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 미래를 향한 두 번째 여정 : 사용후핵연료 (한성대신문, 616호)

    • 입력 2025-11-1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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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5-11-10 00:01

핵폐기물이 다시 에너지원으로 되살아났다. 최근 열린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방안이 주요 의제로 논의됐다. 회의 결과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 개발의 협력을 강화하며 국제 공동연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사용후핵연료란 원자력 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더 이상 발전에 활용하기 어려운 핵연료를 말한다. 폐기물로 보관할 필요 없이 연료로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기술은 핵연료의 이용 효율을 높이고 방사성 폐기물의 양을 줄일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면 사용후핵연료는 어떤 과정을 거쳐 재처리될까. 그 원리를 함께 살펴보자.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이해하려면 먼저 ‘핵분열’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핵분열이란 원자의 중심인 원자핵이 쪼개지는 현상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 사이의 균형이 깨질 경우 분열한다. 핵이 외부 중성자를 흡수하면 일시적으로 불안정해져 두 개의 가벼운 핵으로 갈라지는 형태다. 이때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여러 개의 내부 중성자가 함께 방출된다. 허진목(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핵주기기술개발부) 책임연구원은 “핵분열은 무거운 원자핵이 중성자를 흡수하면서 불안정해지고, 그 결과 두 개의 더 작은 원자핵으로 분열되면서 다수의 중성자와 함께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핵분열을 직접 촉발할 수 있는 물질은 자연계에 단 하나뿐이다. 바로 ‘우라늄-235’다. 우라늄-235는 원자력 발전의 핵심 연료로 사용되는 방사성 동위원소다. 동위원소는 원자의 양성자 수는 같으나 중성자 수가 달라 질량이 다른 원소다.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동위원소는 끊임없이 핵분열을 일으키며 에너지를 방출한다. 중성자가 우라늄-235의 원자핵에 충돌하면 원자핵이 일시적으로 커진다. 이후 곧 두 개의 중간 크기 원자핵으로 분열하며 막대한 에너지와 함께 새로운 중성자를 방출한다. 박해균(경북대학교 에너지공학부) 교수는 “우라늄-235가 중성자를 흡수하면 순간적으로 우라늄-236의 형태로 변해 불안정해진다”며 “안정된 상태를 만들기 위해 쪼개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연료, 본질을 찾아가다

우라늄-235를 활용하면 ‘핵연료’를 만들 수 있다.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물질로, ▲정련(精鍊) ▲전환 ▲재전환 등의 공정을 거쳐 연료 형태로 가공된다. 이러한 공정은 자연에 있는 혼합물 내 순수한 우라늄-235를 추출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먼저 정련 단계에서는 우라늄 광석을 잘게 파쇄한 뒤 황산이나 강알칼리 용액을 사용해 우라늄 원소를 추출한다. 이때 우라늄 원소는 용액 속의 산이나 염기와 반응하면서 전자를 일부 잃는 이온화 과정을 거치고, 물에 잘 녹는 수용성 형태로 변환된다. 이렇게 용해된 우라늄은 ‘우라닐 이온(UO₂⁺)’ 형태로 수용액 속에 녹아 나오고 반응 후 남은 찌꺼기는 분리·여과 과정을 통해 제거된다.

이렇게 얻은 우라닐 이온은 우라늄 원소가 전자를 잃어 양이온으로 존재하는 상태다. 이온화된 상태에서는 우라늄이 수용액 내에서 다른 불순물과 화학적으로 구분되기 쉬워 정제가 수월해진다. 정제된 용액에 침전제*를 투입하면 우라닐이 침전돼 액상에서 분리된다. 생성된 침전물을 건조한 뒤 고온에서 가열하면 가루 형태의 ‘산화우라늄’으로 전환돼 후속 가공 공정에 투입할 수 있다. 박 교수는 “산화우라늄은 도자기처럼 높은 온도를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산화우라늄은 ‘육불화우라늄(UF6)’으로 만들어지는 전환 과정을 거친다. 육불화우라늄은 우라늄과 불소가 결합한 화합물이다. 이 화합물은 실온에서는 고체이나 약 57℃ 이상에서 기체로 승화하는 특성을 갖는다. 기체 상태가 되면 순수한 우라늄-235를 뽑아낼 수 있다.

전환 과정을 통해 얻은 육불화우라늄은 가열해 기체로 만든 뒤 원심분리기에 넣는다. 원심분리기는 매우 빠른 속도로 회전해 생기는 원심력을 이용해 질량 차이가 있는 원소들을 구분한다. 이중 상대적으로 가벼운 원소는 냉각 및 화학 처리를 거쳐 고체 형태의 ‘이산화우라늄(UO₂)’ 분말로 바뀐다. 이러한 과정을 재전환이라 부른다. 박 교수는 “원심분리를 통해 우라늄-235를 분리시켜야 한다”며 “이때 기체상태가 분리되기 용이하기에 육불화우라늄을 기체로 변환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상술한 과정을 통해 얻은 이산화우라늄 분말을 성형해 작은 조각으로 만든 뒤 이를 금속 피복관에 넣어 연료봉과 연료집합체를 제작하면 핵연료가 준비된다. 이 과정에서 원자로 안의 우라늄-235가 핵분열을 일으키며 열을 발생시킨다. 이렇게 발생한 열로 냉각수를 끓여 원자력 발전소의 터빈(Turbine)을 돌리면 전기가 생산된다.

분열의 끝에서 다시 살아나다

원자로에서 연료를 3~5년가량 사용하면 다량의 핵분열 생성물이 축적돼 더 이상 사용하기 어려워지므로 연료를 교체해야 한다. 제거된 연료는 높은 방사선과 잔열을 줄이기 위해 수조에 넣어 일정 기간 수중 보관하며, 약 10년이 지나면 재처리 단계로 이행된다. 재처리 과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의 핵물질을 회수해 다시 연료로 활용할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위해서는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이 필요하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전기를 활용하는 ▲전해환원 ▲전해정련 ▲전해제련 등의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먼저 전해환원 단계에서는 사용후핵연료의 주성분인 이산화우라늄에서 산소를 제거해 금속 우라늄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통형 이산화우라늄을 분말 형태로 만든 뒤 고온의 소금물과 유사한 용융염**에 투입한다. 이때 전류는 전자를 이동시키며 금속과 산소 이온을 분리하는 역할을 한다. 전류가 흐르면 음극(–)에서 이산화우라늄이 전자를 받아 산소가 제거되고 금속 우라늄이 생성된다. 반면 양극(+)에서는 산소 이온이 전자를 잃고 산화돼 산소 기체로 방출된다. 즉 음극에서는 환원 반응이, 양극에서는 산화 반응이 일어나며 이 전기화학적 분리를 통해 우라늄을 금속 형태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후 진행되는 전해정련은 앞선 전해환원 단계에서 얻은 금속 우라늄을 더욱 순수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금속 우라늄을 양극 막대에 연결시켜 전류를 흘려주면 양극의 우라늄이 전자를 잃고 용융염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이렇게 변환된 물질이 ‘염화우라늄(UCl)’이다. 용융염에 용해된 우라늄 이온은 양전하를 띠기 때문에 전기적인 인력에 의해 음극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전자를 다시 받아 순수한 금속 우라늄으로 환원된다. 즉 양극에서는 불순물이 섞인 금속 우라늄이 이온화돼 용해되고 음극에서는 순수한 우라늄이 다시 금속 형태로 형성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플루토늄 등 다른 원소들은 전기적 에너지 차이에 따라 각각 다른 위치에서 분리돼 선택적으로 회수된다. 허 책임연구원은 “전해정련은 전류를 이용해 금속 우라늄을 이온화해 녹여내고 다시 순수한 금속 형태로 환원시키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전해정련을 마치면 전해제련 단계가 이어진다. 전해제련에서는 전해정련으로 분리되지 않은 금속성 혼합물을 회수한다. 전극과 용융염의 전기화학적 조건을 조절해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의 금속들을 선택적으로 분리·회수하고 핵분열 생성물과 일부 불순물은 용융염에 남겨둔다. 이후 회수된 금속을 녹여 주조·성형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회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여러 차례의 전기화학적 처리와 열처리가 병행된다. 남은 용융염과 잔류물은 별도로 관리해 안전하게 처분해야 하는 방사성 폐기물로 남는다.

회수된 우라늄과 플루토늄 등은 소듐냉각고속로***에서 다시 활용될 수 있다. 소듐냉각고속로에서는 빠른 중성자를 이용해 회수한 플루토늄을 바로 쪼개어 열을 만들고 우라늄-238은 중성자를 받아 플루토늄으로 바뀌게 한다. 이렇게 생긴 열은 액체 나트륨이 옮겨 증기로 바뀌고 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내일의 동력이 되는 사용후핵연료

사용후핵연료는 향후 자원 재활용과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에는 핵연료를 사용한 뒤 폐기해야 했기 때문에 저장 부지 부족 문제가 심각했지만, 최근에는 자체 재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핵연료를 다시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에너지 개발의 자립도가 높아지고 있다. 허 책임연구원은 “사용후핵연료를 단순히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을 통해 유용한 자원을 회수하는 것은 자원 이용 효율과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면적 저감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더불어 재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대한 영구 처분 대책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엄우용(POSTECH 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는 “사용후핵연료는 재처리를 통해 다시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점이 있지만, 재처리시설의 건설과 운영 과정에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새롭게 발생하기 때문에 재처리와 더불어 영구 처분장 건설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침전제 : 용액 가운데 어떤 특정 물질을 침전시키기위해 쓰는 시약

**용융염 : 고체 상태의 소금을 가열해 녹여 액체로 만든 것

***소듐냉각고속로 : 액체로 융해된 상태의 금속 소듐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원자로

****고준위 : 원자, 분자, 원자핵 등이 정상 상태에서가질 수 있는 에너지값보다 더 높은 에너지 상태

조수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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