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손으로 읽는 문자 (한성대신문, 594호)

    • 입력 202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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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1-06 00:00

‘점자의 날’이 지난 11월 4일 97주년을 맞았다. ‘점자’ 란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활용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도록, 튀어나온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조합한 문자다. 국가마다 사용하는 문자가 상이하듯 점자 또한 국가마다 다른데,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점자화한 ‘한글 점자’가 통용된다. 한글 점자는 『점자법』 제4조에 의해 한글과 동등한 우리나라의 문자로 인정되고 있다.

6개의 점으로 이뤄진 점자의 모습은 주사위의 ‘6’면과 유사하다. 6개의 점이 가로로 2개씩, 세로로 3개씩 배열 돼 있고, 점들의 평평함과 볼록함으로 각 문자를 나타낸다. 초성과 중성, 종성을 모아 하나의 글자로 만드는, ‘모아쓰기’를 따르는 한글과 달리 한글 점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가로로 나열해 쓰는 ‘풀어쓰기’ 방식을 따른다. 한글처럼 초성과 종성에 같은 형태의 자음을 사용하면 앞 글자의 종성과 뒷글자의 초성을 구분하기 어렵기 때문에 한글 점자에서는 같은 자음일지라도 초성과 종성의 점 배열이 다르다. 허병훈(서울맹학교) 교사는 “같은 기역 이라고 하더라도 점의 위치에 따라서 초성에 쓰인 기역 인지, 종성에 쓰인 기역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암호가 하나의 문자가 되기까지

야간 전투에서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야간문자’가 점자의 시작이었다.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지던 1808년, 프랑스의 육군 장교인 샤를 바르비에가 야간 전투에서 군인들이 적군에 발각되지 않고 소통할 수 있도록 볼록하고 평평한 점들을 조합한 문자를 만들었다. 해당 문자는 가로로 2개, 세로로 6개의 점이 배열된 형태로 이뤄져, 한 손가락의 끝으로 12개 점의 볼록함과 평평함을 모두 느끼기 어렵다는 단점이 존재했다.

이후 야간문자를 접하게 된 시각장애인 루이 브라유가 1824년에 이 같은 단점을 개선한 점자를 고안해 냈고, 이것이 점자의 시초로 인정받고 있다. 루이 브라유는 야간문자보다 간소한 형태를 만들기 위해 가로로 2개, 세로로 3개의 점을 배열해 총 6개의 점으로 점자를 만들었다. 한 손가락으로 하나의 문자를 인지할 수 있다는 장점 덕분에, 그의 6점 점자는 널리 퍼져나가 세계 여러 나라 점자 체계의 근본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미국인 선교사 로제타 셔우드 홀이 평양에서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하며 ‘평양 점자’가 보급됐다. 평양 점자는 4개의 점으로 이뤄졌기에 루이 브라유의 6점 점자보다 나타낼 수 있는 문자의 수가 적다는 한계가 있었다. 또한 초성과 종성에 똑같은 형태의 자음을 사용하는 한글의 특성상 4점 점자로는 글자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존재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제생원* 맹아부의 교사였던 박두성이 6점 점자에 기반한 일본어 점자가 쓰이는 것을 보며 한글 점자를 만들 필요성을 느껴, 1920년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했다. 하지만 1920년대 당시 한글 점자를 창안하는 것은 우리말 사용을 억제하는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어긋나는 일이었기에, 연구위원회는 비밀리에 연구를 이어 나갔다. 그 결과 1926년 초성과 종성을 구분해 읽고 쓸 수 있는 점자인 ‘훈맹정음’이 창안됐다. 이를 발표한 11월 4일을 점자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훈맹정음이 지금의 한글 점자의 뿌리라고 입을 모은다. 이승권(서울맹학교) 교사는 “훈맹정음이 한글 점자와 90% 이상 똑같다”고 말했다.

되새겨야 할 점자의 가치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음성 서비스가 점자를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음성 서비스가 점자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다. 음성 서비스만을 이용할 경우 시각장애인이 한글을 사용할 기회가 감소해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의 소통이 어렵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e와 2’처럼 음성만으로 구분하기에는 일부 제약이 있는 경우, 점자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이 교사는 “보통 듣기만 하면 많은 학생들이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관해 잘 알지 못하게 된다”며 “음성만으로는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데 오류가 생길 위험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대체 불가한 한글 점자를 보전하려면 사회적으로 한글 점자의 중요도에 대한 인식이 제고돼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사회 일각에서는 한글 점자를 한글과 동등한 문자로 보지 않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준범(세종점자도서관) 관장은 “시각장애인의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한글 점자는 반드시 필요하다”며 “일상생활에서 점자 표기를 늘리는 등의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제생원 :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사회복지기관으로, 고아 보육이나 시·청각장애인 교육을 맡았음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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