물 앞에 가 보니 그곳엔 흰 말 하나가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그 옆에는 알이 하나 있었다. 돌연 말이 하늘로 올라가자 알에서는 남자아이가 부화했고, 6촌장은 이 아이에게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의 ‘혁거세(赫居世)’라는 이름을 붙이고 왕 삼기로 했다. 한편 같은 날 ‘알영정’이라는 다른 우물에서는 용이 나타났고, 그 용은 옆구리로 여자아이를 낳은 후 사라졌다고 한다. 6촌장은 그 아이에게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 ‘알영’이라는 이름을 주고, 혁거세의 배필로 삼자고 정했다. 혁거세와 알영을 키운 6촌장은 두 아이가 열세 살이 되자 각각 왕과 왕비로 추대하고 나라 이름은 ‘사로’라고 하니, 곧 우리가 아는 신라의 초기 국호다. ‘사로(斯盧)’는 학계에서 새로운 나라, 동방의 나라, 성스러운 장소 등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후 사로국은 점차 중앙집권적 체제를 갖춘 고대 왕정 국가로 변모하며, ‘신라’라고 새로 이름을 정한다.
얼핏 들으면 신화의 주인공은 혁거세로 보인다. 신이한 과정을 거쳐 태어나 왕이 되는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화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주체는 6촌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6촌장이 신화의 서사를 주도한다. 6촌장이 임금을 염원하니 혁거세가 나타난다. 뿐만 아니라 혁거세를 키운 사람도, 왕으로 추대한 사람도 6촌장이다. 이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조선 유민이 6촌을 이뤘다’는 대목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경주 지역의 6촌장은 고조선에서 이주해 온 유이민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김재홍(국민대학교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해당 내용은 경주 일대에 고조선 유이민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며 “경주, 대구 등지에서 고조선의 청동기와 연결 지을 수 있는 청동기 자료가 출토됐다”고 말했다.
신화 속에서 6촌장은 방자한 모습을 보이는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 새 지도자가 필요했다. 이같은 내용을 당대 경주 지역의 상황과 연결 지어, 6촌장이 왕을 중심으로 한 집권 체제의 필요성을 느낀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이들 세력이 고조선 일대에서 남하해 경주 지역에 자리잡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주민이 유입됐는데, 이들이 군장 중심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익숙한 왕정 체제를 필요로 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군역 등을 피해 중국 지역에서 들어온 유이민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왕정 국가에서 건너온 이주민 집단이 부족사회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촌장 사회를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신화의 내용을 통해 사로국의 정치 체제를 엿볼 수 있다는 의견이 있다. 6촌장이 혁거세보다 더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이 사로국의 왕권과 귀족권을 상징한다는 분석이다. 사로국, 그리고 그 이후의 신라는 왕이 막강한 권한을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한다기보다 후대 신라에 ‘6부’로 개편되는 막강한 귀족 세력과 협의를 거쳐 국가를 이끄는 체제였다고 보는 것이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나 ‘포항 냉수리 신라비’와 같은 고고학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두 비문에는 지방 백성의 재산과 관련한 분쟁을 왕과 6부 세력이 조정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 6부 세력이 왕과 더불어 지배권을 행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장웅(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주무관은 “냉수리 신라비에는 왕과 6부 세력을 ‘칠왕’이라는 표현으로 포괄한다”며 “화백회의와 같은 귀족 협의 기구가 발달했고, 왕이 독단적 권력을 행사했다기보다는 귀족과의 논의를 통해 국정을 이끄는 형태였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6촌장은 그렇다치고, 별안간 알에서 깨어나 이들을 제치고 왕좌를 꿰찬 혁거세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역사가들은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혁거세도 이주민 세력이라고 이야기한다. 김선주 교수는 “혁거세가 경주 일대로 이동해왔다고 보이는 무렵에 경주에 새로운 무덤의 양식이 나타나는 등, 혁거세 세력의 출신에 대한 논의는 더 필요하지만 유이민 세력임은 확실하다”고 설명했다.
이주민이었던 혁거세는 어떻게 해서 토착 세력과 연합해 임금이 될 수 있었을까. 사학계에서는 토착 세력이 혁거세의 세력을 우호적으로 여길만한 선진 기술이나 지식을 함께 가지고 이동해 왔고, 그렇기 때문에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시각이 다수다. 토착 세력보다 더 늦게 이주해 온 혁거세 세력은 다른 지역에서 영위하던 무기 제작 기술, 집권 체제에 대한 지식 등을 가지고 왔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혁거세가 알영과 혼인을 통해 다른 세력과 동맹을 맺었다고 보기도 한다. 알영 중심 세력과 혼인을 통한 동맹을 맺어 세력을 확장함으로써 임금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6촌장 세력이 갖지 못한 우월한 능력과 지식을 갖춘 세력으로서 혁거세 세력이 유입됐고, 6촌장 세력의 국가 체제에 대한 필요성과 맞물려 혁거세가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혁거세 세력이 가지고 있지 못한 기술이나 지식을 알영 세력이 가졌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알영과의 혼인이 혁거세가 왕이 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보면, 알영도 중요성을 갖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그녀도 신화에서 신이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다. 또한 『삼국사기』 등 문헌에서 혁거세와 알영을 ‘이성(二聖)’, 즉 두 명의 성인으로 통칭하는 등, 알영에게 단순한 왕비 이상의 위상이 있음을 볼 수 있는 자료가 존재한다. 특히 알영이 혁거세와 대등한 공동통치자였다고 추정할 수 있는 사료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알영이 백성들에게 누에치기를 독려했다는 내용이 있고, 이에 더해 신라 왕실의 여성이 누에치기를 통한 비단 생산을 주도했다는 내용도 존재한다. 여성이 양잠업을 주도하고 독려했다는 기록은 신라의 것만 확인된다. 신라에서는 길쌈 작업을 여성의 영역으로 봤고, 알영이 이 작업의 관할자로서 여성으로 대표되는 절반의 백성을 통솔할 힘을 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김재홍 교수는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알영’, ‘아로’라는 여성의 이름에 보이는 ‘알’, ‘아’는 제사장과 관련된 이름”이라며 “신라의 왕비는 왕을 내조하는 왕비가 아니라, 제사장이나 양잠업 같은 자신의 고유한 직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혁거세 신화를 중심으로 여러 문헌과 고고학 자료를 살펴보면, 사로국이 혁거세 홀로 세운 국가는 아님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같은 점을 근거로 들어 신라의 시조를 혁거세 한 사람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부오(장성중학교) 교사는 여러 세력이 경쟁·억압·협의 등을 거쳤겠지만 신화 속에서는 그러한 사실들이 함축돼 있다”며 “상호 협력을 통한 건국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