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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스냐? 트럼프냐?’ 오는 11월 5일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이하 미국 대선) 결과에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47대 미국 대통령 자리를 두고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국내 언론에서도 미국 대선 소식을 빠르게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선거 제도와 많은 차이가 있다 보니 관련 기사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2016년 미국 대선이 그 대표적인 예다. 당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전체 유권자에게 더 많은 득표를 얻었음에도 선거인단 수에서 밀리며 트럼프에 패배한 바 있다. 대체 선거인단은 무엇이며, 힐러리는 왜 많은 득표를 얻었음에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것일까.
30여 일 뒤 서막을 여는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대한민국이 달라질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본지에서는 단순히 기사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미국 대선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자세히 파헤쳐 본다.
이승희 기자
미국은 선거 제도로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을 이용한 일종의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권자가 대통령을 직접 뽑는 우리나라의 직선제와 달리, 미국은 유권자가 뽑은 선거인이 대통령을 선출한다. 먼저 유권자가 선거 대리인의 역할을 할 선거인단을 뽑고, 그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복식 선거의 방식인 셈이다.
다만 이 독특한 선거 제도는 직선제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직선제를 시행하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미국 유권자도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투표용지에 적힌 대선 후보 중 한 명에게 투표하기 때문이다. 임성호(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유권자의 투표로 각 주에서 승리한 대선 후보는 해당 주에 할당된 수만큼의 선거인을 상징적으로 지정한 후 그들이 투표 시 후보 자신에게 표를 던지게 한다는 점에서 간선제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도 선출된다. 부통령은 대통령과 같이 선거를 치르는 러닝메이트다. 부통령은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일원이면서, 상원(上院)의 장 등을 겸임한다. 부통령에게 별다른 역할을 주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으나,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직 승계 1순위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간과하긴 어렵다. 해리스도 현 미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의 부통령이다. 이준한(인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대통령 후보는 부통령 후보로 자신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을 지명한다”고 말했다.
대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당내 경선에서도 미국은 선거인단과 동일하게 ‘대의원’을 선출한다. 유권자들이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에 대신 투표할 대의원을 뽑으면, 이들은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해 배정된다. 이후 선출된 대의원들이 전당 대회에서 각 당의 후보를 확정한다. 대의원을 선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코커스(Caucus)’와 ‘프라이머리(Primary)’의 방식이 활용된다.
코커스는 정당이 실시하는 경선으로, 지역 당원들이 한곳에 모여 토론 등을 통해 대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전체 대의원의 30%가량이 코커스를 통해 결정된다. 여러 코커스 중 아이오와에서 열리는 ‘아이오와 코커스’가 큰 관심을 받는다. 아이오와가 작은 수에 속하지만, 미국에서 열리는 첫 경선이라는 점에서 향후 열리는 다른 코커스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코커스는 해당 지역 정당의 핵심 지도자나 당원들이 모여서 유세와 토론을 통해 지지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이라고 전했다.
프라이머리는 주 정부가 실시하는 경선으로, 투표를 통해 대의원을 선출하는 방식이다. 세부적으로 당원만 참여할 수 있는 ‘폐쇄형 프라이머리’와 원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프라이머리’로 나뉜다. 프라이머리는 전체 대의원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코커스에 비해 프라이머리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코커스에 비해 개방적이고, 당원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는 작은 주에서도 민의를 반영하기 쉽기 때문이다. 하상응(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투표를 더 손쉽게 진행할 수 있게 되면서 프라이머리 방식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면 본격적으로 선거인단을 확보하기 위한 후보들의 경쟁이 이뤄진다. 미국 대선의 선거인단은 총 538명이다. 이는 각 주에 2명씩 할당된 상원 의원 100명과 각 주의 인구에 비례해 배정된 하원(下院) 의원 435명, 그리고 워싱턴 D.C.에 할당된 선거인단 수인 3명을 더한 값이다. 워싱턴 D.C.는 주가 아닌 연방 직속 구역이므로 상·하원 의원이 배정되지 않으며, 선거인단 또한 할당되지 않았다. 그러나 워싱턴 D.C.가 대통령 선거권이 없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3명의 선거인단을 배정받게 됐다. 이 교수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워싱턴 D.C.에 대통령 선거권을 줘야 한다는 운동이 확산되며 워싱턴 D.C.가 선거인단을 배정받았다”고 말했다.
주마다 배정되는 선거인단에는 ‘Winner-Take-All’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승자독식 제도가 활용된다. 각 주의 선거인단은 그 주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정당이 모두 가져간다. 예를 들어 5명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어느 주에서 A 당이 51%, B 당이 49%를 득표했다면 해당 주의 선거인단 5명은 A당이 독점하게 된다.
대개 미국 대선의 결과는 11월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에서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유권자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선거인들은 12월 17일에 자신이 투표하기로 약속한 대통령 후보에 투표하나, 각 정당은 선거인들이 다른 후보에 투표하는 행위인 ‘배신 투표’를 하는 일이 없도록 지역의 충성 당원들을 선거인으로 공천한다. 때문에 11월 진행되는 대통령 선거가 엄밀히 말해 선거인단 선거임에도 여기서 270명 이상의 선거인단만 확보하면 승리에 가까워진다.
그렇다면 미국이 이러한 독특한 선거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대통령 간선제를 명시한 미국 헌법을 고치기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을 수정하려면 미국 하원과 상원을 통과한 후 38개 주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좌초될 위험도 크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미국 헌법이 제정된 1789년부터 지금까지 헌법이 개정된 경우는 15회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통령 간선제의 실질적인 이점도 있다. 미국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주인 캘리포니아주의 인구가 약 3,954만 명, 인구가 가장 적은 주인 와이오밍주는 58만 명으로 약 70배의 차이를 보인다. 만약 미국이 대통령 직선제를 채택했다면, 후보자들은 캘리포니아주처럼 인구가 많은 주에 선거 운동을 집중하고 와이오밍주처럼 인구가 가장 적은 주는 외면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주에 할당된 선거인은 각각 54명과 3명으로, 둘의 차이는 18배에 불과하다. 대통령 직선제에 비해 대통령 간선제하에서 와이오밍주처럼 인구수가 적은 주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하 교수는 “대통령 간선제는 와이오밍주처럼 인구수가 적은 주도 미 대선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연방국가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3개 주의 연합으로부터 시작했기에 연방제는 미국을 구성하는 주요 이념 중 하나가 됐다. 미국이 건국될 당시 선거인은 각 주를 대표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이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대통령 간선제가 자리 잡혔다.
이번 미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 교수는 “해리스가 당선된다면 큰 변화는 없겠지만,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우리나라의 안보 정책 등의 수립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 밝혔다. 이 교수는 “끝까지 선거 결과가 변할 수 있는 만큼 관심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