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파고의 존재는 그런 기술이 실제로 개발될 가능성과 더불어, 우리의 생활 가까이 인공지능을 이용한 시스템들이 곧 실용화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란 과연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지능적 활동을 대신할 수 있는 기계를 말한다. 인공지능의 시작은 사실 튜링*이 사고할 수 있는 기계, 즉 튜링 기계를 생각할 때부터 태동되었다.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 튜링은 독일군의 암호를 푼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암호를 푼 기계의 기본적 개념이 오늘날의 컴퓨터에 그대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현재의 모든 컴퓨터는 튜링 기계와 다른 것이 아니다.
튜링은 컴퓨터의 사고 능력과 인간의 사고 능력을 구별할 수 없는 단계를 테스트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하나의 방에는 사람이 다른 방에는 컴퓨터가 있을 때 몇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질문자가 어느 쪽에 사람이 들어있는지를 잘 모를 때 튜링테스트를 통과하게 된다. 최근 영국의 레딩 대학에서 유진이라는 우크라이나 출신 13살 소년을 가상하여 만든 인공지능이 튜링테스트를 통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 인공지능은 영어를 잘 못하는 아이를 상정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튜링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는 20년 전에 ‘별이 11살’이나 ‘사이버 HOT’와 같은 대화시스템을 개발한 경험이 있는데. 실제 대화 내용을 보고 사람 사이의 채팅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시스템들은 사실 본격적인 인공지능은 아니다. 그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챗봇(chatbot)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미 시리, 코타나, 구글 나우와 같은 챗봇은 제한된 범위이기는 하지만 실용적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하고 있고, MS나 구글은 좀 더 인간과 닮은 챗봇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반면에 알파고나 자율주행차와 같은 인공지능은 아주 제한적 범위 내에서 사용되는 인공지능이다. 그것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이용한 특정한 활동을 특정 분야에서만 인간처럼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인공지능의 능력은 해당 분야에서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기 때문에 사회에 충격을 주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공지능이 가능한 것은 최근 많은 기술의 진척을 보인 신경망식 딥러닝 학습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걷거나 말하는 기술을 어떤 의식을 가지고 배우지 않은 것처럼 이러한 인공지능들은 바둑을 두거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 필요한 지식을 빅데이터를 통해 인간처럼 학습하여 결국 컴퓨터가 가진 계산 능력을 이용하여 인간의 능력을 앞설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인간이 가진 학습 능력에는 분야의 제한성을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 고유의 특성이다. 인간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스스로 호기심을 느끼며 자기가 학습할 내용들을 분야를 가리지 않고 탐구하여 지식의 지평을 스스로 넓혀가고 높여간다. 이러한 능력까지 기계가 흉내 내려면 아직도 멀고 먼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원래 호기심이 많은 존재라 자신과 똑같은 기계를 만들려는 욕망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들은 단순히 공학이나 수학적 기술로는 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성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인문학적 질문들이 충족될 때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떻게 다른 동물들과 달리 문명을 이룰 수 있는 지능을 획득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그러한 작동은 뇌에서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고, 학습된 지식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으며, 어떻게 언어를 통해 많은 데이터로부터 절차적 추론을 행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단순히 효율뿐 아니라 윤리와 정의에 대해 사고하고 합의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과연 기계가 인간처럼 사고한다는 궁극의 결과는 무엇일까? 영화 her에 등장하는 OS 사만다는 과연 인간의 마음과 닮은 것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그저 기계의 작동일 뿐일까?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 인간 정체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문학과 인공지능의 연구는 어쩌면 그 목표가 같은 것일 수 있다.
인공지능의 개발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것은 이제 인공지능이 단순히 공학적 결과물이 아닌 인류가 가질 수 있는 초미의 과제를 던졌기 때문이다. 과연 인간은 누구인가?
고창수 교수
(국어국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