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화정>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 (한성대신문, 591호)

    • 입력 2023-08-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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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08-28 00:00

상품의 콘셉트가 확실하면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일정한 품질을 바탕으로 기업이나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면 소비자는 공감하고 호응했다. 친환경 소비를 내세운 화장품 브랜드 더 바디샵은 자연주의라는 마케팅 콘셉트만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지갑을 열게 만들기도 했다. 재사용 가능한 용기를 가져오면 가격을 할인해 주는 리필정책이나 동물실험에 반대한 친환경 제품은 한 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선순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매출부진으로 고전하다 결국 다른 화장품 회사에 매각되었다. 상품의 본질에 충실한 생산이 더 이상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게 된 결과였다.

이제는 상품의 단순한 콘셉트를 넘어서 스토리와 세계관까지 제시한 콘텐츠가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광고로 유명한 친환경 패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오래 입을 수 있는 튼튼한 옷을 만들어 버려지는 옷을 최소화한다는 슬로 패션에 대해 스토리를 지속적으로 내세우며 지구 되살리기를 목표로 하는 브랜드 철학을 이야기로 풀어간다. 소비자들은 파타고니아 옷의 품질이나 콘셉트보다는 연매출 1%를 지구 환경 보호에 사용한다는 브랜드 스토리에 공감하여 구매한다.

더 나아가 온라인 게임의 시나리오처럼 구성한 가상의 세계관이 비즈니스를 이끄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빙과류 제조기업인 빙그레는 모두 빙그레 제품으로 디자인된 복장을 입은 미소년 왕자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의 왕위 계승과 빙그레 제국 이야기를 소셜미디어에 소개하면서 폭발적 호응을 이끌어냈다. B급 문화와 키치적 디자인의 빙그레우스 스토리는 소비자들에게 엔터테인먼트의 소재가 되었다. CU 편의점은 9년 차 알바생이 겪는 다양한 상황을 다룬 ‘편의점 고인물’ 시리즈와 초보 점주의 좌충우돌 운영기를 다룬 ‘편의점 뚝딱이’ 시리즈를 유튜브에 선보이며 이례적인 조회수를 기록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편의점은 배경으로만 등장하며 CU를 이용해 달라거나 CU에서 상품을 구매해달라는 전통적인 마케팅 메시지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편의점의 기능적 속성보다는 소비자가 공감하는 콘텐츠로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기업은 단순한 상품 콘셉트나 브랜드를 넘어서는 탄탄한 스토리와 강력한 세계관 구축으로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상품 그 자체가 아닌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든 것이 콘텐츠가 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김보름(문학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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