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가 퇴색된 시대다.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이 외국인 차별적 요소를 풍자의 소재로 삼으며 비판받았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증언하던 외국인 연예인의 서툰 한국어 발음을 흉내 낸 장면이 문제였다. 방송이 공개되자 시청자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해당 장면이 ‘풍자’가 아닌 ‘조롱’이라는 지적이다.
풍자란 무엇인가. 풍자는 웃음을 활용해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예술의 형태다. 단순 희화화가 아닌 대상에 대한 관찰과 논의, 교훈을 담아내며 문제 개선을 촉구한다. 풍자를 통해 유발된 웃음은 문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며 문제를 접하지 않은 대중에게도 문제의식을 불러일으킨다. 과거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는 비싼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을 풍자했다. 먼저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하지만, 여의찮은 학생은 하루에 10시간씩 숨만 쉬고 일하면 학비를 ‘쉽게’ 마련할 수 있다고 비꼬아 시청자의 씁쓸한 웃음을 자아냈다.
문제가 된 풍자 방송은 논의나 교훈이 없는 빈 수레에 불과하다. 요란하게 가십만 생성할 뿐이다. 진정한 풍자라면 연예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은 소속사를 비판하며 관련 제도 개선을 요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방송은 문제의 본질을 짚지 않고 가십을 형성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에 또 다른 폭력을 가했다.
방송의 수익 구조에 굴종한 탓일까. 인물의 유명세만을 이용해 대중의 가벼운 흥미를 유발했다. 방송은 재방영과 유튜브 등을 통한 클립 영상의 조회수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광고주의 요구가 없다면 수익이 끊기는 방송 광고 수익에 비해 안정적이다. 그렇다 보니 방송이 다뤄야 할 문제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고 대중의 입방아에 쉽게 오르내리는 콘텐츠로 조회수를 높일 방법만 간구한 것이다.
대중은 풍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이번 논란을 통해 대중도 풍자 콘텐츠가 비평해야 할 문제와 대상을 인지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수익을 배제하라는 뜻이 아니다. 비판할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지적해야 한다는 의미다. 부유하는 문제를 꼬집기 위해, 더 나은 사회의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해 콘텐츠 제작자의 고민이 필요할 때다. 진정한 풍자 방송이 전파를 타고, 그로 인해 사회 문제를 더 많은 사람이 인식하고, 또 고쳐나가는 그날을 고대해 본다.
이승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