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중년이 된 한성대신문
한성대 신문이 40살이 되었단다. 인생으로 치자면 불혹의 나이다. 불혹이라면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1976년 한성여대학보로 시작해서 40년이라는 세월을 한성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한성대신문도,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적당한 중간자적 역할을 할 수 있음에 하나의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는, 딱 적당한 위치에 와 있다고 하겠다.
40년을 축하하는 몇 자 인사말을 적으려하니, 30여 년 전의 학보사기자 시절의 기억들이 하나씩 조각처럼 떠오르며 울컥 그리움으로 밀려온다. 지금 같은 전자신문 시스템이 아닌, 한 자 한 자 활자를 조립해서 윤전기에 찍어냈던 만큼, 졸린 눈을 부릅뜨고 오타를 찾아내던 그 열정의 시간들.
민주화를 부르짖던 학우들의 열망을,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 사이에서 미처 다 받아들여주지 못하던 아쉬움 과미안함. 남학우들의 숙원이었던 ROTC의 창단과, 삼선교역의 한성대입구역으로의 개명이 성사되었을 때의 그 뿌듯함과 성취감... 돌이켜보면 학보사 생활 3년이란 시간이 내가 살아오는 방향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30년이 지난 지금에 새삼 느끼게 된다.
대학신문은 그 학교의 역사적 기록이다. 또한 시대의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학우들을 위한 학술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역할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40년이다. 중년으로 접어든 한성대신문의, 또 다른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의 시작이다. 그 길을 이끌어 줄 주간교수님과 사랑하는 후배기자들의, 불꽃처럼 피어오를 열정을 위해, 작지만 그러나 가장 커다란 박수를 보낸다.
송재순 퇴임기자회장
‘가끔’ 뿌듯했던 40년
지인의 추천을 받아서 처음 신문사 문턱을 넘은 것이 2010년 12월의 일이다. 당시에 신문사에는 기자가 고작 2명이었다. 내가 새로 와서 셋이 되었지만, 업무량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21학점을 눌러 담아둔 판국에, 취재도 하고 기사도 써야하니 말 그대로 나는 쉴 시간이 없었다. 지금은 편집국장 자리에 앉아서 다른 기자들을 총괄하고 있지만, 아직도 신문사 일은 벅찬 일이다.
‘기사’라는 것을 제대로 하나 만들어보려고 하면, 취재는 물론이고, 사실관계도 죄다 파악해야한다. 취재를 하려고 찾은 취재처에서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응답을 사정하는 상황도 종종 생긴다. 일단 이렇게 다 찾고 검토해서 써놔도 글이 엉망이면, 편집국장과의 한판 실랑이가 기다린다. 이렇게 하나하나 만들어서 드넓은 여덟 개 면을 다 채워야 하니, 만성 피로가 등에 딱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손은 계속 기사를 쓰고, 눈은 모니터를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써야한다는 사명감도 있겠지만, 다 만들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온몸을 지탱한다. 새로운 일정이 시작되면 신문이 제때 못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산더미지만, 막상 다 만들어두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특히 학교에서 누군가가 내가 만든 이 녀석들을 옆구리에 끼고 있는 광경을 보았을 때 느끼는 짜릿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성대신문사는 기자들이 가끔 느끼는 이 생동감에 기대어 40년을 살아왔다. ‘가끔’이라는 것이 고약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서, 때로는 좌절하기도 하고,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40여 년 동안 수많은 선배들이 머릿속에 되뇌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신문사가 참 못됐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가끔 오는 뿌듯함만큼은 변함없이 여기에 머물렀다 가는 기자들을 열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이렇게 맞은 40주년이 참 놀랍고 고맙다.
박종민 편집국장
무관심과 냉소의 침묵보다는
한성대신문이 창간 40주년이 되었고, 하필 이 시기에 나는 신문사 주간인 프레스센터장을 맡았다. 40년,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시간이다. 그만큼의 판단력과 성숙함을 갖추었는지 돌아본다. 자신이 속한 조직을 축하한다는 것이 그리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에 대학 신문의 존재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 축사에 갈음한다.
수많은 신문사, 공영방송, 상업방송, 종합편성채널 뿐 아니라 인터넷 신문과 방송, 개인 방송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매체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신문이, 우리 한성대학교의 신문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신문도 신문의 범주에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뉴스의 보도, 여론의 계도 등과 같은 신문의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해당 대학의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대학 신문으로서 한성대신문으로서 정체성을 갖기 위해서는 대학 구성원들이 우리 한성대신문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귀 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학 본부가 기대하는 것, 교수와 학생, 그리고 교직원들이 기대하는 것이 조금씩 다를 수 있고, 그래서 때로 그러한 다름이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모든 바람과 기대, 그리고 갈등이 한성대학교의 발전과 한성대학교 구성원들의 좋은 삶을 향해 있음은 분명하다.
다양한 세대와 계층, 그리고 지위가 다른 사람들이 모인 대학에서 갈등은 필요악이다. 어쩌면 갈등은 무관심과 냉소적 침묵보다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 갈등은 조직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잦은 감기가 폐렴으로 이어질 수 있듯 동일한 문제의 반복적 갈등은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한성대신문이 다양한 구성원들의 의견을 표출되고 소통되는 자유로운 토론의 장이 되고 더 나아가 갈등을 해소하는 건강한 공론의 장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나은미 한성프레스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