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한 우물만 판다?”는 요즘 학교 홈페이지와 현수막에서 자주 보이는 문장이다. 처음엔 반가웠다. 내가 종종 쓰던 말이기도 하고, 나 스스로 한 우물만 판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학이라는 우물 하나로는 부족해, 심리학이라는 또 다른 우물을 함께 팠다. 덕분에 지금은 한국에서 드물게 수학과 심리학을 함께 가르치는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나요?” 짧게 답하자면, 용기 있는 선택 덕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삶은 평생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 선택에는 때로 큰 용기가 필요하고, 종종 책임이 뒤 따른다. 우리 학교 학생들도 각자의 시점에서 수많은 선택 앞에 서 있을 것이다. 혹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 채 떠밀리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타인의 선택에 내 삶의 방향이 결정되는 그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그것도 자신의 선택일 수 있다.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매 순간 선택하며 살아간다.
내게 가장 용기 있었던 세 가지 선택을 꼽으라면 이렇다. 첫째, 스물네 살에 혼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일이다. 다행히 수학은 장학금을 받기 쉬운 과목이어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할 수 있었다. 둘째, 유학 중 남편과 결혼을 결심한 일이다. 모두 합쳐 7년의 장거리 연애와 신혼생활을 보냈다. 이메일도 카카오톡도 없던 시절, 많은 외로움을 견디며 인내를 배웠다. 셋째, 마흔셋의 나이에 다시 상담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 일이다. 현직 교수로서 다시 학생이 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용기 없이 이뤄진 것은 없었다.
용기는 두려움 가운데 앞으로 나아가는 한 걸음, 한 몸짓이다. 따라서 두려움이 클수록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자신의 기질과 자라온 환경 때문에 불안과 두려움이 많을수록 용기를 내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용기는 우리 몸의 근육처럼 키워질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작은 용기를 낼수록 더 큰 용기가 생긴다. 이제 퇴직을 준비하는 교수로서,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용기를 키워라. 용기 있는 선택을 해라.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에 책임져라.” 또 한 해를 보내며, 트랙을 선택하고 진로를 정하고 관계를 맺는 모든 순간마다 올바른 용기와 그에 따른 책임이 함께하길 바란다. 용기 있는 선택 세 가지를 꼭 가져보길 바란다.
조난숙(상상력교양대학 소양·핵심교양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