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을 가져온 ‘홍콩 ELS 사태’가 발생한 이후, 지난달 18일 금융당국이 피해를 입은 투자자를 위한 배상안 마련에 착수했다. 우리말로 ‘주가연계증권’이라 불리는 ‘ELS(Equity-Linked Securities)’는 특정 주식의 가격이나 주가지수*에 연계돼 수익을 발생시키는 금융상품이다. 계약 만기 시점까지 주가 또는 주가지수가 정해진 구간을 유지한다면 투자자는 약속된 수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는 계약 이후 해당 ELS에 연계된 주가지수가 급속도로 하락했고,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면서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게 됐다. 판매원이 해당 ELS를 판매할 당시 정기예금의 대체 상품으로서 위험성이 낮다고 설명하며 투자를 유도한 사실이 밝혀지자, 해당 판매원이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상품판매업자가 판매 시 지켜야 할 준수사항 등을 명시한 법률로,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높이기 위해 2021년 3월부터 시행됐다. 해당 법률 제19조에서 금융상품판매업자가 일반금융소비자에게 금융 계약 요청 및 판매 시, 해당 금융상품의 정보에 관해 일반금융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일반금융소비자란 은행, 금융회사 등 전문금융소비자를 제외한 모든 금융소비자를 지칭한다. 제15조에서는 금융상품판매업자가 성별·학력·장애·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계약 조건에 있어 금융소비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금융상품 계약 체결 시 손실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는 등의 행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됐다.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법령의 필요성은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두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우리나라에서 환율이 급등했고, 일정 범위 내에서 환율이 유지돼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키코’라는 금융상품 등으로 인해 많은 투자자들이 손실을 봤다. 한창희(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명예교수는 “국제적인 금융변화와 키코 사태, 부산저축은행 사태 등 금융사고 발생으로 금융규제를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금융위원회는 2010년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최초로 입법 예고했지만, 전문가들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범위나 방식 등에서 이견을 보이며 법률 제정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 2019년 일부 은행에서 원금 손실의 위험성이 큰 파생상품을 금융소비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한 사실이 적발되며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대한 재논의가 이뤄졌고, 2020년 3월 제정에 성공했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보호법이 보호하지 못한 ‘사각지대’는 여전히 남아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가장 먼저 ‘집단소송제’를 법률에 포함하지 않은 것이 문제로 제기된다. 집단소송제란 기업의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다수의 투자자 중 대표 당사자가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피해자도 함께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다. 집단소송제의 부재로 인해 피해자 개개인이 금융회사와 소송을 진행해 각각 승소해야만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이상복(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수백 명에 이르는 피해자 모두가 개개인별로 소송을 걸 여건은 충분치 않다”며 “집단 금융 피해자들은 각자가 모두 소송을 걸어 승소해야만 피해 보상이 이뤄지게 된다는 어려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금융상품판매자가 계약 조건에서 금융소비자를 차별하는 행태를 금지한 제19조도 느슨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해당 조항에서는 차별 요소를 ‘성별·학력·장애·사회적 신분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차별 요소 19개를 계약상 명시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 등에 비해 부족하다. 금융거래 시 특정 계층에 속한 사람에게만 계약상 이익을 제공하거나, 고령층이라는 이유만으로 판매를 거부하는 행위 등의 차별을 완전히 보호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곽노건(동국대학교 국제정보보호대학원 정보보호학과) 교수는 “금융거래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을 더 들여다보고, 구체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법에 열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불법행위를 벌이는 금융회사에 경각심을 주기 위해 집단소송제 도입이 필수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집단소송제가 도입된다면 대표 당사자만 소송을 제기해도 모든 피해자가 보상받을 수 있기에, 각 개인이 처한 여건 등의 이유로 소송을 포기하는 일이 줄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현재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이 있지만 금융거래를 주 대상으로 한 법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차별금지 조항의 경우, 차별받을 수 있는 요소를 구체적으로 열거한다면 4개의 요소만을 언급한 현행법을 이용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이 교수는 “금융거래에서의 소비자들이 받는 차별을 줄이기 위해선 차별요소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금융교육을 통해 소비자 스스로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법률의 보완만큼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 교수는 “개인 차원에서 일반 시민들도 금융 공부를 할 필요가 있으며, 국가적 차원에서 금융교육을 의무로 시행해 중고등 교육과정과 대학에서의 교육과정에도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주가지수 : 주식시장에서 각 기업의 주가 변동 현황을 종합적으로 나타낸 지표
황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