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소리 (한성대신문, 593호)

    • 입력 2023-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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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0-17 17:14

<편집자주>

“요즘 애들은 왜 그래?” 어느 세대나 그랬듯, 현 젊은 층도 자주 듣는 물음이다. 진짜 요즘 애들은 왜 그럴까? 그래서 알아봤다. MZ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것만 보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기자가 그 속으로 뛰어들었다. MZ세대의 대표주자인 기자를 따라 청년이 열광하는 것을 파헤쳐보자.

최근 당신이 홀로 거리를 거닐 때 길거리 소음을 들은 적이 있는가. 대부분 없을 것이다. 이어폰 넘어 들리는 직접 택한 소리만을 듣기 때문이다. 나아가 소리를 즐기는 방식이 더 다양해졌다. 듣는 것을 넘어 직접 만지고 경험하며 소리를 즐기기 시작했다. 색다른 청각적 자극을 주는 ‘ASMR’부터 아날로그적인 매력이 듬뿍 담긴 ‘LP’, 그리고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패션 아이템이 된 ‘헤드셋’까지. 누구보다 다양하게 소리를 즐기는 청년들의 행보를 따라가 본다.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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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청각에서 오는 즐거움을 향유하는 양상 주목해 보자. 코로나바이러스감염 증-19(이하 코로나19) 유행을 기점으로 오디오 콘텐츠 소비가 활발해졌다는 분석이 있다. 집에만 있는 생활, 일명 ‘집콕’만을 반복하며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던 청년들이 오디오 콘텐츠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끝없는 영상 콘텐츠 소비로 쌓인 눈의 피로도를 풀기 위해서다. 서용구(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OTT가 발달하면서 청년들이 시각적 정보를 과하게 소화하고 있다”며 “인간의 오감 중 시각만 집중적으로 발달하다 보니 감각의 균형이 깨져, 청년들이 청각적 요소를 보충하고자 오디오 콘텐츠를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오디오 콘텐츠 향유에 있어 ‘노이즈 캔슬링’은 빼놓을 수 없는 방식이다. 청년들은 주변 소음을 차단하는 노이즈 캔슬링을 활용해 외부 소리로부터 차단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낸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사회관계나 인간관계 속에서 피로를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며 “오디오 콘텐츠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힐링 공간이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오디오 콘텐츠는 ‘멀티태스킹’ 현상에도 도움을 줘 더욱 인기를 끌고 있다. 멀티태스킹은 한 번에 2가지 이상의 일을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오디오 콘텐츠는 청음과 동시에 다른 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도서관 백색소음, 자연의 소리, 오디오북과 같은 이전보다 다양한 형태가 등장하면서 일상 곳곳에서 오디오 콘텐츠가 소비되고 있다. 이홍주(숙명여자대학교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시간을 더욱 가치 있게 사용하려는 청년들의 욕구가 오디오 콘텐츠의 사용량을 늘렸다”며 “바쁜 직장인들은 출퇴근할 때, 그리고 운동을 하면서 오디오 콘텐츠 소비를 통해 유익한 시간을 보낸다”고 전했다.

▲기자가 스피커로 들리는 갈대소리를 듣고 있다. [사진 : 박희진 기자]

ASMR의 무한확장

속삭이는 소리에 등줄기가 찌르르 울리 며 ‘팅글*’이 느껴지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 가. 이러한 소리 자극을 중심으로 한 'ASMR' 오디오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있다. 자율 감각 쾌락 반응을 뜻하는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뇌를 자극하는 오디오 콘텐츠다. ASMR은 바람이 부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물건을 두드리는 소리 등 종류가 다양하다.

이러한 ASMR은 세밀히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듣기 어려운 소리로 청년들에게 색다름을 선사하며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을 준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들리는 것에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청년들에게는 또 하나의 힐링을 선사하는 것이다. 일부 ASMR은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돼 공부할 때나 운동 할 때 효율을 높여준다. 명지대학교 아동학 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서정은 학생은 “불면증이 심해서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았는데 귀 청소 ASMR, 물건 탭핑 ASMR 등을 들으면 청각적으로 편안함을 느껴 비교적 쉽게 잠들 수 있다”며 “ASMR이 집중도도 높여 줘 공부할 때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ASMR은 ‘먹방(먹는 방송)’ 콘텐츠와도 결합하며 콘텐츠의 다양성이 확장되고 있다. ASMR 전문 크리에이터도 등장하고,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ASMR 전용 코너가 생겨날 만큼 ASMR 먹방 콘텐츠의 수는 증가 하는 추세를 보인다. 탕후루, 보석 젤리 등 의 유행 역시 ASMR 콘텐츠로부터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 교수는 “소리가 인간의 소비 행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광고음악인 CM송을 듣고 해당 브랜드를 떠올리는 경우도 이와 같은 소비자의 청각 심리가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ASMR을 접목한 전시 공간도 많이 생겨 나고 있다. 이에 기자가 직접 ASMR을 들을 수 있는 전시 공간에 가봤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니 갈대숲 사이에 들어선 커다란 스피커가 보인다. 갈대가 바람결에 맞춰 넘실대는 소리가 생동감 있게 들린다. 인조 갈대 속 놓인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실제 갈대숲 못지않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에는 잘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대형 스피커로 크게 들으니 몰랐던 갈대의 이면을 보는 듯했다. 서 교수는 “시각의 정보가 많다 보니 시각 외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서비스가 발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LP를 턴테이블에 넣어 음악을 감상하는 기자 [사진 : 박희진 기자]

LP가 주는 멋은 포기 못하지

현재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이전의 음악 세계까지 들여다보는 젊은 세대가 많아졌다. 그 중심에는 ‘LP(Long Playing record)’가 있다. LP를 사서 턴테이블에 넣어 소리가 나올 때까지의 과정에 의미를 부여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 문화평론가는 “현재는 손쉽게 음악과 소리를 선택 할 수 있게 됐는데, 자신의 노력과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만족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며 “LP는 자신이 직접 구매하고 관리 하며 직접 틀어야 하므로 그런 노력과 과정 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층 사이에서 번진 ‘레트로’ 유행 또한 LP에 대한 소비를 증가시켰다. 레트로란 과거의 모양, 풍습 등으로 돌아가거나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좇아 행하는 것을 뜻한다. 청년들은 기성세대로 불리는 일명 ‘7080 세대’ 에서 유행하던 LP를 다시금 찾기 시작했다. 과거의 것이었던 LP가 지금의 청년들에게 는 일종의 개성 있고 최신 유행을 잘 따른다는 뜻의 ‘힙’스러운 것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동덕여자대학교 국제경영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채연 학생은 “평소 LP로 음악을 듣는데, 휴대폰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듣는 것보다 옛것을 활용하고 있다는 나 자신이 특별하게 느껴져 선호한다”고 말했다.

LP를 듣는 방법도 다각화됐다. LP를 한 곳에서 크게 틀어 한 음악을 다 같이 즐기던 과거와는 다르게 각자가 헤드셋을 통해 LP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원하는 LP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LP 카페 ‘뮤직컴 플렉스서울 안녕인사동점’이 청년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는 소식에 기자도 방문해 봤다. 오픈 시간에 맞춰갔지만 금세 사람이 찰 정도로 인기가 많은 장소였다. 이곳에서는 LP가 장르마다 분류된 공간이 존재해 수많은 LP 속에서 취향에 맞는 LP를 고를 수 있었다. 생소한 음악들이었지만, 얼추 선호하는 풍의 음악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수많은 LP사이에서 어떤 음악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하며 자리에 앉는다. 예측할 수 없다는 특징이 하나의 재미 요소로 다가왔다. 직접 LP판에서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넣어 헤드셋으로 흘러 나오는 음악을 감상한다. 처음 접한 노래였지만 LP에서 느껴지는 웅장함에 반해 한참 동안 멍을 때리며 음악에 집중했다. LP를 듣고 있자니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음악적 취미를 가진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이 교수는 “디지털 음질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LP가 신선한 경험이 된다”며 “LP 음반을 골라서 플레이어를 통해 음원을 소비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기자가 직접 헤드셋을 꾸미는 중이다. [사진 : 신지원 기자]

소리를 착용하다

‘Y2K’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과거를 회상하며 추억하는 레트로의 방향이 2000년대로 향한 것이다. 2000년대 유행 문화인 Y2K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헤드셋이 ‘Y2K 패션 아이템’으로 청년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 헤드셋으로 음악을 듣지 않아도 착용만으로 트렌디한 분위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이 교수는 “청년층에게 헤드셋은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포인트 액세서리로 인식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년들은 헤드셋을 착용함으로써 차단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헤드셋을 착용하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있거나 집중한 듯한 모습을 보이곤 한다. 서 교수는 “세상을 차단하고 싶은 욕망을 가진 청년들이 헤드셋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헤드셋 인기에 발맞춰 ‘헤드셋 꾸미기’ 또한 유행하고 있다. 보이는 것에 민감한 청년들이 헤드셋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기자도 헤드셋을 구매해 직접 꾸며봤다. 귀여운 스티커와 눈에 띄는 보석 스티커를 여기저기 붙여봤다. 귀여운 것을 좋아하는 기자의 취향을 듬뿍 담은 헤드셋 커스텀이다. 직접 꾸민 헤드셋을 착용해 보니 다른 이들에게 나의 개성과 취향을 뽐낼 기회가 되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에 더해 커스텀에 필요한 다양한 소재의 재료를 고르는 순간까지도 하나의 즐거운 일상으로 느껴지기에 일종의 ‘다이어리 꾸미기’와 비슷한 취미가 되지 않을지 생각해 본다. 서 학생은 “나의 개성을 헤드셋으로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며 “헤드셋 꾸미기를 통해 유일무이한 나만의 것을 갖게 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팅글 : 따끔하다, 얼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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