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노인의 하루 속 무거운 발걸음 (한성대신문, 603호)

    • 입력 2024-09-30 00:00
    • |
    • 수정 2024-10-04 20:51

<편집자주>

늙어가는 대한민국. 고령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70대 이상 인구는 631만 9천여 명으로 619만 7천여 명인 20대 인구를 넘어섰다.

고령 사회로 인해 청년과 노인이 접촉할 기회는 늘고 있으나 세대 간 이해는 줄어드는 실정이다. 일례로 65세 이상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를 두고 세대 간 폐지 논쟁이 일어난 바 있다.

10월 2일은 노인의 날이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공경의식을 제고하기 위해 제정됐다. 평소 생각하지 않았던 노인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불러일으킬 기회다. 노인의 심정을 헤아리기 위해 노인의 신체를 구현한 노인체험복을 입고 집, 경로당, 마트 등 노인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장소를 다녀봤다.

이승희 기자

[email protected]

용산구에 위치한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의 노인생애체험센터를 방문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알 수 없는 옷들로 둘러싸인 마네킹이 보인다. 손에는 장갑이, 팔과 다리에는 부목과 주머니가 달려있다. 뻣뻣해 보이는 조끼와 노란색 알이 달린 고글도 마네킹을 감싸고 있다. 상주하던 직원이 나와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나눈 직원이 마네킹을 둘러싸고 있던 옷을 건낸다. 근육과 관절이 약화된 80대 노인의 신체를 구현한 노인체험복이다. “노인의 몸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은 노인을 이해하는 데에 물리적, 감정적으로 이해를 돕죠.”

직원의 설명에 맞춰 옷을 하나하나 입는다. 팔과 다리에 플라스틱 부목이 달린 초록색 옷과 딱딱한 철판을 천으로 둘러싼 옷을 입는다. 몸이 뻣뻣해지고 어깨와 허리가 굽는다. 똑바로 서보려 하지만 허리가 굽어 시선이 바닥으로 꽂힌다. 손목과 발목에 총 4kg의 모래주머니를 두른다. 팔다리가 무거워져 아래로 처진다. 다음으로 하얀색 면장갑을 낀다. 손에 수분기가 사라지고 촉각이 저하된다. 노인은 손가락 관절도 약화되기에 장갑을 낀 손 위에 뻣뻣한 초록색 천 반장갑을 한 번 더 낀다.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노인의 시력 저하를 구현한 노란색 알의 고글도 착용한다. 고글을 쓰니 눈에 이물질이 들어간 듯 침침하다. 시야도 좁아져 옆에 서 있던 직원의 모습이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노인의 몸이 됐다.

안락하지 않은 집

노인생애체험센터에 마련된 집을 구현한 체험공간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신발을 벗고 거실로 향한다. 거실에 소파가 보인다. 소파에 앉기 위해 등을 돌린다. 다리를 조금 구부리니 관절이 뻣뻣해 힘이 빠진다. 풀썩 주저앉는다. 갑자기 앉으니 허리가 저려 탄식이 절로 나온다.

▲기자가 음료의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중이다. [사진 : 황서연 기자]

목이 탄다. 주방에 있는 냉장고로 향한다. 냉장고에 있는 작은 음료를 꺼낸다. 한 손에 들어오는 음료병이 미끄러워 당장에라도 놓칠 것 같다. 다른 손을 들어 아래를 병 아래를 받치고 병뚜껑을 돌린다. 손이 미끄러진다. 손이 떨릴 정도로 뚜껑을 세게 쥐고 돌린다. 그제야 뚜껑이 열린다.

집에서 생활한 지 30분, 온몸이 뻐근하다. 방으로 들어가 난간이 달린 침대에 눕는다. 똑바로 누우니 불편한 관절 탓에 호흡이 고르지 않다. 왼쪽으로 몸을 돌린다. 잠시 휴식을 취한다.

▲노인체험복을 입고 기자가 침대를 내려간다. [사진 : 황서연 기자]

휴식을 취하고 침대에 앉는다. 침대에 걸터앉으니 발이 공중에 뜬다. 한 발을 조심스레 내딛자 걸터앉은 엉덩이가 서서히 미끄러진다. 내딛은 한쪽 다리에만 하중이 실리면서 다리가 무게를 버티지 못해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급하게 손을 뻗어 침대 난간을 잡는다. 관절이 약한 손은 난간을 꽉 잡지도 못하고 미끄러진다.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반대쪽 다리도 빠르게 내디딘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앞으로 넘어졌을 것이다.

밖으로 나가려 한다. 방을 나가 거실을 거쳐 현관으로 향한다. 신발을 신기 위해 벽에 손을 짚고 발을 신발 안에 집어넣는다. 허리를 굽혀 신발 끈을 정리하는데 무게가 앞으로 쏠리면서 몸 전체가 흔들린다. 몸을 고정시키려 벽에 몸을 기대고 나서야 안정적으로 신발을 신을 수 있었다.

둥근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다. 손가락 관절이 굳어 둥근 문손잡이를 꽉 쥘 수 없다. 손잡이를 더욱 세게 잡고 손잡이를 돌리지만 열리지 않고 덜컹 소리만 울린다. 한 손으로 문손잡이를 세게 쥐고 다른 손을 포개 손바닥 아랫부분이 미끄러지지 않게 고정시키고 손잡이를 돌린다. 손바닥뼈까지 저릿한 통증이 느껴지지만 문은 열렸다.

▲길에서 차 앞을 위태롭게 지나간다. [사진 : 황서연 기자]

위험이 도사리는 주택가

노인이 주로 일상을 보내는 공간을 따라가기 위해 낙산공원 언덕 아래에 위치한 종로구 창신2동 경로당으로 향한다. 학교 정문에서 출발해 낙산공원을 향해 걷는다. 가파른 언덕이 800m가량 이어진다. 성인 기준으로 걸어서 가면 13분이지만, 노인의 몸이 된 기자는 25분이 소요됐다. 언덕을 걷기 시작한 지 10분, 꼬리뼈가 아프고 어깨가 말려 목까지 뻐근하다. 걷는 도중 잠시 서서 허리를 뒤로 젖히니 앞으로 떨어지던 땀이 뒤로 흐른다.

[사진 : 황서연 기자]

낙산성곽길에 도착하니 성곽 아래 주택가로 들어서는 계단이 보인다. 아래로 보이는 계단의 경사가 가파르다. 계단은 100m가량 이어진다. 계단 중간에 있는 난간을 잡는다. 허리가 굽으니 무게가 아래로 더욱 쏠린다. 몸을 사선으로 돌려 바닥을 보고 지팡이로 균형을 잡으며 한 칸씩 내려간다. 내려가는 도중 사람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비켜줄 수 없다. 난간에서 손을 떼면 몸이 균형을 잃기 때문이다. 제자리에 멈춰 서서 지나가는 사람의 소리가 뒤에서 들리기를 기다린다. 다시 발걸음을 뗀다. 이번엔 계단 난간이 없다. 허공에서 손이 허우적거릴 뿐이다. 계단 난간이 끊어져 있는 것이다. 순간 막막한 심정과 함께 손에 땀을 쥔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세 걸음만 가면 난간을 다시 잡을 수 있다. 지팡이를 고쳐 쥔다. 조심스레 난간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계단 끝까지 내려갈 동안 난간이 3번 더 끊겨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는 기자 [사진 : 황서연 기자]

낙산성곽길을 따라 즐비한 주택가, 창신길에 들어선다. 내리막길이 약 471m 계속되는 곳으로 일반 성인의 걸음을 기준으로 10분이 걸린다. 노인이 된 기자는 20분이 소요된다. 허리가 굽은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걸으니 몸의 무게가 앞으로 쏠려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길가에 화분, 쓰레기 등의 장애물이 보인다. 장애물을 피하려고 도로 쪽으로 옮겨 걷자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길가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기 위해 바닥을 보고 걸으니 오토바이가 달리는 방향을 파악하기도 어렵다. 경적으로 오토바이 위치를 가늠한다. 예상한 것보다 가까이서 지나가는 오토바이에 놀라 몸이 굳는다. 두려움에 몸이 굳어 멈췄다 출발하기를 반복한다.

창신2동 경로당이 보인다. 학교 정문에서 출발해 경로당에 도착하기까지 성인 평균 보행 속도로 21분이 소요된다. 노인이 된 기자는 총 45분이 걸렸다.

다시 걸음을 옮기며

오후 5시.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이다. 경로당을 나선다.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간다. 고개를 들어 언덕을 보니 갈 길이 멀어 막막하다. 언덕을 오르기 위해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반복한다. 뻣뻣한 관절을 억지로 움직이니 무릎이 아프다. 호흡이 가빠지지만 천천히, 계속해서 걷는다.

어느새 도로는 어두워져 가로등이 켜졌다. 그럼에도 시력이 저하된 탓에 거리는 어둡게 보인다. 이제 지팡이를 쥘 힘도 없다. 허리도 더욱 굽어간다. 자연스레 바닥의 보도블록에 시선이 머물며 천천히 발을 옮길 뿐이다. 문득 옆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빠른 발걸음에 고개를 들어보니,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또 한 명의 노인이 보인다. 기자와 같은 자세다.

노인의 일상은 느릿한 걸음으로 조용히 이뤄진다. 조용히 움직이지만 마음은 누구보다 분주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는 남들이 알지 못할 깊은 고단함이 있다. 오늘도 노인의 삶은 천천히 그러나 다급히 흘러간다.

댓글 [ 0 ]
댓글 서비스는 로그인 이후 사용가능합니다.
댓글등록
취소
  • 최신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