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늘 그것을 은폐하고 싶다는 생각과 마주친다. 누군가에게 잘못을 노출하는 것은 분명 창피하고, 불편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집단이나 사회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질서를 유지하고, 선한 이미지를 유지해야하는 대표집단이나 행정집단은 이러한 은폐의 유혹에 강하게 끌리기 마련이다.
지난 2월 19일 서울과학기술대(이하 과기대)의 새내기새로배움터 진행 도중에 신입생들에게 배부되었던 서울과기대신문 제582호 2천부를 총학생회가 전량 강제 수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문들은 신입생들의 가방에 담겨있었고, 쉬는 시간을 틈타 수거되었다. 수거된 신문들은 다음날 입학식 종료 후 트럭에 실려 나갔다. 강제 수거된 신문에는 학생회비 횡령 사건을 다룬 기사가 실려 있었다.
과기대신문사는 곧바로 진상규명을 위한 취재에 들어갔다. 그리고 차경철 학생처장의 답변을 통해 학생처가 총학생회에 강제 수거를 지시한 것이 밝혀졌다. 차 처장은 “새내기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서 한 일”이라고 답했다. 학생처가 횡령 사건을 다룬 신문이 신입생들에게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판단하고, 미리 수거 조치를 했다고 자백한 셈이다.
다음날인 20일, 과기대신문사는 학생처에 공식적으로 사과하라는 입장의 입장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과기대 학생처는 수거를 지시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것이 발행권 침해와 언론탄압이라는 사실은 부인했다. 학생회 국원이 신문을 수거하는 모습과 신문이 박스에 포장되어 방치되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SNS와 웹상에 전파되었음에도, 학생처는 답이 없었다.
잘못한 것은 맞는데 언론탄압은 아니라는 식의 안하무인격 태도에 과기대 학생들은 경악했다. 학내 커뮤니티와 페이스북 등에는 이미 학교에 대한 비판 글이 쏟아지고 있다.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잘못을 묵인하려던 시도가 결국 이런 파국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만약 학생처가 해당 문제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태도를 보였다면, 학생들은 이들을 훨씬 신뢰했을 것이다. 학생에게 신뢰받는 학생처야말로 신입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잘못을 덮으려는 행위는 또 다른 잘못이다. 결국 잘못으로 잘못을 덮는다. 중요한 것은 이 연쇄가 잘못의 규모를 점점 더 키운다는 점이다. 이렇게 늘어가는 잘못이 많아지다 보면 언젠가는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도래한다. 신뢰는 그 때 붕괴한다. 그 앞에 남아있는 것은 각 집단 간의 첨예한 갈등뿐이다.
현재 과기대신문사 기자들은 언론 탄압 행위에 대한 공식적 사과와 재발 방지 규정 등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전개하고 있다. 비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고 정문 앞에 서있는 기자의 모습은 그 신뢰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해준다. 아직 학생처와 대학본부에 기회는 있다. 과기대 대학본부가 잘못을 잘못으로 덮지 않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해주길 바란다.
박종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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