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법의 어제와 오늘> n번방 방지법, 개정 필요성 대두 (한성대신문, 594호)

    • 입력 2023-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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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3-11-06 00:00

극악무도한 범행으로 전 국민을 경악에 빠트렸던 ‘n번방 사건’을 기억하는가. 약 3년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디지털 성범죄는 계속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통신매체나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 성착취물 제작 등의 성범죄 피해자 수는 2019년에 662명이었으나, 2021년에는 1,262명으로 2배가량 늘었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 디지털 성범죄를 제대로 예방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n번방 방지법은 디지털 성범죄의 재발을 막고자 국회가 통과시킨 6개 법률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개정 내용을 통칭하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전기통신 사업법』에서는 통신망을 사용하는 사업자에게 불법촬영물 유통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유통 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에서는 불법촬영물이 유통되지 않도록 통신사업자가 유통 방지에 대한 책임자를 둬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카카오톡은 오픈채팅 등에서 이용자가 공유하는 동영상이 불법촬영물에 해당되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더불어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청소년성보호법) 제25조의2에 신분비공개수사*를 허용한다는 규정이 마련됨으로써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신분비공개수사가 가능해졌다. 이외에도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그리고 『형법』 등이 함께 개정됐다.

전에 없던 조직적이고 큰 규모의 n번방 사건이 발생하자 재발 방지를 위해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는 모바일 메신저 애플리케이션 텔레그램을 중심으로 각종 성착취물이 공유되고 있었다. 각각의 이름이 붙여진 8개의 비밀대화 방에서 여성 및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이 공유됐고, 이로 인해 ‘n번방’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병도(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n번방 사건이 알려지면서 국회에서 관련 법령 개정안 발의가 증가했고, 다수의 법률이 개정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n번방 방지법이라는 이름으로 개정된 법률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를 완전히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제33조의6에서는 ‘전년도 기준 매출액이 10억 원 이상’이거나 ‘전년도 말 기준 직전 3개월간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10만 명 이상’인 통신사업자만이 불법촬영물 등의 유통 방지 의무가 있다고 규정한다. 정보통신망법에서도 같은 규정으로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 책임자를 둬야 하는 사업자를 제한 하고 있다. 막상 n번방 사건이 벌어진 텔레그램은 이 같은 규정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교수는 “범죄자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플랫폼에 제재가 들어올 경우 새로운 플랫폼으로 갈아타며 규제를 회피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청소년성보호법에서 허용하는 신분비공개수사가 ‘범의유발형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범의유발형 수사란 수사기관이 범죄를 저지를 의도가 없었던 이에게 범죄를 저지르게끔 유도해 범죄자를 검거하는 수사기법이다. 이준복(서경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의유발형 수사인지에 관한 판단은 담당 수사기관이 수사를 진행할 당시에 가해자에게 범행 의도가 있었는지 여부에 달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전기통신사업법』과 정보통신망법상 불법촬영물 유통 방지 의무를 갖는 사업자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병도 교수는 “일반 이용자가 불법촬영물 등에 대해 접근하기 최대한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 기준이 필요하며, 사업체의 규모나 매출액 이외의 대안적인 기준이 고려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청소년성보호법에 범의유발형 수사를 금지하는 조항과 수사를 목적으로 범행을 유도하는 행위를 한 경우 해당 수사를 맡은 경찰 등을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신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준복 교수는 “신분비공개수사의 개념을 명확히 해 범의유발 함정수사 등에 휘말리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분비공개수사 : 증거 수집과 범인 검거를 위해 경찰이 신분을 숨기거나 위장해 수사하는 수사기법

황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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